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 1859년의 과학과 기술
피터 매시니스 지음, 석기용 옮김 / 부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의 변혁을 이끈 1859년의 과학과 기술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뜻보면 이 책에는 다윈이 살던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가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래를 잡아 얻어낸 고래기름이 어떻게 쓰여지고, 가죽을 개의 마른 오줌을 사용하여 말려야 더 훌륭하게 염색된다느니. 1장에서는 새로운 원료와 착상이라는 제목 아래 그 당시의 배 안에 어떤 물건들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오늘날로서는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마치 마녀가 솥 안에 넣는 박쥐 발톱이라든가 두꺼비 눈물 따위의 도대체 왜 필요한지 내가 모르는 기괴스러운 마법이라도 부릴 것 인지라는 엉뚱함을 가득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배 안의 물건을 잡동사니라고 느끼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으로만 그 시대를 보려고 해서이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는 베틀과 손바늘질로 모든 옷을 지어 입어야 했고, 쌀은 돈으로도 쓰였으며, 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축이었다. 겨울이 되면 돌돌 말려져서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짚은 어떠한가? 짚을 삶아다가 소를 먹이기도 했고, 잘 꼬아서 짚신을 신기도 했고, 처마 밑에 갖가지 채소를 말리는 이음새 역할을 해냈다. 이 책은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학과 기술을 만화잡지를 보듯이 설명해준다. 베틀과 바늘이 일상에서 필요 없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석탄과 석유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고래 기름을 짜내려고 개의 오줌을 말려보려고 궁상을 안떨어도 손쉽게 공장의 동력으로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얻을 수 있다. 교통 수단은 어떠한가? KTX가 운행되기 전의 웅성거림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점이 기차와 마차에 있었다. 말똥으로 가득한 도시의 거리가 떠오르고, 불결한 기차 안이 생각난다면 여러분은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자칫하면 여러분은 이 책이 지나치게 자세히 이 시대의 물건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물건이나 원료, 운송기관들의 낯선 이름들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8살의 아이들도 알고 있는 단어들이다. 그들은 직접 그런 변화를 겪어왔기에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급작스레 이런 물건이나 원료를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윈의 시대를 낯설어 할지도 모르겠다.


이 쯤되면 눈치를 채겠지만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이 책도 1859년 딱 한 해에 국한되어 다루지 않는다. 실상 다윈의 <종의 기원>이란 책도 다윈의 할아버지 때부터 있어왔던 이론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게다가 5장의 자유의 외침에서 보면 노예의 해방을 주장했던 유명한 백인들조차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윈도 마찬가지이다. 젊었을 때는 노예의 인권을 옹호해주기도 했지만 그는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변해갔고, 결국은 <종의 기원>을 통해 우생학을 인정한다. 20년 전에 죽었지만 1859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멜서스의 잔혹한 경제학은 끝내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게 만드는 모순으로 사회를 끌고 간다.


자유를 얻지 못한 이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를 얻은 자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출세를 원한다. 출세의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교육이다. 사람들에게 고급스러운 교육을 선사한 도구는 바로 책이었다. 당대에 유행했던 저서와 대중의 반응은 오늘날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은 병으로 죽어갔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불결한 위생상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고 하지만, 그네 나라들은 더욱 더러웠다. 그리고 도시의 위생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학이 발달하고,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겸업으로 종사했던 과학자와 발명가들도 1859년을 맞이하여 전문과학자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다윈도 겸업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과 기존의 학설을 정리하여 <종의 기원>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 원서를 보면 가장 애먹는 것이 단어의 해석이다. 특히나 도대체 쓰임을 모르겠는 단어나 인명은 자괴감을 불러온다. 그런데 이 책은 낯설은 인명의 역할과 물질을 명학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처럼 매끄럽게 잘 읽힌다. 유럽의 인쇄술 발달을 배울 때 교과서 안에 한 장면으로 묘사된 인쇄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인쇄술이 나오는데, 인쇄를 할 때 필요한 기계의 윤활유부터 책 제본의 섬세한 과정까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조목조목 잘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베틀을 몽땅 폐기처분하게 만든 재봉틀과 관련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평소 궁금했던 제국주의의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속시원히 풀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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