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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서재를 꿈꾼다. 네모난 방 둘레로 창문과 방문만 빼고 모두 책장으로 둘러서 책으로 채우고 안락한 쇼파와 탁자도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나 역시 작지만 꽉 찬 나만의 책방을 꿈꾼다. 그 꿈이 너무도 멀어서 대리만족을 삼는 곳이 바로 학교 도서관이다. 학교 도서관에는 모퉁이 곳곳마다 낡은 책, 새로 나온 책들이 켜켜이 꽂혀 있고 친절한 사서의 안내도 받을 수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찾다가 겉표지의 짙은 나뭇잎 색감에 끌려 뽑아낸 <책과 노니는 집>. 뭉툭한 코와 단정한 웃음을 띄고 있는 소년이 책을 들고 책방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장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소년 장이는 9살에 필사쟁이 아버지를 여의었다. <천주실의>를 필사해서 배포했기 때문에 관가에서 곤장을 맞아 한 달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고 책을 좋아하는 장이의 모습이 나와 닮았다. 얼굴에 칼 자국이 있는 험상궂은 허궁제비에게 협박을 당할 때 장이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마음고생, 몸고생하는 것도 그렇다.
최서쾌는 아버지가 없는 장이를 맡아서 책방을 꾸려나간다. 그는 책 빌리는 사람이 재미있게 읽을 책을 골라 빌려준다. 장이가 이런저런 유명한 책을 빌려 드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하면 그는 좋은 책을 권할 때는 ‘마음시중’이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마음시중. 책은 그 사람에게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주는 것과 같다. 책을 선물하는 것은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을 전해주는 것이다. 마음씨 곱고 얼굴 고운 기생 미적아씨에게는 구운몽보다는 춘향전을 빌려주고, 아들이 아니라서 기방에 팔려온 낙심이에게는 효녀 심청전의 심봉사 같은 아버지 이야기는 재미가 아니라 상처다.
천주교 서적 때문에 아버지를 여읜 장이가 15살이 되었을 때 또 위기가 닥친다. 은혜를 모르는 허궁제비가 일을 꾸민 것이다. 장이는 몸을 피하라는 양아버지 최서쾌의 당부를 어기고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명문가의 양반이지만 장이에게 잘 대해준 홍 교리의 책 정리 방법을 추론하는 장면은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이제 장이도 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장이의 이름은 아버지께서 고심하여 지은 것인데, 홍 교리는 성은 문이고 이름은 장이이니깐 글쟁이라는 뜻이라고 매우 좋은 이름이라고 칭찬해준다. 문장. 글쟁이. 장이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성균관 옆에 책방을 차리게 된다. 홍 교리는 간판을 써주었다. 사람들이 잘 읽지 못하는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된 '책과 노니는 집'. 책과 함께 노니며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조선후기 신유박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글감으로 삼아 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이야기.
아파트 상가 속의 서점과 번화가의 선물 가게에서도 장이의 솜씨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으로 책을 권하고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진지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느끼고 싶다. 양반이라는 직책으로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 않았던 홍 교리, 아름다움을 밑천으로 팔던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 더 빛나던 미적아씨를 오늘 날에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야무지지도 못하니 필사쟁이 책 읽는 장이의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책의 온기를 온누리에 퍼뜨린다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