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더스의 개 비룡소 클래식 12
위더 지음, 하이럼 반즈 외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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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영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플랜더스의 개. 어린 시절 여성 작가 위다가 아버지에게 들은 플랜더스 지방의 구전에서 영감을 받고. 성인이 되어 직접 플랜더스를 여행하고 쓴 작품이다. 벨기에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플랜더스 사람들은 파트라슈를 모른다.

우리는 일본의 52부작 애니매이션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네로를 알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품인지. 일본인 관광객들이 벨기에의 관광청에 플란다스의 개를 너무나 자주 묻곤 해서 직원인 얀 코르델이 영어 원작을 읽고 이를 관광 상품화하기로 했다.

플랜더스의 개가 살았던 마을은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호보켄 마을이다. 하지만 나막신. 두건. 풍차 등은 네덜란드의 모습이기에 벨기에 사람들은 거부감이 심하다. 작가가 직접 플랜다스를 여행하고 썼다는 데. 풍차가 아니라 방앗간일 뿐이었나. 이마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잘못 표현한 것 같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집단 의견에 동조하고. 집단행동에 따라 죄의식마저 사라진다. 도덕성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했다.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악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평소에 권력을 누려 볼 기회가 없던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못한 네로를 짓밟으면서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일까. 돈을 벌지 못하는 예술가는 푸대접을 받고 인정받지 못한다. 부모가 없고 돈도 없는 아이는 무시를 받고 산다. 하지만 네로는 아무리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도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괴롭힌 알로아의 아버지 지갑을 찾아 주고. 사람들이 괴롭혀도 자신은 이미 부자라며 의연해한다.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이 다가갈 수 없는 정신을 갖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네로는 산타클로스의 풀 네임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기독교와 카톨릭의 뿌리 깊은 대립이 작품 곳곳에 녹아 들어 있어 원작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원작에는 파트라슈의 심리도 잘 묘사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볼 때 이렇게 자세히 강아지의 마음이 표현이 되었었나. 마지막에 둘이 함께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죽는 장면은 너무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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