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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ㅣ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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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가 1990년대의 이야기를 들고 돌아 왔다. 많은 공감을 하게 만들던 전작들이라서 정이현 작가의 신작을 선택하는 것엔 고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소설을 읽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얼마나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이 100% 발휘된 선택이었으니까. 작가만의 방식대로 그 때의 현실에 마주하는 방법은 어떨지 기대 되었다.
부모의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할머니의 집에 맡겨진 세미,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욕이 튀어나오는 뚜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준모, 지나간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지혜. 이 세 친구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십대를 보내는 이야기이다. 세 친구들에겐 서로 공유할 수 없는 비밀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각별한 사이가 되고 곁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각자 드리워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일탈도 아닌, 방황도 아닌 그저 그런 날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그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인데 참 덤덤하게만 느껴진다. 그 시절 누구나 앓는 성장통일 수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 특별해지는 이유는 간직하고 있는 상처들이 남들과 조금 달라서일 수도 있다. 이야기는 세미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곁다리처럼 뻗어 있는 준모와 지혜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격동의 70~80년대에 비교할 만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90년대도 꽤나 시끄러웠다. 소설의 처음도 김정일이 죽은 걸로 시작된다. 김정일은 2011년도에 죽었지만 30대의 세미가 10대의 기억들을 회상 해보니 1994년도엔 김일성의 죽음이 있었다. 1990년대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던 사건들이 소설 속을 관통한다. 그래서 세미와 비슷한 또래인 나도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10대의 그 시절. 그 시절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일탈을 꿈꿨다. 그것을 실천에 옮겼든 옮기지 못했든 지금은 그런 것들도 소소한 추억이 되었다. 그 시절, 그 때의 우리만이 가질 수 있었던 감성이 어땠는지 더듬더듬 기억이 났다. 그 모든 걸 다 기억해낼 순 없어도 작가의 글을 읽으며 하나씩 되새겨 보니 어느덧 그 감성들로 인해 촉촉해졌다.
그 시절에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하고 싶은 모든 걸 이루어낼 수 있다는 거였다. 그 바램속에 숨겨진 두려움은 모른 척 했던 것 같다. 꿈꾸는 것만으로도 즐거움 그 자체였으니까. 어른이 되어 보니 마냥 철없게만 느껴지는 그 시절이지만 그 때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건 그 시간 나와 함께 했던 꿈 때문이지 않을까. 잠시였지만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으로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안녕, 내 모든 것>. 처음과 끝을 같이 의미하고 있는 ‘안녕’처럼 그 때의 ‘내 모든 것’에 안녕이란 인사를 해본다.
p.220
언젠가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왔다 갔다. 똑같은 박자, 똑같은 템포, 똑같은 리듬, 똑같은 비트, 똑같은 친구들, 똑같은 웃음. 그러나 똑같은 시간은 아니었다. 지나간 시간들은 가늠할 수 없는 공간으로 소멸되었으며, 새로운 시간들이 천연덕스러운 눈빛으로 출몰할 것이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이 순간 우리는 각자 한없이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