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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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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굳이 다른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까. 1987년 초판이 발행된 뒤로 총 4번의 옷을 갈아입었고,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증거는 111쇄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이 보여주고 있다. 고등학교 때 <천년의 사랑>을 수업시간에 읽으면서 펑펑 운 기억은 나는데 <원미동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없다. 고로 이렇게 유명한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얘기다. -.-;; 읽지 않은 건지, 읽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야 만나봤다.
부천 원미동 23통에는 다양한 소시민들이 살고 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과 원미동에서 태어난 원미동이 고향인 사람들이 뒤섞여 서로 이웃이란 이름으로 더불어 살고 있다. <원미동 사람들>에 수록된 11편의 단편들 속에서 만나 본 사람들은 그 시대에 있을법한 평범한 우리네 이야기다.
많은 도시들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책 속에 들어있다. 옆집에 누가 살고, 그 집의 밥그릇이 몇 개인지도 알았던 그 시대. 오지랖만 넓어서 동네방네 참견하고 다니는 정겨운 이웃들하며, 더운 여름날 평상에 앉아 이웃들끼리 술 한 잔 하는 여유 등. 지금은 보기 힘든 이웃 간의 정다운 모습들이 새록새록 펼쳐진다.
우리네 자화상을 담고 있는 쓸쓸한 이야기들은 슬프면서도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단단하게 내려앉아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쓸쓸하면서도 슬픈, 슬프면서도 단단한 이야기들에 헛헛해진다. 그 때 그 시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지난한 삶에서 발견되는 우리네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쓰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마냥 쓰지도 않은 것이 그 날이 그저 보통날의 하루라서 그럴 거다.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용기가 조금 필요하다. 그 곳에 속해있지만 속하기 싫은 반항심이 슬쩍 돋아난다. 지리멸렬한 그들의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지만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인건 분명하다. 탯줄이 스펙도 아니고, 입에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니니까.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보려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현실은 언제나 비루하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현실은 현실. 사는 곳이 틀리고 사람이 틀려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삶은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이를 악 물어 보아도 현실은 시궁창. 그렇다고 비루한 현실에 마냥 넋 놓고 있기엔 흘러가는 시간은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 평범한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도 많고 보다 나은 내일이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오래 사랑받아온 이야기들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상황들 앞에 내던져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익숙하다. 익숙하다 못해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힘을 느끼게 해 준 <원미동 사람들>. 이제야 읽은걸 후회 하지만 이제서라도 만났으니 다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