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좋은 여행기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감상만 줄줄 끄적거리는 책들이 많아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여행 조금 해봤다고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얘기하는 그 허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름 배낭여행이라며 길바닥생활을 강조하지만 그게 가슴에 확 와닿는 여행기도 없더라. 그렇게 불신만 가득한 여행기인데 여기 조금 다른 책인 것 같아서 관심을 끌었던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둘이 합쳐 계란 세 판의 나이. 서른 살의 아들과 환갑이 넘은 엄마의 여행기다. 아시아를 시작으로 중동까지의 여행기가 담긴 1부.
여행의 첫 관문인 중국. 살을 에는 추위가 그들을 괴롭힌다. 첫 관문이 이러한데 앞으로의 여행이 어떨지 아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아들의 이런 마음은 엄마가 아는지 모르는지 베이징 공원에서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춘다. 처음의 걱정이 우스워질 정도로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가는 엄마의 모습은 생경하다. 조금의 뻔뻔함이 필수인 배낭여행에서 숨겨진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 아들은 낯선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엄마와의 여행이 만만해 보이진 않는다.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절친이나 사랑하는 연인과의 여행도 힘든데 엄마와의 여행이라니. 그것도 배낭여행이다. 길바닥에서의 생활이 뻔한데 엄마와의 배낭여행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부럽다. 배낭여행을 실행으로 옮긴 용기도 부럽고 엄마와 단둘이 세계여행이라는 것도 부럽고 마냥 부럽다.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한 아들의 용기도 대단하지만 그 연세에 배낭여행을 떠난 엄마의 용기에는 정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여행기에서 전해지는 감동과는 전혀 다른, 분명히 급수가 틀린 감동이다. 여행이라는 요리에 엄마라는 조미료가 더해지니 이렇게 색달라진다. 여행 중에 보고 느끼는 것들을 엄마와 함께하니 기쁨은 배가 되고 감동은 두 배가 된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부러워서 배가 아파지는건 덤이다.
지난 어버이날에 엄마와 단둘이 가까운 식물원에 다녀왔다. 짧은 몇 시간 엄마와의 외출이었지만 돌아오는 길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귀찮다고, 멀다고, 바쁘다고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엄마와의 여행을 외면했던 시간들이 많이 미안해지더라. 엄마와의 여행을 실행에 옮기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의 아들처럼 무작정 일을 저질러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어렵게 얻은 용기가 부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엄마와 여행을 꼭 떠날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