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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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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반해 책을 고르는 일은 나에게 드문 일이다. 표지보다 두께에 끌리는 참 이상한 취향. 우선은 담배를 물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에 ‘혹’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권혁웅 시인의 <꼬리 치는 당신> 때문에 고른 책이었다. 시인이 쓴 시가 아닌 시인이 쓴 글에 반했다고 해야 할까. 글이 말로 변하는 순간의 마법을 몸소 체험해서 그랬는지 시인의 글들이 궁금하던 차에 눈에 들어왔다.
김소연 시인이 누군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분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읽다 보니까 번뜩 생각이 딱! 오랜만에 학교 동창을 만난 느낌이다. 어쩜 이렇게 반가울 수가. 시인이자 편집자인 이력이 굉장히 특이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이 글 속에 어떻게 녹아 있을지 궁금했는데 솔직하고 딱 부러져서 좋다.
개인적으로 '시'가 어렵게 느껴져서 잘 읽지 않는다. 시를 잘 몰라서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를 잘 몰라도 이런 산문집이라면 흠뻑 취하기엔 모자라지 않다. 단어를 음미하고, 문장을 곱씹으며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코끝에 알싸하게 전해지는 풍미는 맵지만 달고, 달지만 쓰다. 그렇게 곱씹으며 읽어 내려간 글들이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콕 박혀 떠나질 않는다. 바늘처럼 따끔해도, 가시처럼 따가워도 멈출 수가 없다. 시인의 감성에 휩쓸리게 되는건 순식간이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잠시 방관자로 들여다본다. 내면에서 주변으로, 주변에서 크게는 사회 밖까지 두루두루 우리의 안부를 묻고 있다. 내밀한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썩 달갑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에 안도하는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놓을 수 없는 그녀의 글들이다. 어쩌면 ‘시’가 조금은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글마다 이렇게 좋으니 푹 빠지는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리다고만 생각했던 시가 단단한 무게로 자리 잡았다. 흔들리지 않게 꼭 붙들고 맨다면 시가 아주 많이 좋아질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