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
베른하르트 알브레히트 지음, 배명자 옮김, 김창휘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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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기 전에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했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솔직히 의사에 대해 불신이 깊은 편이다. 나 아플 때 치료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건 안다. 하나같이 권위적이고 건성으로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주 친근할 뿐이다. 모든 의사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그런 모습들이 대부분이라 생긴 불신이다.

 

작년이었던가. ‘해나의 기적이란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선천적으로 기도가 없이 태어난 해나는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들의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해나는 기도 대신 입에 대신 낀 튜브로 꽤나 오래 생명을 유지했다. 그런 해나의 수술을 위해 유럽에서, 미국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의사들을 보면서 생경함을 느꼈다. 한 생명 앞에 모든 것을 초월한 의사들을 보면서 아직도 저런 게 가능하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생존 확률 0퍼센트에 도전한 의사와 환자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에 끌렸다. 책 속에는 9가지의 사례들이 들어 있다. 환자가 그런 상황에 닥치게 된 사유부터 환자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의 이야기까지 작가가 재구성한 사례들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여러 가지 사례들을 나열하고 설명한 게 아니라 내밀한 그들의 심리까지 파악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에 놀라기도 했다.

 

위급한 생명 앞에 기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직업이 의사인 그들도 기적을 바랄까 하는 뿌리 깊은 불신이 어느 정도 옅어지는 느낌이다. 평범한 우리처럼 그들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기적이다. 생명 앞에 누구나 숙연해지는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책 속의 사례들이 좀 특별한 경우라고 하여도 긴박한 상황 속에 치열한 그들의 모습은 정말 간절해 보였으니까.

 

치료에 앞서 의사와 환자의 신뢰는 무척 중요한 요소다. 의사라는 사람에게 불신 깊은 요즘처럼 이런 책은 참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럴 때에 정말 필요한 책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직업 중에 하나인 의사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직업임을 그들도, 우리도 다시 깨우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환자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아니까 이 불신도 언젠가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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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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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표지에 반해 책을 고르는 일은 나에게 드문 일이다. 표지보다 두께에 끌리는 참 이상한 취향. 우선은 담배를 물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에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권혁웅 시인의 <꼬리 치는 당신> 때문에 고른 책이었다. 시인이 쓴 시가 아닌 시인이 쓴 글에 반했다고 해야 할까. 글이 말로 변하는 순간의 마법을 몸소 체험해서 그랬는지 시인의 글들이 궁금하던 차에 눈에 들어왔다.

 

김소연 시인이 누군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분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읽다 보니까 번뜩 생각이 딱! 오랜만에 학교 동창을 만난 느낌이다. 어쩜 이렇게 반가울 수가. 시인이자 편집자인 이력이 굉장히 특이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이 글 속에 어떻게 녹아 있을지 궁금했는데 솔직하고 딱 부러져서 좋다.

 

개인적으로 ''가 어렵게 느껴져서 잘 읽지 않는다. 시를 잘 몰라서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를 잘 몰라도 이런 산문집이라면 흠뻑 취하기엔 모자라지 않다. 단어를 음미하고, 문장을 곱씹으며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코끝에 알싸하게 전해지는 풍미는 맵지만 달고, 달지만 쓰다. 그렇게 곱씹으며 읽어 내려간 글들이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콕 박혀 떠나질 않는다. 바늘처럼 따끔해도, 가시처럼 따가워도 멈출 수가 없다. 시인의 감성에 휩쓸리게 되는건 순식간이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잠시 방관자로 들여다본다. 내면에서 주변으로, 주변에서 크게는 사회 밖까지 두루두루 우리의 안부를 묻고 있다. 내밀한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썩 달갑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에 안도하는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놓을 수 없는 그녀의 글들이다. 어쩌면 가 조금은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글마다 이렇게 좋으니 푹 빠지는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리다고만 생각했던 시가 단단한 무게로 자리 잡았다. 흔들리지 않게 꼭 붙들고 맨다면 시가 아주 많이 좋아질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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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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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 되었던 책이 단편집 <>였다. 입소문에 한 번 펼쳐 들었다가 취향 탓인지 그 때의 컨디션 탓이었는지 읽다가 덮은 책이었다. 이후 까맣게 잊고 지내다 작가의 첩보소설이라는 소리에 호기심이 동했다. 첩보소설의 참 맛을 느끼기에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 생각하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요시다 슈이치의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작가의 책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우선 침저어의 뜻을 알고 가야겠다. 사전을 뒤져도 온전한 뜻을 가진 단어는 아니다. ‘침저저어의 합성어로서 책에서는 첩보 대상국의 시민으로 살며 명령을 받았을 때만 활동하는 공작원을 가리키는 은어로 쓰인다. 일본 내 현직 국회의원이 중국의 첩보원이라는 정보가 신문에 공개되고 경시청 외사2과의 형사들은 혼란에 휩싸인다. 정보의 사실 유무 확인 차 본청에서 급파된 도쓰이가 현장 지휘를 맡게 된다.

 

침저어를 밝히기 위한 단서를 수집하기 위해 나서지만 생각만큼 뚜렷한 증거가 없다. 희미한 단서를 쫓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쿠타가와 겐타로. 후와는 아쿠타가와 겐타로의 행적을 쫓다 그의 비서관인 이토 마리의 실종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첩보전의 매력을 꼽자면 고도의 심리전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은 좋았지만 이들의 속고 속이는 첩보전을 표현하기엔 너무 깔끔하지 않았나 싶다. 첩보소설이기 보다는 경찰소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본, 중국, 미국 세 나라가 사활을 걸고 첩보전에 임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해내는 것에만 너무 집중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첩보소설 특유의 긴장감은 살아 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하드보일드한 느낌도 좋았고.

 

정보에 의한 첩보전은 속고 속이는 치열한 싸움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몸을 내던지는 액션이 없어도 치밀한 두뇌 싸움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워지기도 한다. 깜짝 반전 또한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첩보소설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는 없었어도 살짝 발을 담갔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앞으로 작가의 어떤 작품으로 또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면 기꺼이 만나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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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죽은 남자 스토리콜렉터 18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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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부터 그런 능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히사타로. 히사타로는 그 능력을 반복함정이라고 부른다. 부유한 외할아버지 댁에 설날을 맞이해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가게 된다. 과거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인 외할아버지가 남길 유산 때문에 일가친척들은 눈치 싸움중이다. 유산을 물려받을 사람은 전적으로 외할아버지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필 이럴 때 히사타로는 반복함정을 겪게 되고 오리지널주와 달리 2주차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쓰러진 채 시체로 발견된다.

 

주인공의 특징이 좀 별나다. 똑같은 하루가 아홉 번이나 반복된다. 책에서는 1주차를 시작으로 9번이 나뉘어져 있지만 드라마 재방송을 여러 번 본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엔 이해가 안돼서 읽고, 또 읽고. ^.^;; ‘타임 루프는 조금 식상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그런 소재를 얼마나 신선하게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해도 히사타로의 행동이 조금씩 변하면 결과도 틀려진다. 외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히사타로는 고군분투하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히사타로는 초조해지는데 외할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찾기가 힘들다. 저마다의 동기는 가지고 있지만 애초부터 가늠할 수 없는 그림이었으니 충격의 강도는 배가 된다.

 

그녀가 죽은 밤으로 처음 만났던 작가 니시자와 야스히코. 숙취를 동반한 본격 미스터리에 청춘을 더해 나쁘지 않았다. 올라오는 평들이 좋아서 기대했던 <일곱 번 죽은 남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결말 때문에 챙겨 보는 본격물이다. 이제 작가와의 만남을 시작했으니 본격미스터리의 차세대 주자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행보가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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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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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마을의 유일한 카페에서 6년을 일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루이자는 어쩔 줄 모르겠다. 백수로 지내기엔 처한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사지마비환자의 6개월 간병인을 맡기로 하는데 까칠한 이 남자, 정말 죽도록 싫다.

 

하는 말마다 이죽대고 시비조에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은 다가서기 힘든 사람이다. 감정이 생기기엔 거리가 먼 사람이란 얘기다. 하지만 가까워지면 질수록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은 어느새 싹트고 거부하기 힘들다. 그 끌림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은 앞에 가로막힌 높고 높은 벽들이 실감되는 순간일 테다. 그래서 더 애틋해지고 아련해진다. 매 순간 느끼는 감정들이 결코 쉽지 않아도 이들의 험난한 사랑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응원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사랑 앞에서 희생은 어쩌면 당연한 요구가 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가 한없이 밉다. 하지만 아득해지는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거창한 이름의 희생이 아닌 루이자를 통해 그려본 찬란한 희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책 두께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지만 두께가 무색해질 정도로 빠져 들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묵직하게 가라앉아 애틋해지는 이들 때문에 종국엔 눈물까지 쏙 뺀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뜨거워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사막같이 바싹 메말랐던 내 마음에 한 줄기 단비가 되어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이 겨울, 오랜만에 만나보는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이토록 잔잔한 여운에 고마워지는 소설도 오랜만이다. 힐링이 따로 필요 없다.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버석거리던 내 일상이 조금이나마 말랑말랑해졌으니. 잔잔하면서도 두근거리는 그들의 끌림을 함께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다. ‘하게 확실하지 않아도 사랑은 늘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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