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
셰이머스 라만 칸 지음, 강예은 옮김 / 후마니타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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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특권이라뇨? 능력이죠!

미국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 지금 너를 여기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것 아닐까? 이 질문에 학생의 대답이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 보다 부자이거나 명문가 집안이거나 세인트폴을 조상 대대로 졸업을 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길거리 힙합음악도 거대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음악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편안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자신들의 특권을 애써 지운다. 그리고 그 지운 빈자리에 자기들이 노력을 해서 얻은 자리라고 생각을 한다. 아니 그렇게 집단 최면을 건다. 이들은 기본 적으로 다른 이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책을 읽는데 사용할 수 있고,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렇게 태어난 것이 이들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속해 있는 이 곳을 빠져 나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냉정한 시각이다. 그 시각이 없다면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속담처럼 소위 자기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능력을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2. 2010년 어느날 고등학교 친구와의 대화

평소 가끔 보고 있는 SNS에 “박OO 어머님 돌아가셨다.”라는 소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5년 만에 만난 동기와 짧은 대화를 했다. “너 아직도 사회운동하냐?” 이 질문을 받고 “사회운동이 뭐냐 그냥 노동조합 생활하는 거지”이렇게 시작한 대화 속에 질문을 던진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 이 사회의 불평등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떠들어 대는 나에게 “네가 지금 교사를 하고 있는 것은 네가 정말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된 거야. 그걸 알아야해! 우리나라는 노력한 사람에게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주는 거야.”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나는 이 친구의 말에 동화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강남 한 가운데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무지막지하게 공부만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래도 적당히 놀고 적당히 즐기면서 이만큼 했으면 난 노력한 거 맞지!!!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난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살아온 지역이 강남이고 게다가 내가 취업을 할 때 만 하더라도 사립학교에서는 남자교사를 더 선호 했다. 그리고 적당한 성적의 대학을 그럭저럭한 학점으로 졸업을 했고, 마침 이 시기에 유행하는 대학원도 마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받쳐 줄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의 집도 있었다.(집안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등록금을 걱정시키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더 자세하게 내막을 들여다 본 것이 아니라면 겉으로 보기에 난 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특권이 있었으니 다른 이 보다 쉽게 교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2015년 가을 과학과 선배 교사와 긴 술자리 속에 그 선배가 한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너랑 나랑 차이가 뭘까? 너나 나나 비슷한 수준의 대학을 나오고 너도 대학원 나왔지만 나도 나왔거든 그런데 너는 정교사고 나는 기간제교사인 이유가 뭔줄 알아? 그건 넌 강남 출신이기 때문이야. 니가 근무했던 사립학교 임용된 선생들 잘 봐봐 대다수가 강남 출신 또는 부모가 교육계에 있거나 쫌 있는 집안일 거야....” 그리고 그 선배는 까무룩 엎드려 잠을 잤다. 그의 말을 듣는 그 순간 나에게 편했던 그 모든 것들을 한 걸음 떨어져 보게 되었다.

  

3.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상황의 절망을 넘어 희망의 사다리를 놓고 싶다.

처음 교직에 들어섰을 때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어찌 되었든 나는 하고 싶은 교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정말 자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이끌고 싶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때 그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인데 너무 쉽게 넘겨짚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노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을 만난지 17년이 지나가는 지금 어렴풋이 알 것 만 같다. 그동안 너무 아이들에게 그들과 동떨어져 멀리 있는 이야기를 한 것이고 그 이야기를 기반으로 이끌려고 한 것을!!! 

비범함의 신화는 특별히 선호하는 수취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인 남학생들 말이다. 이 사실은, 오랫동안 엘리트층을 주도해 온 것이 앵글로 남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지만, 세인트폴의 현실과 이곳이 그렇게 나 함양하려고 애쓰는 능력주의를 감안하면 실망스럽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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