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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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과거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태어나 각기 시대를 앞선 예술을 탄생시키고 시대의 비극에 스러져간 세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이 바로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와 한국의 나혜석, 그리고 프랑스의 까미유 끌로델이다.

 프리다 칼로

그녀의 삶을 보면 정말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랍다. 놀랍다는 말보단 사실 경악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그녀는 6세 때 척추성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나중엔 교통사고로 다시 척추와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고 자궁을 심하게 다쳐 무려 32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후 그녀의 삶엔 늘 극심한 고통이 뒤따랐다. 그런 고통에도 그녀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크게 절망하기보단 그녀가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며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써 승화시키려 애썼다. 그녀는 유명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을 하지만 여성 편력이 심한 디에고와 번번이 실패하는 임신으로 인해 더욱 고통과 슬픔에 찬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그녀는 그 모든 고통을 그림에 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굳게 다문 입을 한 숱한 자화상들과 눈에 맺힌 눈물, 피를 흘리는 심장, 태아와 인형에 대한 모든 그림들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하게 해준다.

 나혜석

한국인이라면 우리의 과거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과거에 여성이 유학을 다녀오고 열정적인 집필과 예술 활동을 하고 자유로운 연애관으로 사랑을 위해 가정을 등지는 행위가 얼마나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을지 알 만하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으로 뛰어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매우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항상 그녀의 뒤엔 불륜으로 인한 이혼녀라는 수식이 붙어다녔다. 훗날의 평가로 그녀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라 불려진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에 처음으로 서양화를 선보이고 서구의 다양한 표현 기법을 수용하며 독자적인 예술 활동을 해나갔던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복잡한 개인사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던 사회의 차가운 시선으로 점차 비극으로 치닫게 되어 결국 어느 병원의 무연고자 병실에서 행려병자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그림엔 프리다와는 달리 그 고독과 절망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게 특이할 만하다.

 까미유 끌로델

로댕의 연인으로 유명한 까미유 끌로델. 그녀의 삶 역시 불행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녀 또한 소아마비를 앓고 난 후 한쪽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으로 일생을 살았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당시 여성으로선 드물게 예술 교육을 받았고 후에 로댕의 제자가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로댕과의 만남은 그녀의 험난한 인생의 시초가 되었다. 로댕과 그녀는 불타는 사랑에 빠지고 함께 작품을 만들며 뛰어난 작품들을 탄생시키지만 까미유는 늘 로댕의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로댕을 떠난 그녀는 작품 활동에 열을 올리지만 역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악연이던 그녀의 친모에 의해 정신 병원에 갇히고 그곳에서 30여년을 살다 쓸쓸히 죽게 된다.

 이상의 내용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부족한 듯 하지만 그녀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내게 충분한 가치를 주었다. 지면의 부족으로 많은 작품이 실리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말이다. 세 여성 모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불행한 삶을 살다 갔다. 프리다는 늘상 병상에 눕곤 했고 그토록 가지고 싶던 아이도 갖지 못해 인형이나 애완 동물로 그것을 대신해야만 했으며 나혜석과 까미유는 고독과 절망 속에 쓸쓸하게 죽어갔다. 저자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녀들이 오늘날 탄생했더라면 마음껏 자신들의 기량을 펼쳐나갔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이 빛나는 건 그것들이 모두 고통에 찬 그녀들의 삶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디 위대한 예술은 고통과 암흑 속에서 탄생하는 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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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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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이 단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고 운명과의 사투를 벌이게 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책을 좋아하는 이의 눈을 고정시키고 마음을 사로잡게 마련이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장서관을 동경하는 이라면 이 책 첫장에 나오는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는 매혹적인 이름을 접한 즉시,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책의 마법에 걸리어 주인공을 따라 훌리안 카락스라는 검은 그림자의 자취를 뒤쫓는 모험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 모험은 우리의 눈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우리의 수면을 빼앗고 호흡마저 잊게 한다.

다니엘 셈페레는 열 살 무렵 그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가게 된다. 그곳의 규칙에 따라 그는 한 권의 책을 선택하게 되고 그가 선택한 책이 그의 성장과 함께하며 작가의 말마따나 그의 기억에 하나의 궁전을 새겨놓게 된다. 다니엘이 책들의 무덤에서 빛의 세계로 끄집어낸 그 책은 단 한 권 밖에 남지 않은 훌리안 카락스의 ''바람의 그림자''다. 책에 매료된 다니엘은 작가의 다른 책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훌리안의 책을 모조리 찾아 불태워 없애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다니엘 역시 그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며 그 모든 위협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훌리안의 과거의 발자취를 뒤쫓게 된다.

이 책은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기도 한 반면, 다니엘과 훌리안 카락스의 병렬된 운명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서스펜스물이기도 하다. 다니엘을 둘러싼 모든 사건이 내전 전후의 스페인 바로셀로나를 배경으로 사랑과 배신과 증오와 슬픔으로 점철된 회색빛 거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사건들의 근본원인이 바로 사랑임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낭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스티븐 킹의 코멘트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랑을 하고 배신을 당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끝내는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그들의 슬픔과 절망이 뒤섞인 뿌연 안개가 커튼처럼 내려와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거리의 암흑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든다. 그 거리에서 주인공과 함께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때론 두려운 마음으로 또 슬픈 마음으로 길을 헤매어 다녔다. 밤부터 새벽까지 그렇게 먼 이국땅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나는 스르르 잠이 들곤 하였다.

이렇듯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오랜만에 활자가 눈을 빨아들이는 듯한 대단한 흡입력과 거침없이 술술 읽히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해주는 역자의 유려한 번역과 작중 인물, 특히 페르민의 화려한 언변과 유머, 풍부하고 아름다운 수사에 몇번이나 감탄을 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독서라는 예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그것은 내밀한 의식이라고, 책은 거울이라고, 우리들은 책 속에서 이미 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것만을 발견할 뿐이라고, 우리는 정신과 영혼을 걸고 독서를 한다고, 위대한 독서가들은 날마다 더 희귀해져가고 있다고'' 작가가 한 인물의 입을 통해 드러낸 독서관을 유심히 되새겨본다.

나는 지금 내 앞에 놓인 두 권의 책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의 이름으로 된 같은 표지의 책. 안개낀 회색빛 거리를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듯한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사진이 이 책의 표지다.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집어들 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표지 때문이었다. 바람의 그림자라는 제목과 사진이 주는 그 음울하고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의 사진을 바라보는 지금은 처음과는 달리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길 끝을 응시하게 된다. 그 안개 속으로 사라진 듯한 한 남자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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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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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이 울려대는, 한치 앞을 가려볼 수 없는 안개 속에 별장 하나가 우두커니 놓여있다. 겉으로 보기엔 어느 시골에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조용한 별장이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집안 곳곳에 긴장과 불안과 절망의 냄새가 가득 배여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안개와 무적소리는 이미 집안 깊숙이 침투해있다. 탁자 위의 위스키병과 책장에 꽂힌 쇼펜하우어와 니체, 보들레르 등의 서적들이 집안의 음울한 분위기를 암시하는 가운데 메리는 굽은 손가락을 쉴새없이 까딱거린다. 그녀의 남편 티론, 두 아들 제이미와 에드먼드는 그녀를 불안한 표정으로 관찰한다.

이 『밤으로의 긴 여로』는 티론 가족이 아침으로부터 밤으로 흘러가는 하루동안의 이야기이자, 저자 유진 오닐의 과거 이야기이다.

티론 가족들은 모두 조금씩 비정상적이다. 요양소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르핀을 맞기 시작한 메리, 가족에 대해 지나칠 만큼 인색한 티론, 술주정뱅이 큰 아들 제이미, 폐병에 걸려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대는 작은 아들 에드먼드. 이들은 각자 자신의 치부를 부인한 채 서로의 상처를 할퀴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아주 잠깐씩 모든 것의 탓을 운명으로 돌리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곧 다시 말다툼이 시작되고 해가 저물어갈수록 그 고도는 더해간다. 그들의 신랄한 어조와 고함섞인 비난은 굳이 무대에 올리지 않고 극본 자체로만 봐도 절실하게 느껴진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극중 메리는 말한다.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현실을 외면한 채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건 어떻게 보면 무책임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하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운명을 탓하지 않고서 어찌 그것을 견딜 수 있겠는가. 메리의 대사는 오닐이 그의 가족에 대해 보내는 연민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오닐은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고 그래서 이 작품을 썼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이다. 오닐은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당신,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그는 이 작품을 쓰며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눈이 벌겋게 부은 상태로 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는 그의 부인의 회고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대변해준다. 실로 그에게 너무도 힘든 작품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그의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이 작품을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 발표하지 말 것이며 그 이후에도 절대로 무대에 올려서도 안 된다고 부탁했다. 허나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그에게 4번째 퓰리처상을 안겨줬으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오닐이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티론 가족은 끊임없이 서로의 상처를 들추어내지만 그들의 마음 속 깊이엔 가족들을 향한 애정과 연민을 품고 있는게 느껴진다. 아마도 오닐이 피와 눈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이 작품을 썼기 때문이 아닐런지. 읽는 동안 문득문득 내 가족이 떠올라 쉽게 읽어내릴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나는 아마도 이 작품과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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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퀘이크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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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 보면, 특히 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씩 내가 왜 이제서야 이렇게 재밌는 작가를 알게 됐지?,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중 대표적인 두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커트 보네거트다. 두 사람이 각각 오십대와 팔십대가 되고 나서야 나는 그들을 알게 되었다. 참, 늦기도 하지. 하긴 내 나이상 좀 더 일찍 알았더라도 별반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서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알려지다시피 하루키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암튼, 나로선 감사할 따름이다.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관에서 유달리 말끔한 모습으로 꽂혀있는 이 책을 발견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책이 공식적인 그의 마지막 작품이란다. 아뿔싸. 마치 실수를 한 것 같았다. 난 아직 그를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지막이라니. 그 유명한 <제5도살장>도 접하기 전이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호기심이 의지를 넘어서버렸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책은 그의 회고록이었다. 물론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자전적 요소가 짙게 배인 이 작품을 달리 뭐라고 부를 것인가. 작가는 킬고어 트라우트라는 분신을 내세워 타임퀘이크라는 기발한 장치를 이용해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낸다. 타임퀘이크. 하나님의 근육에 일어난 우주적 경련으로 우주는 자기 확신의 위기를 겪고 10년의 시간을 수축해버린다. 그리하여 이 책의 모든 가공인물들은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1991년부터 2001년에 내닫는 길을 다시 걸어가야만 하게 되었다. 바로 기지감! 그것을 느끼며 말이다.

  세상은 무대이고, 인간은 배우일 뿐이다. 이 말은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다. 트라우트는 무대 연극을 '인공 타임퀘이크'라 부른다. 작가는 말한다. "다음번에 타임퀘이크가 일어나면 반복기 첫머리에 이 말을 잊지 말라.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 (39p) 결국 인간들은 10년간 연극을 하게 된 셈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밝혀낸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에 대한 얘기도 한다. 자신이 참전한 제2차 세계 대전, 그의 말대로는 서구 문명의 두 번째 자살 기도에 대해서도, 그가 쓴 작품들의 뒷이야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물론 그 특유의 농담처럼. 잘 모르고 보면 상당히 산만하다. 나 역시도 초반에선 이게 뭔가 하는 맘으로 헤매다 중반에 가서야 적응을 하게 되었으니.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접하다 보면 곧 그의 코드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다. 반전, 냉소, 블랙유머, SF, 비참함, 그러나 경쾌함. 경쾌하게 구슬픈 그의 농담이 그의 작품을 이룬다. 실컷 웃다가 마지막에 가서 묘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게 그의 작품이다. 살아 있음이 곧 똥 무더기라고 말하면서 고양이도 끌고 들어오지 않을 물건 같은 비참함을 느끼게 하면서 우리가 지상에 온 건 빈둥거리며 지내자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종반엔 하늘의 빛점과 빛점 사이의 까마득한 거리를 빛의 속도보다 백만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식이요, 영혼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어찌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타임퀘이크 후 무감각 증후군에 빠진 전세계에 그의 분신 킬고어 트라우트가 던진, "당신은 아팠지만 이제 나았고, 해야할 일이 있다"는 만트라는?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그의 작품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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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인터뷰 특강 시리즈 2
한겨레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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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이 말은 나를 기분 좋게 자극하는 단어 중 하나다. 그런데 가만, 상상력은 상상력인데 21세기를 바꾸는, 이라니. 과연 상상력이라는 게 한 세기를 좌우할 만큼 그렇게 영향력이 크던가.

이 책을 읽고난 나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그리고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등져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 한홍구 교수가 말했듯 우리에겐 꿈을 꾸는 것조차 통제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정하고 또 그와 함께 금기를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이 나라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것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따르지 않으면 바로 엄벌에 처해졌으니 감히 금기를 어기거나 다른 것을 시도하는 상상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상상이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꿈, 그 자체였다. 그들은 권력에 대항하고 끊임없는 투쟁을 하며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 발전된 사회에서 맘껏 꿈을 꾸며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은 모두 그들이 상상하고 꿈꾸고 행동하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자유를 얼마나 올바르게 누리고 있는가. 사실 지금도 도처에 그런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들이 남아있다. 군대가 그렇고 학교가 그렇고 사회 모든 조직들이 그렇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방송매체나 언론도 마찬가지다. 알고보면 우리의 정신은 그 모든 것에 세뇌되어 이제는 아예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홍세화가 보고 아연했다는 광고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문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혀를 찬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무렵만 해도 반공글짓기대회라는 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엔 이승복 어린이상이 떡하니 놓여 있었고 선생님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이승복을 본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빨갱이란 단어를 접한 것도 그 무렵이고 지금도 ''북한=김정일''이라는 식의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세뇌당한 정신에서 세상을 바꿀만한 건강한 생각이 나오기란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상상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힘을 기르는 것. 이 책에서 6명의 지식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한비야는 세상을 무대로 삼고 한 발짝씩 나아가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 그들과 함께 하기를 부탁하며 자신의 긴급구호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신화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이윤기는 역시 그의 전공답게 현대인들에게 신화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진보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홍세화는 교육과 인간에 대해 그리고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인가에 대해 말하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들을 끄집어내 비판한다. 한홍구는 억압된 과거를 예로 금기를 깨고 꿈을 꾸라고 말하고 오귀환은 과거의 문명들을 설명하며 선의를 가지고 흐름을 선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익을 나누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충격을 많이 받은 부분이 박노자의 강연. 민족주의는 마약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얘기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중국이면 중국, 일본이면 일본, 우리는 이 나라들을 나라별로 동질적인 집단으로 인식합니다. 그게 큰 문제입니다. 그게 바로 민족주의인데, 우리가 민족주의라는 마약을 마약인 줄도 모르고 그냥 습관적으로 피운다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일본이나 중국을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보고 그 안에 숨은 계급적·지역적 모순, 개인적 모순은 모르고 지나칩니다.

p.143 박노자의 강연 중


민족주의라는 마약에 중독되었다라. 내 생각엔 중독보다는 세뇌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교육을 통해 언론과 방송을 통해 ''국가=사회=가족=나''라는 식의 공식이 계속 우리의 머리에 주입이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도표까지 그려가며 이것을 외우도록 강요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것을 깨닫고도 극복하지 못하면 그땐 중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민족주의가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것은 좀 더 생각해볼 문제라고 본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이 책의 제목에 드러난 상상력이라는 키워드와는 별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결국 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상상력.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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