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를 추억하며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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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카뮈의 몇 가지 면모를 상키시키고자 할 뿐이라고 했다. 시간 순서대로 카뮈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가 아니다. 일종의 카뮈에 대한 스케치다. 그렇지만 마치 퍼즐을 하나하나 끼워 넣듯, 종반에 가서는 카뮈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나는 그런 책이다.

 그르니에는 카뮈의 글에서 어떤 부르짖음, 외침, 절규를 듣는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카뮈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적어도 오래 전에 읽은 「이방인」을 돌이켜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니까. 그리고 비로소 마주한 이 말은 쉬이 잔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그가 「이방인」을 왜 썼는지, 아니 쓸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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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1 - 진옥섭의 예인명인
진옥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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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前無後無),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저자가 한 팸플릿에서 썼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전무후무(全舞珝舞), 가장 완전한 춤. 그 춤판의 고수들이 노름마치다. 과연 앞으로는 다시 볼 수 없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그들의 이야기가 이 두 권의 책에 묶였다. 최고의 명인이라 불리는 18인의 고수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편히 앉아 그들의 삶을 엿본다는 게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누군가가 예술은 곧 놀이라 하였다. 그러나 놀이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예술이 되려면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 만만치 않은 놀음판에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이 있다. 놀음을 마치게 할 정도의 최고의 명인을 일러 남사당패 은어로 '노름마치'라 하니 되뇌여볼 수록 과연 그보다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4무[武·舞·巫·無]에 사무친 한 사내가 있다. 그 사내가 바로 진옥섭, 이 책의 저자다. 그는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심지어는 자신들의 과거를 꼭꼭 숨기며 사는 명인들을 찾아가 그들을 무대에 올리고 이제는 책으로까지 엮었다. 장단을 따라 춤을 추는 듯한 그의 문장은 그대로 춤판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눈이 활자를 읽는 게 아니라 춤추는 문장이 저절로 내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진양조로, 때로는 휘몰이로 치달으며.

  그 장단에 따라 18인의 명인들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은 위로 치솟다가 아래로 푹 가라앉기를 수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초야에 묻힐 뻔했던 춤꾼이 무대에 올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땐 내 마음엔 뜨거움이 치밀어 오른 반면, 끝내 그토록 기다리던 빛을 보지 못하고 작고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다. 일생을 기다리던 명무전에서 춤추고픔을 억누르며 북을 쳐야 했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춤꾼 허종복의 이야기에선 새어나오는 한숨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걸작'에 지정되게 만든 '조선성악연구회'를 이루던 명인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국밥집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또한 재주로 인해 남다른 삶을 살아온 각각의 명인들의 한 많은 세월에 감히 어떤 감상을 드려야할지. 그들조차도 가족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함구해온 이야기들이다. 나로서는 그저 책으로나마 그들을 알게 되어 송구스러움과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책은 때때로 크고 작은 영향력을 발휘하곤 한다. 읽고 나서 혼자 간직하고픈 책이 있는 반면, 드물긴 하지만 세상에 알려야할 의무를 느끼게 해주는 책들도 있다. 이 책이 그러하다.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각자의 취향이 유독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책이므로.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울고 웃게 만드는 책, 무엇보다 우리 것이라 더 무심했을 지도 모르는 우리의 예술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한 많은 삶을 살아온 명인들의 구성진 입담과 저자의 재기 넘치는 말놀이가 당신을 웃게 하고 또 울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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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기록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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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글을 쓰기보단 말하기에 더 익숙한 존재다. 사실인즉, 생각보다 훨씬 더 글쓰기는 어렵다. 이 시대의 문장가 김훈마저도 밤새워 원고지 한 장을 채우고 그것마저 마음에 차지 않을 땐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할 정도로 보면 글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에겐 더욱더 글쓰기는 고통을 빼놓을 수 없는 절실한 행위다. 물론 창조적 고통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서 어떤 숭고함마저 품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요즘 출판계를 보면 이 글쓰기가 더이상 글쟁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하다. 그만큼 글쓰는 능력이 요구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입을 떼자마자 읽고 글자를 깨우치자마자 외우기 바쁜 이 시대 사람들은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서야 비로소 자신이 글쓰기와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오래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런 그들을 위해 각종 글쓰기 관련 서적들이 만들어지고 심지어 어떤 이는 밥하기 보다 더 쉬운 글쓰기란 표제로 펜대 굴리기에 주눅든 이들에게 희망어린 유혹의 손짓을 내보인다.

 그런 와중에 옛 문인들의 문장에 눈을 돌린 이들이 있다.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조선 지식인 시리즈를 낸 그들의 책 중 내 손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조선 문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사유를 모아 엮은 것이다. 박지원, 이덕무, 이익, 정약용, 허균 등 익히 들어 앎직한 옛 문장가들이 글쓰기에 대해 어떤 마음 자세를 지니고 그것을 다루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나는 정약용과 최한기의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정약용은 문장이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고, 최한기는 글은 글쓴이의 얼굴이라 했다. 과연 글을 쓰려 하는 자는 우선 자기가 쓸 수 있는 것을 써야 하며 애써 밖에서 끌어다 뼈대 부실한 글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글은 곧 글쓴이의 얼굴이라 하니 결코 경박한 마음으로 백지를 대해서도 안 된다. 백 번 천 번 지당한 말씀이다.

 이 책에 들어차 있는 사유들은 모두 한 장 분량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글들을 통해 현대인이 배워야할 점들이 많기에 유효한 고전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다만 거슬리는 건, 각각의 글 뒤에 달아놓은 저자들의 코멘트다. 기왕 코멘트를 달려면 책의 주제에 걸맞게 글쓰기와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를 중점으로, 그리고 조선 문인들의 글을 보충하는 방향으로 좀 더 자세하고 무게 있게 달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마치 문화교양지에서나 어울릴 듯한 뜬금없는 코멘트는 확실히 책의 진가를 떨어트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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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밑그림은 불안과 모호함과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란 걸 잠시 잊고 살았다. 어둡고 추운 거리를 오래 걷다보면 불 켜진 모든 창 안은 순결한 기쁨으로 가득해 보이지. 손톱으로 긁어내기 전엔 밑그림은 보이지 않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운명의 문신이 내 어깨 어딘가에 새겨져 있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견고한 지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예술가. 나는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이즈음의 나는 인생의 바닥을 떠나왔다고 생각했다. 차갑고 어두운 수면을 벗어나 참았던 들숨을 내뱉으며 이제는 삶이 주는 달콤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날들이 가까웠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다락의 바닥에 펼쳐진 내 사진들, 일용할 양식과 바꾸고는 그토록 나를 포만하게 해주었던, 그러나 이제는 함부로 박스에 처박아둔 기자재들, 베르나르 포콩이나 맨레이의 사진집들이 붉은 노끈으로 묶여져 쌓여 있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지금 내가 그것들과 씨름했던 진창의 시간보다 더 어둡고 끈적이고 가망 없는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아프도록 생하게 깨우쳐 주었다.
 
 

 

 - 정미경

  사진은 기억의 저장소다. 이따끔 그것은 지난 날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그 안에 시선이 젖어들며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삶이란 사진 한 장이 주는 낭만에 흠뻑 젖어들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색이 바랜 사진은 주인공의 옛 사랑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낭만이 아니라 배신이었듯이.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의 삶은 그럼에도 편하지가 않다. 삶의 밑바닥이 그를 끌어내려 가라앉히려 하고 그는 그것들과 끈적이는 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옛 사랑의 배신과 함께 밀려오는 아픔과 슬픔. 그 앞에 무기력한 주인공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오지만 그래도 그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릿빛 사진을 바라보며 행복했던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정미경의 소설은 종종 연민의 감정을 일으킨다. 세상은 차갑고 주인공들은 나약하고 무기력하다. 그러나 절대 그녀의 숨결은 끈적이지가 않다. 그 진창 속에서 그녀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안다. 여성적이지 않은 그녀의 문체가 좋고, 아픔을 마주하게 하는 그녀의 시선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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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火葬)

 

  병원 유치창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에 해가 비치어 눈꺼풀 속으로 분홍의 바다가 펼쳐졌고, 그 바다 위에 반점 몇 개가 떠다녔다. 눈꺼풀 속 분홍의 바다 위에서 반점들은 수평선 쪽까지 흘러갔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눈꺼풀 밑의 바다는 내 생애로 건너갈 수 없는 낯선 바다처럼 보였다. 쪼르륵...... 쪼르륵...... 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멀고도 선명했다. 그 분홍의 바다 저쪽 끝으로 죽은 아내의 상여가 흘러가고 있었다. 방광의 통증이 수그러드는 어느 순간에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 김훈

 

  아내의 죽음 앞에서 그는 덤덤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방광의 무게에 짓눌려 슬퍼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장례 절차를 밟는 중에도 그는 여름 광고에 쓰일 리딩 이미지와 문구를 결정하고 각 부서에 일을 분담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눈물 대신 붉은 오줌 방울을 떨어뜨리는 그가 안쓰럽다. 꺼져간 아내의 몸을 태우고 젊은 여직원의 몸을 탐미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채 그녀의 퇴사서류에 사인을 하는 그가 쓸쓸하게 보인다. 상중에도 '내면여행'과 '가벼워진다'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직원을 바라봐야하는 그가 애처롭다. 보리를 안락사시키고 돌아서는 그는 어떤 마음이였을까. 한결 가벼워졌을까.

 

  고인의 영정 앞에서 통곡을 하는 이들은 이미 충분히 그들을 짓누르는 무거움에 질렸기 때문에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나름의 생존방식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쓸쓸한 밤에 홀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위 속에 든 것을 억지로 게워내는 것도,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달리는 것도 가벼워지기 위한 방책이 아닐는지. 살아있음은 온 몸으로 세상의 무게를 지탱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무겁고 고달프다. 삶이 그러하기에 김훈은 이 소설에서 무거움을 이야기하고 결국엔 '내면여행'의 무거움 대신 '가벼워진다'의 가벼움을 택한게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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