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火葬)

 

  병원 유치창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에 해가 비치어 눈꺼풀 속으로 분홍의 바다가 펼쳐졌고, 그 바다 위에 반점 몇 개가 떠다녔다. 눈꺼풀 속 분홍의 바다 위에서 반점들은 수평선 쪽까지 흘러갔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눈꺼풀 밑의 바다는 내 생애로 건너갈 수 없는 낯선 바다처럼 보였다. 쪼르륵...... 쪼르륵...... 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멀고도 선명했다. 그 분홍의 바다 저쪽 끝으로 죽은 아내의 상여가 흘러가고 있었다. 방광의 통증이 수그러드는 어느 순간에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 김훈

 

  아내의 죽음 앞에서 그는 덤덤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방광의 무게에 짓눌려 슬퍼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장례 절차를 밟는 중에도 그는 여름 광고에 쓰일 리딩 이미지와 문구를 결정하고 각 부서에 일을 분담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눈물 대신 붉은 오줌 방울을 떨어뜨리는 그가 안쓰럽다. 꺼져간 아내의 몸을 태우고 젊은 여직원의 몸을 탐미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채 그녀의 퇴사서류에 사인을 하는 그가 쓸쓸하게 보인다. 상중에도 '내면여행'과 '가벼워진다'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직원을 바라봐야하는 그가 애처롭다. 보리를 안락사시키고 돌아서는 그는 어떤 마음이였을까. 한결 가벼워졌을까.

 

  고인의 영정 앞에서 통곡을 하는 이들은 이미 충분히 그들을 짓누르는 무거움에 질렸기 때문에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나름의 생존방식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쓸쓸한 밤에 홀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위 속에 든 것을 억지로 게워내는 것도,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달리는 것도 가벼워지기 위한 방책이 아닐는지. 살아있음은 온 몸으로 세상의 무게를 지탱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무겁고 고달프다. 삶이 그러하기에 김훈은 이 소설에서 무거움을 이야기하고 결국엔 '내면여행'의 무거움 대신 '가벼워진다'의 가벼움을 택한게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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