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1 - 진옥섭의 예인명인
진옥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전무후무(前無後無),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저자가 한 팸플릿에서 썼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전무후무(全舞珝舞), 가장 완전한 춤. 그 춤판의 고수들이 노름마치다. 과연 앞으로는 다시 볼 수 없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그들의 이야기가 이 두 권의 책에 묶였다. 최고의 명인이라 불리는 18인의 고수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편히 앉아 그들의 삶을 엿본다는 게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누군가가 예술은 곧 놀이라 하였다. 그러나 놀이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예술이 되려면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 만만치 않은 놀음판에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이 있다. 놀음을 마치게 할 정도의 최고의 명인을 일러 남사당패 은어로 '노름마치'라 하니 되뇌여볼 수록 과연 그보다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4무[武·舞·巫·無]에 사무친 한 사내가 있다. 그 사내가 바로 진옥섭, 이 책의 저자다. 그는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심지어는 자신들의 과거를 꼭꼭 숨기며 사는 명인들을 찾아가 그들을 무대에 올리고 이제는 책으로까지 엮었다. 장단을 따라 춤을 추는 듯한 그의 문장은 그대로 춤판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눈이 활자를 읽는 게 아니라 춤추는 문장이 저절로 내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진양조로, 때로는 휘몰이로 치달으며.

  그 장단에 따라 18인의 명인들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은 위로 치솟다가 아래로 푹 가라앉기를 수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초야에 묻힐 뻔했던 춤꾼이 무대에 올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땐 내 마음엔 뜨거움이 치밀어 오른 반면, 끝내 그토록 기다리던 빛을 보지 못하고 작고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다. 일생을 기다리던 명무전에서 춤추고픔을 억누르며 북을 쳐야 했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춤꾼 허종복의 이야기에선 새어나오는 한숨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걸작'에 지정되게 만든 '조선성악연구회'를 이루던 명인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국밥집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또한 재주로 인해 남다른 삶을 살아온 각각의 명인들의 한 많은 세월에 감히 어떤 감상을 드려야할지. 그들조차도 가족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함구해온 이야기들이다. 나로서는 그저 책으로나마 그들을 알게 되어 송구스러움과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책은 때때로 크고 작은 영향력을 발휘하곤 한다. 읽고 나서 혼자 간직하고픈 책이 있는 반면, 드물긴 하지만 세상에 알려야할 의무를 느끼게 해주는 책들도 있다. 이 책이 그러하다.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각자의 취향이 유독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책이므로.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울고 웃게 만드는 책, 무엇보다 우리 것이라 더 무심했을 지도 모르는 우리의 예술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한 많은 삶을 살아온 명인들의 구성진 입담과 저자의 재기 넘치는 말놀이가 당신을 웃게 하고 또 울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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