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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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 있는 곳
  이 책을 좋아하는 선배가 한 명 있다. 그 선배는 이 책을 극찬했다. 선배가 쓰는 소설 뿐만 아니라 선배의 인생도 위대한 개츠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선배의 소설은 이야기를 꾸려가는 힘의 맥락에서 꽤 닮고 싶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난 이 책을 읽으려고 벼르었다. 이 책을 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위대한 개츠비> 영화가 개봉을 하였고 개츠비 붐이 일어났다.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책과 관련된 사람과 관련된 곳에서 개츠비를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었다. 나에게는 그 환호가 가식 같았다. 동요되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핑계거리가 만들어지고 이 책을 외면하고 있었다. 마지막 여름방학이 시작 되고 집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리며 도서관에서 잔뜩 빌린 책들 속에서 예전에 샀던 개츠비가 떠올랐다. 일찍이 본 영화의 여운 때문인지, 개츠비를 좋아하는 선배가 떠올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을 펼쳤다. 몇 번 읽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1장 초반을 지나자 책은 순식간에 읽혀졌다. 인물의 동선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세계 1차대전을 지나고 대공황을 앞두고 있는 화려한 뉴욕, 물질만능주의가 최고로 꽃을 피웠던 시기, 그 한가운데에 놓여진 사람들. 그들의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개츠비는 위대했다.
  위대, 순수한 의미로 위대했다고 할 수도 있고 반어적인 의미로 위대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개츠비는 물질이 넘쳐흐르는 곳에서 자신만의 순정을 끝까지 지켜내었다. 그 모습이 바보같고 답답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골수적인 면모가 그를 위대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개츠비의 아이러니가 발견된다. 사실 정확한 개츠비는 알 수 없다. 그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 책 속에 파도처럼 몰려나왔던 인물들은 개츠비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품어내고 있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개츠비의 면모가 드러나지만 왠지 이것도 확실치 않을 것 같다는, 의문이 떨쳐지지 않는다.
   빵빵대는 클랙슨 소리는 크레셴도로 커져만 가고, 나는 몸을 돌려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뒤를 힐끗 돌아다보았다. 웨이퍼 과자 같은 달이 개츠비 저택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은 아직 훤한 개츠비네 정원의 소음과 웃음소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밤을 밝히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과 커다란 문으로부터 공허함이 넘쳐나, 포치에 선 채 정중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집주인의 실루엣에 완벽한 고독을 더했다. (p74)
  닉은 개츠비의 관찰자이다. 개츠비의 근처에서 화려한 삶과 고독한 삶을 보고 그를 기록으로 남겼다. 미국의 경제 대호황은 작품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이면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배경, 그 배경 속에서 살았던 작가는 위대한 개츠비를 만들어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F.스콧 피츠제럴드도 만만찮은 삶을 살았다. 쉽지 않은 사랑과 사랑을 위해 살았던 작가와 개츠비는 많이 닮아있다. 어쩌면 작가는 과시하면서도 위로를 받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쓸쓸함이 많이 묻어났던 소설이었다. 위대하지만, 위대함보다도 못한. 그러나 위대한. 단어 자체만으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제법 멀어보이지만, 알고보면 위대함은 꿋꿋이 한 길을 걸은 사람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사랑의 길을 걸었던 개츠비의 마지막이 행복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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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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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의 즐거움
 
  한국의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면 성석제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밌냐고 설명하라고 한다면,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지인과 함께 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도 성석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지인은 지루하게 군대 이야기를 꺼내면서 책을 싫어하는 군인 선임이 있었는데 하루는 너무 따분해서 짧은 소설이라도 읽어볼 요량으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고 했다. 선임은 그 책이 너무 재미있었던 나머지 성석제 작가의 책만큼은 꼭 사서 읽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지인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감탄하면서 그 책이라면 그럴만도 하지. 라는 평을 내놓았다. 독서의 폭과 깊이가 얕은 나로서는 그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그때 당시 읽었던 성석제의 다른 단편집『지금 행복해』를 떠올리면서 성석제 작가의 책이 그리도 재미있었던가를 혼자 곱씹고 있었다. 소설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 재밌고 따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해』는 책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개인적으로 언어유희도 좋아하지 않고 이야기들도 내게 크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이 재미있다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샛노란 예쁜 책이 눈에 띄었고, 옛 생각이 나서 꼽아 들었다. 도서관은 책의 무덤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왜 생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단편집의 제목들이 평범하면서도 독특했다. 책 전체적으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어린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속삭이듯 말하는 이야기의 보따리였다. 이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거나, 바보이거나 미련스러운 인물들이 많았다. 특히 이 단편집에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인물은 남가이였다. 남가이는 태어났을 때는 비루하게 태어났다. 사람들은 남가이를 피하기 바빴다. 어느 특정시기가 지나자, 동네 처녀들 나아가서는 동네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의 묘한 향기와 출충한 외모도 한 몫을 했지만, 그의 기가막힌 술수에 사람들이 그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치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읽었던 영웅소설을 보는 듯하였다. 그래서 신선했다. 평소 나름대로 옛이야기와 소설을 어떻게 하면 좋은 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지 고민을 했었는데, 이 단편집이 그 좋은 예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남가이가 어디를 가나 그 냄새 아닌 냄새를 맡은 여자들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후줄근한 옷을 입고 때에 전 수건을 맨, 그리고 똥을 푸는 도구를 들고 다니는 그를 보고는 대부분은 아닌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향기 뒤에는 폭우와 같은 똥냄새가 엄습했다. 여자들은 코를 막았다. 그러면서 희미하고 사랑스러운 냄새를 더이상 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세무서장의 딸은 달랐다. 그 여고생은 단 한번에 그 냄새의 주인공이 남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가슴을 내밀며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귀여운 망아지처럼 뒤흔들었다.(p157~8)
  남가이의 매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한 두명씩 늘어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 단편은 몇 번의 전복이 일어난다. 전복까지 몇 가지 단서들이 있었다. 돈도 없이 학교를 다니게 되는 과정이 그러했다. 남가이를 탄압하려고 하면 이상한 일들이 생기고 오히려 그 탄압이 남가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로 바뀌었다. 아이러니가 소설 속에 잘 녹여 있었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이와 비슷한 패턴을 지니고 있다. 탄압을 하려다가 망한 사람들, 탄압을 당해도 자신의 소신을 한껏 미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구성하는 사회와 사회 속에 벌어지는 일들이 어우러져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편의 진수를 보여주는 단편집이다.
  "이삿짐쎈터에서 한 소행으로 봐서는 정말 욕밖에 안 나오지만, 둘 다 피해자니까 이걸로 식사라도 해요."
  청년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차를 탕탕 치는 소리와 출발, 하는 소리가 들리고 트럭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숙은 택시에 올랐다. 나는 택시 문을 붙잡았다.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그 여자한테 저랟로 그 보관료 주면 안돼."
  당숙은 이미 무슨 책인가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책을 빼앗으며 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당숙은 그러겠다고 하면서 차 문을 닫았다. 내가 차에서 손을 떼자 당숙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새로 문고판 책을 한권 꺼내들며 출발, 하고 소리쳤다. 택시는 떠났다. (P137)
  아무리 발버둥치며 뭐하는가, 욕심을 부리던 욕심을 부리지 않던 인생이 즐거운 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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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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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기어다니는 소설

  '그로테스크' 하면 빠지지 않는 작가가 있다. 바로 편혜영이다. 지금은 그 경향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녀의 초기작 대부분이 그로테스크하다. 기괴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아오이 가든』 단편집을 반이상 읽으면 책에서 벌레가 지나가고 주변에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있다고 착각이 든다. 묘사가 치밀하고 생생했다. 특히 『아오이 가든』에 첫번째로 실린 「저수지」는 낯선 그로테스크한 소설에 낯선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이 있었다. 저수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맨홀 등. 흥미로운 소재들을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익숙한 느낌과 낯선 느낌. 그 두 사이의 느낌의 틈새를 파고 들어있다. 이러한 틈새 속에서 단순히 그로테스크적인 강한 이미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삶에 대한 의지들을 엿볼 수 있었다. 단편집에서 나오는 인물 모두 냉소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숨겨져있다. 「저수지」와 「아오이가든」에서 나오는 아이들은 자신의 생존지에서 남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맨홀」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자신들을 찾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자신만의 사회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며 살고 있다. 타자가 보기에는 불안하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의아하다. 인물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과 손을 잡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어두운 세계 밖에서 존재하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다. 위선적인 도움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맨홀에서 산다. 우리가 사는 맨홀은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거리나 시장, 혹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다. 그런 곳은 대부분 시내 중심지라서 쓰레기가 풍부하고, 인파 속에 섞여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썹씨 100도가 넘는 물이나, 그보다 더 높은 온도로 압축된 증기가 온수관을 오가는 맨홀 속은 실내처럼 따뜻하다. 실온 온도와 압력이 높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탱크라고 부르는 맨홀은 냄새나고 좁은 구멍만은 아니다. 가스 냄새가 풍기는데다가 쥐가 드나들고, 좁고 가느다랗게 얽힌 배관 파이프가 채워져 있기는 하지만 따뜻하고 안락하다. (『아오이가든』中 <맨홀>, P65)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잘 살아가는 것을 망치는 외부적인 요인과 어른들은 소속된 아이들을 위한다기보다는 자신들을 위해 맨홀의 아이들을 없애는 듯 하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육장쪽으로』에서 쓴 평론을 보면 평론가 신형철씨가 <아오이가든>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한 부분이 있다. 2003년 4월 홍콩의 아파트 '아오이가든' 주민들은 사스 때문에 열흘간 피난생활을 해야 했다. 작가는 이 실제 사건에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고 반년 뒤에 발표한다. 역병이 창궐한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넘나들기를 마다하지 않다가 끝내 처참한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다. (『사육장쪽으로』中 <해설- 섬뜩하게 보기, 신형철>, 편혜영, 문학동네, 2007, p234~5) 편혜영의 소설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사소한 사건으로 인생이 꼬여가는 일들을 소설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아오이가든』에 실린 단편들은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기괴하지만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우리가 느끼는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들의 순간이다. 그 순간의 틈으로 시체, 탈출 등이라는 기괴한 사건을 만나고 그들이 목도하게 되는 시간과 공간들 속에서 얽혀지는 이야기는 삶 전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미지가 주는 강한 힘 때문에 그로테스크에 매료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커다란 사건은 '나, 와요~'하며 오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삶을 잠식하며 들어온다. 이 책에서 나오는 스쳐나오는 사람들이 시체를 보고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 커다란 사건이 있었지만 곧 일반적인 삶에 매료되는 모습들은 우리의 모습이다. 남이 만든 이슈 하나가 삶을 흔들리게 만들 수 있지만 부러뜨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인식도 못하고 만든 이슈, 혹은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은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단편이 떠오른다. 아내의 죽음을 추적하던 사내가 밤의 계곡에 매장된 그 장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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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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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삶

  고등학교 시절, 어떻게 알았는지 또렷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루쉰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떤 책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책은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 작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중국 작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난다. 언젠가 읽어봐야겠다는 흔한 생각을 하고 잊고 있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꽂혀 있는 아Q정전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그 책에서 설명하기로 아큐정전이 쓰였던 당시의 상황을 해학적으로 잘 풀어냈고 아Q라는 인물 자체가 입체적이었다고 했다. 지극한 개인의 취향으로 정전, 특히 자서전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 대해 기대를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책이 얄팍해서 좋았다.

  아Q는 전에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것을 나중에는 죄다 입밖으로 내버리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리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정신적인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변발을 잡아당길 때면 미리 아Q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Q, 이건 자식이 아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고."

  아Q는 두 손으로 자기 머리채를 틀어쥐고 고개를 비틀며 소리쳤다.

  "버러지를 떄리고 있는 거라고 하면 어때? 난 버러지야! 이래도 놔주지 않을 거야?" ​(p22)

  아Q라는 인물은 웃겼다. 지금 봐도 웃긴 인물이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과 수가 얕았다. 그런 꼼수로 어떻게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하는지 어리석어 보였다. 무시 당하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어서 결국 자기가 무시하는 아Q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상적으로 꿈꾸는 자신의 모습을 유일하게 지켜주는 정신적인 승리법 마저도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들켰고 정신적인 승리법에 대해 방해를 하기도 했다. 아Q는 정신마저도 남에게 간섭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꼿꼿했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볼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 믿음은 그에게 원동력이 되었다. 그 원동력은 멈추지 않았다.

  아Q도 진작에 혁명당이라는 말을 들었고 더구나 올해는 혁명당의 목을 베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몰라도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바란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줄곧 옛말 그대로 "심히 싫어하고 통절히 증호했다". 그런데 이제 혁명당 때문에 사방 백리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인 나라가 이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고는 혁명에 조금 솔깃한 마음이 생겼고, 더군다나 웨이좡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니 아Q는 더더욱 신이 났다.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 아Q는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버리자. 그 나쁜 것들! 가증스러운 것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가담해야지.' (P80)

​  ​아Q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Q세상은 자신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세상에서조차 밀려났다. 밀려난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한 물음을 그는 스스로 가지지 않았다. 그저 이미 허술한 부분이 드러난 정신적인 승리법으로 현실을 외면했다. 다시 인식하지 못하고. 그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결국 원동력이 된 욕망으로 인해 그는 죽음을 맞이 해야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어리석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의 모습이 보였다. 본질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에 타협하고 자신의 상황에서 남들이 보기에 좋은 옷과 음식들로 sns를 도배하고 카메라 사진첩에 저장한다. 속이 공허하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겉치레에 신경을 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다. 심지어 무리를 해서라도 예쁜 곳 예쁜 음식에 대한 간략한 평을 남기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를 한다. 무시를 당할까봐 눈치를 보며 남에게 뒤치지 않으려 전전긍긍한 모습. 아Q정전은 시대와 상황만 달랐지 그 본질은 21C의 한국과 유사했다.

  오래된 책들 중에서 아직도 읽히는 이유는 다 있는 것 같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직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할 수 있었다.

  소설 자체는 매우 재미있다. 아Q라는 인물이 매력적이다. 책 표지와 중간 중간에 나오는 동판화 그림은 아Q라는 인물과 당시 상황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어 좋았다. 부담을 갖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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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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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공포심

​  직장 상사, 학교의 선생님 등. 나보다 권력이 센 사람들이 나에게 부탁을 한다면, 거절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모르는 사람의 부탁마저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준다. 바틀비는 자신의 직업이 '필경사'임에도 필사를 하는 일, 필사한 글을 검토하는 일 등 자신이 맡아야 하는 일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의 거절은 고용인이었던 필자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떠나지 않고 망령처럼 맴도는 바틀비를 떨치기 위해서 사무실을 옮긴다. 바틀비에게 벗어나긴 어려웠다. 새로 이사 온 변호사는 필자에게 바틀비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연락을 한다. 심지어 건물 이곳저곳에서 출몰하는 바틀비 때문에 건물주 마저도 필자에게 그를 어떻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며칠 만에 만난 바틀비는 여전히 고집이 있었다. 필자는 그를 시설로 보냈다. 바틀비는 먹는 것을 거부하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죽었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주었다.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를 그만하기를 바랐다. 변호사의 요구에 수용하고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끝낸다면 불편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스스로에게 모순을 느꼈다.

  부당함이 있으면 거절을 해야하고 부정함이 있으면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라고 믿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용기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난 뒤 알았다. 착각을 하고 있었다. 교육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맡은 바 소임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가슴 속에 새겼는지도 모른다. 부당함에 의문을 품고 내가 갖고 있는 소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 책에만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틀비를 읽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내가 어떠한 착각과 나의 이상 속에서 나를 왜곡하고 바라봤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바틀비가 왜 거부를 하는지 이유에 대해 알기 보다는 빨리 고용주의 요구를 수용하고 조직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가기를 바랐었다. 가끔씩 술을 먹고,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다른 직원들처럼 그것은 '일시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필자의 회사에 무리가 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러한 생각이 고착되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폐해가 일어났는지 지켜봤으면서도. 나는 고착된 사회의 일원이 아닌 고착된 사회에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서 금이 갔고 깨졌다.

  몸은 이상하게 벽 밑에 웅크리고 무릎은 끌어안고 모로 누워 차가운 돌에 머리를 대고 있는 쇠약한 바틀비가 보였다. 그러나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나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몸을 굽혀보니 그가 멍하니 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깊이 잠들어 있는 듯했다. 무언가가 그를 건드리도록 나를 부추겼다. 나는 그의 손을 만졌다. 그 순간 짜릿한 전율이 내 팔을 타고 척추까지 올라왔다 발로 내려갔다.(p90) ​바틀비는 어쩌면 나의 시선 때문에 죽은 것일 수도 있다. 사회에 굴복하고 피해를 그만주라는 나의 무언의 압박 때문에 그는 무기력하게 밥을 먹지 않고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과장해서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가 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바틀비가 죽을지는 몰랐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나의 무언의 폭력이 소설 속 인물, 바틀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더 계속할 필요가 없어 보일 것이다. 불쌍한 바틀비의 매장에 관한 것이라면 상상력이 얼마 안 되는 설명을 대신해줄 것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에 말해 둘 것이 있다. 이 짧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서 만약 독자들이 바틀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그를 알기 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나도 그런 호기심을 십분 공유하지만 전혀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p92) ​바틀비는 사서(死書)였다. 책에 나온 내용을 보면 사서는 발신자나 수신자의 주소가 잘못 기재되었거나, 제대로 기재되었어도 양쪽이 이사를 가거나 사망한다든지 해서 반송도 되지 못하는 우편물을 취급하는 우체국의 하급 직원을 말했다. 이러한 그의 전(前)직업이 사서였기 때문에 그의 절망을 키웠을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말한다. 아직도 나는 필자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만 어림짐작은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죽음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거대한 권력이 아닌 삶 곳곳에 숨어 있는 나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거대한 권력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공포심을 유발시키고 용기를 사그라트리는 건 아닐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힘이 그 어떠한 힘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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