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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ㅣ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공허한 삶
고등학교 시절, 어떻게 알았는지 또렷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루쉰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떤 책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책은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 작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중국 작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난다. 언젠가 읽어봐야겠다는 흔한 생각을 하고 잊고 있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꽂혀 있는 아Q정전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그 책에서 설명하기로 아큐정전이 쓰였던 당시의 상황을 해학적으로 잘 풀어냈고 아Q라는 인물 자체가 입체적이었다고 했다. 지극한 개인의 취향으로 정전, 특히 자서전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 대해 기대를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책이 얄팍해서 좋았다.
아Q는 전에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것을 나중에는 죄다 입밖으로 내버리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리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정신적인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변발을 잡아당길 때면 미리 아Q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Q, 이건 자식이 아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고."
아Q는 두 손으로 자기 머리채를 틀어쥐고 고개를 비틀며 소리쳤다.
"버러지를 떄리고 있는 거라고 하면 어때? 난 버러지야! 이래도 놔주지 않을 거야?" (p22)
아Q라는 인물은 웃겼다. 지금 봐도 웃긴 인물이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과 수가 얕았다. 그런 꼼수로 어떻게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하는지 어리석어 보였다. 무시 당하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어서 결국 자기가 무시하는 아Q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상적으로 꿈꾸는 자신의 모습을 유일하게 지켜주는 정신적인 승리법 마저도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들켰고 정신적인 승리법에 대해 방해를 하기도 했다. 아Q는 정신마저도 남에게 간섭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꼿꼿했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볼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 믿음은 그에게 원동력이 되었다. 그 원동력은 멈추지 않았다.
아Q도 진작에 혁명당이라는 말을 들었고 더구나 올해는 혁명당의 목을 베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몰라도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바란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줄곧 옛말 그대로 "심히 싫어하고 통절히 증호했다". 그런데 이제 혁명당 때문에 사방 백리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인 나라가 이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고는 혁명에 조금 솔깃한 마음이 생겼고, 더군다나 웨이좡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니 아Q는 더더욱 신이 났다.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 아Q는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버리자. 그 나쁜 것들! 가증스러운 것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가담해야지.' (P80)
아Q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Q세상은 자신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세상에서조차 밀려났다. 밀려난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한 물음을 그는 스스로 가지지 않았다. 그저 이미 허술한 부분이 드러난 정신적인 승리법으로 현실을 외면했다. 다시 인식하지 못하고. 그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결국 원동력이 된 욕망으로 인해 그는 죽음을 맞이 해야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어리석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의 모습이 보였다. 본질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에 타협하고 자신의 상황에서 남들이 보기에 좋은 옷과 음식들로 sns를 도배하고 카메라 사진첩에 저장한다. 속이 공허하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겉치레에 신경을 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다. 심지어 무리를 해서라도 예쁜 곳 예쁜 음식에 대한 간략한 평을 남기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를 한다. 무시를 당할까봐 눈치를 보며 남에게 뒤치지 않으려 전전긍긍한 모습. 아Q정전은 시대와 상황만 달랐지 그 본질은 21C의 한국과 유사했다.
오래된 책들 중에서 아직도 읽히는 이유는 다 있는 것 같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직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할 수 있었다.
소설 자체는 매우 재미있다. 아Q라는 인물이 매력적이다. 책 표지와 중간 중간에 나오는 동판화 그림은 아Q라는 인물과 당시 상황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어 좋았다. 부담을 갖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