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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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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대했던 대로 멋지게 잘 나왔다. 2022년에는 이 시리즈로 도스토옙스키를 완독하는게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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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족의 영웅 아스테릭스 아스테릭스 1
르네 고시니 글, 알베르 우데르조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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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로운 둘리가 아스테릭스였다면



  쏘오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내 방울~ 내 방울!

  쏘오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무지개~!

  8·90년대생이라면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귀여운 내 친구 둘리의 OST, 비눗방울이다. 그 외에도 한치두치세치네치 뿌꾸 빰! 뿌꾸 빰! 으로 시작되는 두치와 뿌꾸, 꼬비꼬비, 날아라 슈퍼보드, 달려라 하니, 무도사 배추도사가 나왔던 옛날 옛적에, 머털도사 등 상당히 많은 만화가 어릴 적 함께 했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있고,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도 가끔 우연찮게 TV 방영할 때면 재밌게 봤었는데, 지금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간혹 리메이크가 된 아기공룡 둘리와 머털도사가 보이긴 하지만 그 외 나머지 추억의 만화들은 어디로 갔을까?

  1961년부터 아직까지도 연재되는 유명한 프랑스 만화가 있다. 먼저 먼나라 이웃나라를 쓴 이원복 저자가 쓴 이 책의 추천글을 보자. '전세계 대중문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 문화의 상징’은 바로 ‘미키 마우스’다. 그러나 이 막강한 미키 마우스도 프랑스에서는 한참 뒤편으로 물러서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아무리 미국의 소비 대중 문화가 거세게 밀려와도 프랑스인들은 미소를 띠며 자신있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과연 이러한 문화가 있을까.

  한류, 한류하지만 가끔씩 이게 정말 한류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껍데기 뿐만인 문화가 아닐까. 언제까지 이 한류가 지속될까. 1920년대 태어난 미키마우스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콘텐츠가 있을까. 그 역사는 짧지만 우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들이 있다.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라바 등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둘리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예전과는 달리 만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제도적으로도 뒷받침 될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콘텐츠의 질 높은 구성이다. 우리는 좋은 예로서 아스테릭스를 참조할 수 있다.

  르네 고시니와 알베르토 우데르조가  쓴 아스테릭스는 물약을 먹고 힘이 쎄지는 골족 아스테릭스와 어릴 때 물약 통에 빠져 힘이 쎈 오벨릭스가 보여주는 이야기다. 프랑스 특유의 재치와 코미디 덕분에 어른들이 읽어도 유치하지 않다. 또한 예술의 중심, 프랑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프랑스 등 유럽 역사와도 접하게 된다. 물론 이야기 흐름상 조금 변화된 것들도 있지만, 중간에 달린 각주나 책 뒷편에 실린 옮긴이 글을 통해 사건의 왜곡된 부분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싶어서 혼자 찾아보기도 했다.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역사에 대한 지식과 나름의 가치관을 설정할 수 있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도 아이가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역사와 문화가 녹여진 만화가 있었다면... 이라는 아쉬움도 있었다(개인적으로 네이버 웹툰 <호랑이 형님>이 아이가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만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오랜 세월동안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 해 온 호랑이, 구미호 등 여러 소재와 배경이 한국의 전통 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여긴다).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인물들의 대사들이다. 무심하면서도 개그 요소가 다분히 버무러져 있는 구절들을 몇 개 들고왔다.

  음.... 좀 평범하지만 그래도 맘에 들어. 평범한 것이 항상 사람들을 웃게 하니까. -아스테릭스, 고트족 국경을 넘다 편에서

  관중은 저마다 해설가가 된다. -아스테릭스, 올림픽에 나가다 편에서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두려움을 지배하고 이겨내는 거야. -아스테릭스, 바이킹을 물리치다 편에서

  삶에서 묻어나는 인물들의 대화들. 이 속에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눈여겨 볼 수 있다.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만화, 아스테릭스. 이제 다시 시작하는 둘리와 머털도사도 이 만화처럼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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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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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삶

  고등학교 시절, 어떻게 알았는지 또렷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루쉰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떤 책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책은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 작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중국 작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난다. 언젠가 읽어봐야겠다는 흔한 생각을 하고 잊고 있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꽂혀 있는 아Q정전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그 책에서 설명하기로 아큐정전이 쓰였던 당시의 상황을 해학적으로 잘 풀어냈고 아Q라는 인물 자체가 입체적이었다고 했다. 지극한 개인의 취향으로 정전, 특히 자서전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 대해 기대를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책이 얄팍해서 좋았다.

  아Q는 전에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것을 나중에는 죄다 입밖으로 내버리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리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정신적인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변발을 잡아당길 때면 미리 아Q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Q, 이건 자식이 아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고."

  아Q는 두 손으로 자기 머리채를 틀어쥐고 고개를 비틀며 소리쳤다.

  "버러지를 떄리고 있는 거라고 하면 어때? 난 버러지야! 이래도 놔주지 않을 거야?" ​(p22)

  아Q라는 인물은 웃겼다. 지금 봐도 웃긴 인물이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과 수가 얕았다. 그런 꼼수로 어떻게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하는지 어리석어 보였다. 무시 당하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어서 결국 자기가 무시하는 아Q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상적으로 꿈꾸는 자신의 모습을 유일하게 지켜주는 정신적인 승리법 마저도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들켰고 정신적인 승리법에 대해 방해를 하기도 했다. 아Q는 정신마저도 남에게 간섭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꼿꼿했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볼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 믿음은 그에게 원동력이 되었다. 그 원동력은 멈추지 않았다.

  아Q도 진작에 혁명당이라는 말을 들었고 더구나 올해는 혁명당의 목을 베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몰라도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바란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줄곧 옛말 그대로 "심히 싫어하고 통절히 증호했다". 그런데 이제 혁명당 때문에 사방 백리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인 나라가 이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고는 혁명에 조금 솔깃한 마음이 생겼고, 더군다나 웨이좡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니 아Q는 더더욱 신이 났다.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 아Q는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버리자. 그 나쁜 것들! 가증스러운 것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가담해야지.' (P80)

​  ​아Q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Q세상은 자신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세상에서조차 밀려났다. 밀려난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한 물음을 그는 스스로 가지지 않았다. 그저 이미 허술한 부분이 드러난 정신적인 승리법으로 현실을 외면했다. 다시 인식하지 못하고. 그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결국 원동력이 된 욕망으로 인해 그는 죽음을 맞이 해야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어리석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의 모습이 보였다. 본질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에 타협하고 자신의 상황에서 남들이 보기에 좋은 옷과 음식들로 sns를 도배하고 카메라 사진첩에 저장한다. 속이 공허하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겉치레에 신경을 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다. 심지어 무리를 해서라도 예쁜 곳 예쁜 음식에 대한 간략한 평을 남기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를 한다. 무시를 당할까봐 눈치를 보며 남에게 뒤치지 않으려 전전긍긍한 모습. 아Q정전은 시대와 상황만 달랐지 그 본질은 21C의 한국과 유사했다.

  오래된 책들 중에서 아직도 읽히는 이유는 다 있는 것 같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직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할 수 있었다.

  소설 자체는 매우 재미있다. 아Q라는 인물이 매력적이다. 책 표지와 중간 중간에 나오는 동판화 그림은 아Q라는 인물과 당시 상황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어 좋았다. 부담을 갖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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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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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공포심

​  직장 상사, 학교의 선생님 등. 나보다 권력이 센 사람들이 나에게 부탁을 한다면, 거절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모르는 사람의 부탁마저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준다. 바틀비는 자신의 직업이 '필경사'임에도 필사를 하는 일, 필사한 글을 검토하는 일 등 자신이 맡아야 하는 일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의 거절은 고용인이었던 필자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떠나지 않고 망령처럼 맴도는 바틀비를 떨치기 위해서 사무실을 옮긴다. 바틀비에게 벗어나긴 어려웠다. 새로 이사 온 변호사는 필자에게 바틀비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연락을 한다. 심지어 건물 이곳저곳에서 출몰하는 바틀비 때문에 건물주 마저도 필자에게 그를 어떻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며칠 만에 만난 바틀비는 여전히 고집이 있었다. 필자는 그를 시설로 보냈다. 바틀비는 먹는 것을 거부하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죽었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주었다.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를 그만하기를 바랐다. 변호사의 요구에 수용하고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끝낸다면 불편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스스로에게 모순을 느꼈다.

  부당함이 있으면 거절을 해야하고 부정함이 있으면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라고 믿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용기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난 뒤 알았다. 착각을 하고 있었다. 교육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맡은 바 소임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가슴 속에 새겼는지도 모른다. 부당함에 의문을 품고 내가 갖고 있는 소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 책에만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틀비를 읽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내가 어떠한 착각과 나의 이상 속에서 나를 왜곡하고 바라봤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바틀비가 왜 거부를 하는지 이유에 대해 알기 보다는 빨리 고용주의 요구를 수용하고 조직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가기를 바랐었다. 가끔씩 술을 먹고,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다른 직원들처럼 그것은 '일시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필자의 회사에 무리가 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러한 생각이 고착되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폐해가 일어났는지 지켜봤으면서도. 나는 고착된 사회의 일원이 아닌 고착된 사회에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서 금이 갔고 깨졌다.

  몸은 이상하게 벽 밑에 웅크리고 무릎은 끌어안고 모로 누워 차가운 돌에 머리를 대고 있는 쇠약한 바틀비가 보였다. 그러나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나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몸을 굽혀보니 그가 멍하니 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깊이 잠들어 있는 듯했다. 무언가가 그를 건드리도록 나를 부추겼다. 나는 그의 손을 만졌다. 그 순간 짜릿한 전율이 내 팔을 타고 척추까지 올라왔다 발로 내려갔다.(p90) ​바틀비는 어쩌면 나의 시선 때문에 죽은 것일 수도 있다. 사회에 굴복하고 피해를 그만주라는 나의 무언의 압박 때문에 그는 무기력하게 밥을 먹지 않고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과장해서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가 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바틀비가 죽을지는 몰랐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나의 무언의 폭력이 소설 속 인물, 바틀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더 계속할 필요가 없어 보일 것이다. 불쌍한 바틀비의 매장에 관한 것이라면 상상력이 얼마 안 되는 설명을 대신해줄 것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에 말해 둘 것이 있다. 이 짧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서 만약 독자들이 바틀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그를 알기 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나도 그런 호기심을 십분 공유하지만 전혀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p92) ​바틀비는 사서(死書)였다. 책에 나온 내용을 보면 사서는 발신자나 수신자의 주소가 잘못 기재되었거나, 제대로 기재되었어도 양쪽이 이사를 가거나 사망한다든지 해서 반송도 되지 못하는 우편물을 취급하는 우체국의 하급 직원을 말했다. 이러한 그의 전(前)직업이 사서였기 때문에 그의 절망을 키웠을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말한다. 아직도 나는 필자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만 어림짐작은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죽음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거대한 권력이 아닌 삶 곳곳에 숨어 있는 나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거대한 권력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공포심을 유발시키고 용기를 사그라트리는 건 아닐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힘이 그 어떠한 힘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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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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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20세기 유쾌한 이야기꾼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유쾌하면서도 일상의 삶을 파고들고 있다. 일상에서 일어날만한 판타지는 마치 소설이 아니라 즐거운 동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러 개의 단편 중,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와 <칠십 리의 장화>를 말해볼까 한다. 마르셀이 얼마나 재치있는 이야기꾼인지 책을 통해 만나봤으면 좋겠다. 두 편의 이야기 외에 나머지 이야기도 재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존 시간 카드>는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야기 자체가 기발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이러한 상상을 한 마르셀이 신기하다.

  까탈스러운 상사를 두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골탕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된 뒤티유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자신에게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43세 때 알았다. 그는 이 병을 고치고 싶었기 때문에 의사에게 쌀가루와 켄타우루스 호르몬의 혼합물인 혼합물인 4가(四價) 피렌트 분(粉) 정제를 일년에 두 알씩 먹으라고 처방 (p16) 받았다. 하지만 한 알을 먹고 새까맣게 잊었다. 몸을 혹사시키라는 처방도 공무원인 직업 특성상 할 수 없었다. 뒤티유욀에게 고약한 상사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우연히 상사를 골탕먹이게 되었고, 상사는 정신병원에 실려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도둑질, 교도소 탈출 등에 쓰더니 급기야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는 데까지 쓴다. 평범하기 그지 없던 뒤티유욀의 삶에 특별한 행복이 찾아오는 듯 했다. 그 이튿날 뒤티유욀은 격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그깟 일로 그녀와의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우연히 서랍 속에 흩어져 있는 알약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 알약들을 아스피린으로 생각하고 아침에 한 알 오후에 한 알을 먹었다. 저녁이 되자 두통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게다가 마음이 들떠서 그는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젊은 여인은 어서 밤이 오기를 바라면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의 추억이 그녀의 마음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심어준 거였다. 그들은 그날 밤 새벽 세시까지 사랑을 나누었다. (p33) ​행복은 달아났다. 그러나 뒤티유욀은 특별해졌다. 그 특별함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특별해졌는지 이야기를 한다면, 이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에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칠십 리 장화>에서는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재미에 비중을 둔 이야기라면 <칠십 리 장화>는 삶을 보다 파고드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앙투안은 가난함에 대해서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칠십 리나 갈 수 있는 장화를 만나고 그 장화 때문에 다치게 되면서 앙투안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절망의 순간에서도 앙투앙은 나름대로 이겨내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는 않았다.

  침대가 이웃해 있는 앙투안과 위슈맹은 노댕이 나간 뒤에도 일 주일이나 더 병원에 머물렀다. 새로 입원한 환자들과 따로 놀게 되면서 두 아이는 더욱 친해졌다. 하지만 그 친밀함이 앙투안에게는 종종 매우 고통스러운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 한 주일 동안에도 앙투안은 가난 때문에 괴로움을 겪을 일이 많았다. 자기 자신의 삶에서는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위슈맹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도 한두 마디 토를 달 뿐 그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p141~2) ​​또한 여기서 앙투안의 시련은 멈추지 않는다. 앙투안은 자신의 가난을 감추기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미국에 있다는 삼촌, 가상인물 '빅토르'를 만들어냈다. 빅토르 삼촌은 앙투안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위축시키기도 했다. 양심을 찌르는 바늘은 점점 닳아 무뎌지고 앙투안은 스스로도 빅토르 삼촌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앙투안에게 빅토르 삼촌은 빛이기도 하고 어둠이기도 했다. 순수하고 엄마에게 감추는 것이 없던 앙투안은 빅토르 삼촌때문에 '처음'을 여러 개 경험했다. 앙투안의 심리변화는 사람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의 말도 간단명료하고 흥미롭다. 번역도 좋았다. 각주나 가독성 등에 세심하게 신경 쓴 게 느껴졌다고 할까. 마르셀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간략하게 파악할 수도 있었다. 뭐하나 빼먹을 게 없는 작품이었다 . 유쾌하면서도 삶을 파고드는 이야기 꾼, 마르셀. 그의 작품을 탐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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