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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ㅣ 교양 100그램 5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내 말이!
‘불안’과 함께 산 지 5년 정도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모두가 나와 같은 줄 알았다. 해마다 바뀌는 반 편성. 낯을 가리는 성격에 친한 친구가 적었다. 친한 친구와 연속 같은 반이 되었던 적은 한 번 정도였던 것 같다. 이미 친해진 무리를 비집고 자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층마저도 다른 친구를 찾아가 같이 노는 게 더 편했다. 반이 달라도 같이 밥 먹자는 약속을 믿었었다. 한 학기가 지나서야 같은 반 친구가 너 불편하대라는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아, 나와는 다르구나. 이건 대학에 가서도 이어졌다.
대학에서는 친구를 많이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홀로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합격통지서가 나오자마자 신입생 카페에 가입했다. 다른 과 아이들과 활발하게 교류했고 같은 과 친구들에게는 채팅창이나 게시판 댓글을 통해 먼저 말을 걸었다. 얼마나 열심히 활동했던지 카페 활동에 열심히 하지 않은 아이들도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배들은 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했던 거였다. 당시에는 오프라인 활동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었다. 그 뒤로 과에 관련된 활동이라면 무조건 나섰다. 그 모습을 본 과 친구들이 ‘과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다. 정규직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고 했어도 근로계약서에 쓰인 ‘무기 계약직’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회사에서 잘 보이고 싶어서 굳이 할 필요 없는 업무까지 자진해서 했었다. 조금이라도 위치가 불안한 것 같으면 동료들에게 말했다. 처우에 대해서 부당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동료들은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도와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여겼기에 불만을 가졌다. 이를 견딜 수 없어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상황 해결을 위해 온갖 정보를 찾다가 이 시기쯤 정신 건강을 챙기라는 말을 들었다.
마침 이 시기에 여러 매체에서 감기가 걸리면 병원에 가듯이 우울한 것 같으면 주변 정신과를 찾아가라고 했다. 이상하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 듯 지하철을 탈 때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는 걸 알았다. 바로 집 근처 병원을 몇 군 데 알아보았다. 신청하기 쉽게 홈페이지가 구성되어 있는 병원에 연락처를 남겼다. 진료를 받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한 후 두 가지 검사를 진행했었다. TCI와 MMPI-2였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공황장애까지는 아니지만 남들보다 불안을 잘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부모 중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냐고도 물었다. 유전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처방약을 받고 나오면서 희망에 부풀었다. 이것만 다 먹으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문제없이 살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결과는……?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다.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 예상보다 길게 약도 먹고 병원도 바꿔봤었다. 나라에서 진행하는 상담프로그램에도 참여했었다.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었다. 규칙적인 운동도 해봤었다. 하지만 모든 건 일시적이었다. 스스로를 탓하는 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느덧 생각은 이 책의 제목처럼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에서 맴돌았다. 원인을 해결하거나 없앴음에도 나는 왜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저자는 불안은 사라질 수 없다고 했다. 아, 망했다.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 이 책의 서평단을 신청했던 거였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그대로 덮고 싶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느껴지는 저자가 따스했다. 그리고 책 두께도 얇았다. 끝까지 읽어보자. 그러면 저자는 알 수 없는 해결법이 내 눈에는 보일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p35-36
부정적 사고의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실제보다 훨씬 나쁜 식으로 왜곡해서 인식할 수밖에 없는데요, 대표적으로 세상에는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 딱 두가지로 갈린다는 흑백논리나 하나를 알면 모드를 알 수 있다고 지나치게 빨리 예단해버리는 과잉일반화, 내 앞에 놓인 일들이 모두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믿는 재앙화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불안한 사람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신기하게도 100페이지 조금 넘는 책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소 막연한 것들이 언어로 정리되기도 했다. 여전히 불안이 사라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었지만 다룰 수 있다는 말이 납득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불안도 감정의 한 종류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p66
그러니까 완벽한 통제란 있을 수 없고요 약간의 불안을 느끼는 건 도리어 나를 위험하지 않게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자꾸 불안을 느낀다면 그런 게 있나보다 하고 넘겨도 되지 반드시 불안의 불씨를 다 꺼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고요.
어느새 저자에게 동화 되어 <불안을 다스리는 세가지 지침> 부분에서는 언제든 읽어볼 수 있게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을 좍좍 그었다. ‘혼자, 짧게, 매일(p76)’ 앞에는 별표를 세개 쳤다. 이 단어들을 잊고 싶지 않았다. ‘묻고 답하기’ 부분에서는 내가 한 것만 같은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완독 후에는 책 뒤표지 문구를 한참 보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튼튼하고 생각보다 잘 안 망가져요.’ 그래, 맞는 말이야.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란 인간은 바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불안한 감정을, 이를 야기하는 요소들을 없애버리고 싶어 동분서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미래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책을 잘 보이는 곳에 두는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불안을 다스릴 수 있을 테니. 짧은 순간이라도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
창비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 활동에 신청하여 책을 제공 받았으며 솔직하게 썼습니다.
부정적 사고의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실제보다 훨씬 나쁜 식으로 왜곡해서 인식할 수밖에 없는데요, 대표적으로 세상에는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 딱 두가지로 갈린다는 흑백논리나 하나를 알면 모드를 알 수 있다고 지나치게 빨리 예단해버리는 과잉일반화, 내 앞에 놓인 일들이 모두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믿는 재앙화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P35
그러니까 완벽한 통제란 있을 수 없고요 약간의 불안을 느끼는 건 도리어 나를 위험하지 않게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자꾸 불안을 느낀다면 그런 게 있나보다 하고 넘겨도 되지 반드시 불안의 불씨를 다 꺼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고요.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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