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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벌레가 기어다니는 소설
'그로테스크' 하면 빠지지 않는 작가가 있다. 바로 편혜영이다. 지금은 그 경향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녀의 초기작 대부분이 그로테스크하다. 기괴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아오이 가든』 단편집을 반이상 읽으면 책에서 벌레가 지나가고 주변에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있다고 착각이 든다. 묘사가 치밀하고 생생했다. 특히 『아오이 가든』에 첫번째로 실린 「저수지」는 낯선 그로테스크한 소설에 낯선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이 있었다. 저수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맨홀 등. 흥미로운 소재들을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익숙한 느낌과 낯선 느낌. 그 두 사이의 느낌의 틈새를 파고 들어있다. 이러한 틈새 속에서 단순히 그로테스크적인 강한 이미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삶에 대한 의지들을 엿볼 수 있었다. 단편집에서 나오는 인물 모두 냉소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숨겨져있다. 「저수지」와 「아오이가든」에서 나오는 아이들은 자신의 생존지에서 남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맨홀」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자신들을 찾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자신만의 사회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며 살고 있다. 타자가 보기에는 불안하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의아하다. 인물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과 손을 잡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어두운 세계 밖에서 존재하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다. 위선적인 도움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맨홀에서 산다. 우리가 사는 맨홀은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거리나 시장, 혹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다. 그런 곳은 대부분 시내 중심지라서 쓰레기가 풍부하고, 인파 속에 섞여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썹씨 100도가 넘는 물이나, 그보다 더 높은 온도로 압축된 증기가 온수관을 오가는 맨홀 속은 실내처럼 따뜻하다. 실온 온도와 압력이 높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탱크라고 부르는 맨홀은 냄새나고 좁은 구멍만은 아니다. 가스 냄새가 풍기는데다가 쥐가 드나들고, 좁고 가느다랗게 얽힌 배관 파이프가 채워져 있기는 하지만 따뜻하고 안락하다. (『아오이가든』中 <맨홀>, P65)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잘 살아가는 것을 망치는 외부적인 요인과 어른들은 소속된 아이들을 위한다기보다는 자신들을 위해 맨홀의 아이들을 없애는 듯 하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육장쪽으로』에서 쓴 평론을 보면 평론가 신형철씨가 <아오이가든>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한 부분이 있다. 2003년 4월 홍콩의 아파트 '아오이가든' 주민들은 사스 때문에 열흘간 피난생활을 해야 했다. 작가는 이 실제 사건에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고 반년 뒤에 발표한다. 역병이 창궐한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넘나들기를 마다하지 않다가 끝내 처참한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다. (『사육장쪽으로』中 <해설- 섬뜩하게 보기, 신형철>, 편혜영, 문학동네, 2007, p234~5) 편혜영의 소설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사소한 사건으로 인생이 꼬여가는 일들을 소설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아오이가든』에 실린 단편들은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기괴하지만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우리가 느끼는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들의 순간이다. 그 순간의 틈으로 시체, 탈출 등이라는 기괴한 사건을 만나고 그들이 목도하게 되는 시간과 공간들 속에서 얽혀지는 이야기는 삶 전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미지가 주는 강한 힘 때문에 그로테스크에 매료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커다란 사건은 '나, 와요~'하며 오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삶을 잠식하며 들어온다. 이 책에서 나오는 스쳐나오는 사람들이 시체를 보고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 커다란 사건이 있었지만 곧 일반적인 삶에 매료되는 모습들은 우리의 모습이다. 남이 만든 이슈 하나가 삶을 흔들리게 만들 수 있지만 부러뜨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인식도 못하고 만든 이슈, 혹은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은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단편이 떠오른다. 아내의 죽음을 추적하던 사내가 밤의 계곡에 매장된 그 장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