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김재혁
뱀의 몸뚱어리
비늘 하나 하나에 새겨진
땅과 하늘의
고통과 아름다움,
그 비늘 한 조각을 떼어내
책갈피에 끼우면,
논두렁 사이로 풍겨오는 비린내,
그 한 조각을 몸에 박고
책장 사이를 기어다닌다,
모든 문자를 배로 문지르며
오색찬란한 뱀으로의
환생을 꿈꾸는
나는,
김재혁 시집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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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이 1999년에 낸 첫시집에 수록된 시다.
누군가의 젊은 날의 꿈을,
그것도 이뤄가고 있는 실현의 도정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흐뭇하다.
머리에 하늘을 이고 온 땅을 배로 기어다니면서
세상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비늘에 새기는 뱀을
은유어로 내세워, 시의 화자는 빛나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말한다.
그가 살면서 섭렵한 모든 문자를 어루만지고 조탁해
땅과 하늘, 다시 말해 세상 모든 것들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비늘처럼 편편이 시로 형상화하는-새기는- 그런 시인!
그리하여, 온 삶이 찬란히 빛을 발하는 시로 모자이크된 시인!
감히 말하건대, 이 시는 그 빛나는 한 조각이다.
시인과 뱀을 연결시켜 하나의 시적 알레고리를 만든 시적 발상은 놀랍다.
더우기 알레고리적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한 편의 살아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조형적 형상화도 탁월하다. 이런 그만의 독창적 스타일이 젊은 날의 시에서 발아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에 의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