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나보코프와 이광수 혹은 백석

 

 

 

 

 

 

 

 

 

 

 

 

 

 

 

어제 나보코프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같은 시대 우리 문인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국주의와 전쟁이 겹쳤던 시기, 우리로는 식민지 시대였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엽.

이시기의 지식인들은 거의 유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도 나오듯이 제정 러시아 시기에 상류층은 불어를 해야만

교양인 대접을 받았고, 사교계에선 일상적으로 불어가 통용되었어요. 이시기엔 불어가 고급 문화를 뜻하는 언어여서 독일도 상류층은 불어를 가르치려고 노력했죠. 우리나라에서 양반이 한문을 먼저 가르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16세기에 몽테뉴는 라틴어를 먼저 배우죠.

나보코프도 유아기와 소년기에 영어와 불어를 배웁니다. 심지어 러시아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죠.

나치를 피해 유럽에 가고, 또 미국으로 간 나보코프는 이 때 배운 영어로 미국 생활에 성공적으로 정착합니다. 미국의 잡지에 기고하고, 교수 자리를 얻고, 영어로 소설을 발표합니다. 슬라브계 이민의 도움이 컸어요.

 

백석도 한문과 한학을 먼저 배웁니다. 이후 그는 일본으로 유학해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니, 영어와 일어를 배웠죠. 또 러시아어를 배웠어요. 윤치호도 한문, 영어, 불어, 일어에 능통했고, 이광수도 한문과 일어에, 이승만은 한문과 영어에 능통했죠. 식민지의 지식인의 유랑의 세월은 언어와 문화의 저변을 넓혔어요. 그러나 불행한 시대의 우리 지식인은 불행하죠. 갈 데가 없어요. 목숨을 건져서 자신의 명예를 건질 탈출구가 없죠. 나치 시대에 탈출했다고 독일 지식인을 나무라는 국민은 없습니다. 우리 지식인은 일본에 가서 작품 활동을 하면 매국노고, 폐쇄적인 동양 사회에서 한국 소설가나 문인이 자리잡고 살 데는 없어요. 오직 내나라에 갇혀서 강압으로 일제에 협력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들은 절망해서 일본의 세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줄 알고, 점진적인 개량을 꿈꿉니다.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우리도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자는 주장까지 하게 됩니다. 이런 주장은 반민족적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라 민족을 구하자는 생각에서 온 것도 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친일반민족주의자'란 오명을 쓰고  맙니다. 우리의 갇힌 사고는 우리의 지식인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시기의 토마스 만도 나보코프도 나오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랑 같이 역사의 몰매를 맞아 매몰되기를 바라죠. 후손인 우리가 그들에게 죽음을 요구할 권리가 있을까요?

 

 

나보코프를 읽으면서 참 안타깝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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