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식 숙명론을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이수영의 <명랑철학>을 읽다가 만난 개념입니다.
행군이 혹독하면 러시아 병사들은 그대로 눈위에 쓰러져
아무것도 안합니다. 바로 무반응, 무저항의 태도로,
신진대사를 감소시키거나 완만하게 해서 겨울잠을 자듯이
신체의 에너지를 보존하는 거지요. 이것을 러시아식 숙명론이라 한대요.
살다가 '견딜 수 없는 상황과, 장소와 집과 사회' 속에 있게 되면
저항하거나 변경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말고
삶이 다시 풍부해질 때까지 그대로 버티는 것이
오히려 가장 적극적인 생존방법이란 거죠.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갑자기 지루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 또한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 애쓰지 말고 당분간 그대로 버티는 것이 낫다는 군요.
'폭풍이 지나갈 땐 고개를 숙여라'던 오랜 동지의 조언과
맞닿아 있네요.
2.
비슷한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독이 묻은 화살을 빼내는 시간입니다. 이 화살이 어디
서 날아왔고 무슨 독이 묻었고 얼마나 깊이 박혔나 따지기 전에
먼저 빼내야 하는 것입니다. 절에 왔다 생각 말고 부처를 의식하
지도 말고 옆의 일에 마음 쓰지도 마십시오. 눕고 싶으면 눕고 먹
고 싶으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울고 싶으면 울고 가만히 앉았
고 싶으면 가만히 앉았고 그냥 자기를 돌보며 한량없이 마음을 내
려놓고 지내십시오. 맹자는 늘 천지가 지금이라 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듯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앞일도 걱정 말고, 지난 일도 떠
올리지 마십시오. 포식이 육체를 해치듯 너무 많은 생각도 정신을
해칩니다. 상처가 나으면 살아갈 용기도 생기니 그저 편히 지내며
세상을 버리려 했던 마음을 돌려 눈을 뜨십시오.”
전경린의 <<황진이>>중에서(이주향의 <<행복한 책읽기>>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