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유의 번역: "무릇 인생에서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이 예술에선 즐겨 감상할만한 것이 된다."

 

 

 

 

 

 

 

 

 

 

 

 

 

 

 

 

1.

어떤 분이 뷔르거의 이 시를 왕국유가 번역한 것을 놓고 원문보다 더 훌륭한 번역이라 하였어요.

왕국유는 뷔르거의 시를 뜻을 다치지 않고 시경에서 쓰는 문장형식을 빌어서 다시 쓴 것입니다.

이 또한 번역이지만 , 형식미를 본다면 새로운 작품이기도 하지요.

 

Gottfried August Bürger는 18세기 독일 발라드 시의 창시자로 알려졌지요.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시를 썼답니다.

 

"Ye wise men, highly, deeply learned,
Who think it out and know,
How, when, and where do all things pair?
Why do they kiss and love?
Ye men of lofty wisdom, say
What happened to me then;
Search out and tell me where, how, when,
And why it happened thus."


 - BURGER

 

嗟汝哲人,靡所不知,靡所不学,既深且跻。粲粲生物,罔不匹俦。各啮厥齿,而相厥攸。匪汝哲人,孰知其故。自何时始,来自何处?
  嗟汝哲人,渊渊其知。相彼百昌,奚而熙熙?愿言哲人,诏余其故。自何时始,来自何处?  (译文)/왕국유 번역

                                                          ————王國維先生《紅樓夢評論》

 

높고 심오한 지식을 지닌 철인들이여,

궁리해서 알려주세요.

만물들은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짝을 짓는 걸까요?

왜 그들은 입맞추고 사랑할까요?

고귀한 지혜를 지닌 현자들이여,

말해주세요.

그때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났는가요?

어디에서, 어떻게, 왜 일이 그렇게 일어났는지를

알아내서 알려주세요.(tr b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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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anruojiangcheng.blog.hexun.com.tw/3362308_d.html

왕국유의 <<홍루몽평론 >>

 

Gottfried August Bürger의 시를 왕국유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영문본에서 가져왔다. 실제 이 시가 원문에 있었는지 편집자나 번역자가 덧댓는지는 불명확...독어본을 봐야 암. 다른 영역본에는 없다.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Supplements to the Third Book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by Arthur Schopenhauer, translated by R B Haldane and J. Kemp  출처: 위키피디아 아랫부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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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아미와 숭고미

 

"무릇 인생에서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이 예술에선 즐겨 감상할만한 것이 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인용된 괴테의 비유적 시를

왕국유가 <<홍루몽평전>>에서 재인용한 것입니다. 왕국유는 이를 '우아미'와 대비하여 '숭고미'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했지요. "말하자면 숭고미란 사물과 나의 관계를 잊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이는 우아미에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 두 미를 구별짓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우아미는 사물과 나의 관계에서 긴장이 없습니다. 주객관이 저절로 일치하는것이죠. 저절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당연히 아름다운 것이죠. 객관의 미는 우아미입니다. 아무런 되새김질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미. 물론 우아미에서도  숭고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미미한 정도고 낮은 차원의 숭고미입니다. 그러나 숭고미는 어떤 대상이 객관적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수용을 거쳐 다시 아름다움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객관과 주관의 거리가 멀수록 숭고미는 커지죠. 우아미에는 추의 미가 없지만 숭고미에는 '추의 미'가 있는 거지요!! 슬픔의 미, 슬픔의 즐거움도 그렇고요.

이것을 왕국유는 '경계'로 설명했어요. 한마디로 경계내의 미는 '우아미優美'이고, 경계를 넘나드는, 한 경계에서 다른 경계로 이륙하는 미는 '숭고미 壯美' 이지요! 인용문처럼 대상에 대한 자신의 슬픔을 잊고 기쁨으로의 경지까지 드높여지는 미", 단순한 초월이 아니라 내적 수용을 통해 승화시킨 미, 압도적 상태에서 대상에 대한 슬픔-관계-를 망각한 미...이런 게 숭고미라 본 거지요.

 

" 千復格代之詩曰:

    What in life doth only grieve us.
    That in art we gladly see.

 

凡人生中足以使人悲者,於美術中則吾人樂而觀之。此之謂也。此即所謂壯美之情,

而其快樂存於使人忘物我之關系,則固與優美無以異也

 

영문번역판:  "What in life doth only grieve us, That in art we gladly see."

 

원문:: "Was im Leben uns verdrießt, Man im Bilde gern genießt."---괴테/원문

원출처 : Parabolisch. [411] Was im Leben uns verdrießt,. Man im Bilde gern genießt[411]  

http://en.wikisource.org/wiki/The_World_as_Will_and_Representation/Supplements_

to_the_Third_Book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독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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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둣방의 송곳처럼 펜은 쓰면 쓸수록 날카로워지고, 이윽고 수놓는 바늘처럼 예리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인간의 사상은 더욱더  모난 데가 없어져 간다. 

낮은 산에서 높은 봉으로 올라가면서 바라보는 경치처럼.

 

저작자가 한 사람을 증오하고 그 사람에 대해 통렬한 논란의 붓을 들고 있더라도,

만일 아직 그 사람의 좋은 면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다시 한 번 붓을 놓아야 한다.

그에게는 아직 논란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박병진 옮김, 육문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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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유의 六不과 함께 나를 찌른 임어당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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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 인문고전 깊이읽기 9
홍원표 지음 / 한길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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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입문서로는 강추!! 아렌트를 정확한, 그리고 알기 쉬운 안내서! 일반 교양으로 아렌트를 알고자 하면 이 한 권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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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공간성: 부동의 이동

 

 

손에 손을 잡고 그들은 힘겹게 같은 걸음으로 나아간다. 아무것도 없는 손 안에는 -아니,

비어있는 작은 손들. 둘 다 뒤에서 보면 등을 굽힌 채로 힘겹게 같은 걸음으로 나아간다.

꼭 쥔 손에 닿으려고 들어 올린 아이의 손. 꼭 잡고 있는 늙은 손을 꼭 잡기. 꼭 잡고 꼭 잡히기.

힘겹게 가버리지만( 움직이지만의 의미: 제 주석) 결코 서로 멀어지지 않는다. 뒤에서 본 모습.

둘 다 등을 굽힌 채로, 꼭 잡으면서 꼭 잡힌 손들로 하나가 된. 하나가 된 것처럼 힘겹게 간다.

하나의 그림자. 또 하나의 그림자.(14-15쪽)

 

---사무엘 베케트의 <이제 그만 >(알랭 바디우, <<베케트에 대하여>>, 서용순, 임수현 옮김, 민음사, 224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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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손을 통해서 각자의 위치를 지워버리지요. 움직이지 않고 이동하기!

 

옛날에 소개한 글과 그림 하나를 보여드립니다.

 

Cover image expansion

 

Emilio Longoni (Italian, 1859–1932). The First and the Last Steps. 1897. Oil on canvas. Photo Credit: Alinari / Art Resource, NY.

 

1.

그림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화가' 에밀리오 롱고니의 그림입니다.

원래 점묘파 계열에 서있는 화가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화폭에 담았었죠.

 

아기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기 위해 인생에서의 첫 발걸음을 뗍니다.

반면에 노인은 지팡이에 의지하고 마지막 걸음을 걷죠.

같은 울타리에 독립과 의존 두 가지 방향의 기운이 흐릅니다.

화가는 아기와 노인의 대비를 통해 삶의 한 순환을 잘 보여주지요.

아이는 의존상태를 떠나려 하고 노인은 다시 아이가 떠난 의존상태로 돌아옵니다.

그 순환의 한 지점이 한 그림에서 보여지는 거죠.

 

2.

한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요.

두려움은 무언가를 잃을까하는 염려에서 나오니, 

두려워한다는 것은 '나는 소유의 사람'이라는 고백이라는 군요.

삶을 소유의 코드로 읽지말고 존재의 코드로 읽으면

자유로워진다고요. 

나는 내가 참여하는 모든 곳에 편재하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 나아가 나무와 풀과 꽃 등 자연 역시 그러하겠죠.

사람은 죽음을 통해서 자연에도 참여하니까요.

과연 죽음은 나에게서 '또 다른 나'로 흐르는 과정이로군요.

 

그러고 보면 삶도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언덕에서 제자들에게 강조한 말씀도 이것이죠.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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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남자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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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의 마르코와 그 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한 크누트 함순의 <굶기의 예술>을 떠올렸다. 모두 자신을 극한에까지 마이너스적 방향으로 소진시키면서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였다. 달이 이즈러졌다 다시 차오르는 것처럼, 존재에서 비본래적 요소를 다 제거해야만 다시 적극적으로 플러스적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역설!

조르쥬 페렉의 <잠자는 남자>는 "나"라는 일인칭이 아닌  "너"라는 비주체적 이인칭으로 기술되어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주체가 빠진 너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매사에 무관심하며 삶에서 자신을 지워가기에 급급하다. 아무 것도 안하기, 더이상 기다릴 것이 없을 때까지 기다리기, 그는 근대의 이상이던 성공하려는 삶의 의지가 없다. 외려 적극적으로 탈개성화하고 자아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즉 그의 의지는 마이너스를 향하려는 의지이다. 이것은 타자에 의한 영락과는 다르다. 자발적으로 영락하는 것은 영락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인 일이 되고, 존재로의 실험이 된다. 그러기에 마지막에 그는 다시 반환점을 돌아 자신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역시 자발적으로!

누군가가 권하는 대로, 타의에 의해서 우리는 성공이데올로기를 주입받고, 자아의 확장을 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그 근대적 성공의 가치를 페렉의 주인공은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그 반대로의 실험을 해봄으로써 체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자발적 무관심과 영락은 적극적인 허무이다. 그래서 그의 무관심은 힘이 있다.

 

추기: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역시 그의 자사전적 에세이 <불안의 책>에서 페렉과 같은 정조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고보면 자신의 존재의 부피를 소진시켜 존재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존재론적 실험은 서구 문학의 한 흐름으로 자라잡은 것 같다.

 

"

존재의 변화를 줄 수 없는 그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다.그렇게 되면 그는 사소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존재의 변화가 없을 때까지 존재를 단조롭게 하라. 가장 사소한 것이 흥미로운 일이 될 때까지 하루 하루 감정을 이완하라.지루하고, 똑같고, 불필요한 노동을 날마다 몰두하다 보면 내 앞의 탈출의 환영이 나타난다. 머나먼 섬에 대한 상상 속 이미지가, 과거에 있었던 동원의 거리 축제가, 다른 감정이, 다른 내가 나타난다.그러나 장부 두 권에 숫자를 적는 동안내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중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을 나는  한 권의 장부를 쓰고 다음 장부를 쓰는 동안 인식한다.(<불안의 책>,38-39)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때문에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이라도 되었다면나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회계사 보조는 로마의 황제가 되는 꿈을 꿀 수 있다. 영국의 왕은 그럴 수 없다. 영국의 왕은 이미 왕이기 때문에 그 외에 다른 것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같은 책,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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