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공간성: 부동의 이동

 

 

손에 손을 잡고 그들은 힘겹게 같은 걸음으로 나아간다. 아무것도 없는 손 안에는 -아니,

비어있는 작은 손들. 둘 다 뒤에서 보면 등을 굽힌 채로 힘겹게 같은 걸음으로 나아간다.

꼭 쥔 손에 닿으려고 들어 올린 아이의 손. 꼭 잡고 있는 늙은 손을 꼭 잡기. 꼭 잡고 꼭 잡히기.

힘겹게 가버리지만( 움직이지만의 의미: 제 주석) 결코 서로 멀어지지 않는다. 뒤에서 본 모습.

둘 다 등을 굽힌 채로, 꼭 잡으면서 꼭 잡힌 손들로 하나가 된. 하나가 된 것처럼 힘겹게 간다.

하나의 그림자. 또 하나의 그림자.(14-15쪽)

 

---사무엘 베케트의 <이제 그만 >(알랭 바디우, <<베케트에 대하여>>, 서용순, 임수현 옮김, 민음사, 224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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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손을 통해서 각자의 위치를 지워버리지요. 움직이지 않고 이동하기!

 

옛날에 소개한 글과 그림 하나를 보여드립니다.

 

Cover image expansion

 

Emilio Longoni (Italian, 1859–1932). The First and the Last Steps. 1897. Oil on canvas. Photo Credit: Alinari / Art Resource, NY.

 

1.

그림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화가' 에밀리오 롱고니의 그림입니다.

원래 점묘파 계열에 서있는 화가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화폭에 담았었죠.

 

아기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기 위해 인생에서의 첫 발걸음을 뗍니다.

반면에 노인은 지팡이에 의지하고 마지막 걸음을 걷죠.

같은 울타리에 독립과 의존 두 가지 방향의 기운이 흐릅니다.

화가는 아기와 노인의 대비를 통해 삶의 한 순환을 잘 보여주지요.

아이는 의존상태를 떠나려 하고 노인은 다시 아이가 떠난 의존상태로 돌아옵니다.

그 순환의 한 지점이 한 그림에서 보여지는 거죠.

 

2.

한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요.

두려움은 무언가를 잃을까하는 염려에서 나오니, 

두려워한다는 것은 '나는 소유의 사람'이라는 고백이라는 군요.

삶을 소유의 코드로 읽지말고 존재의 코드로 읽으면

자유로워진다고요. 

나는 내가 참여하는 모든 곳에 편재하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 나아가 나무와 풀과 꽃 등 자연 역시 그러하겠죠.

사람은 죽음을 통해서 자연에도 참여하니까요.

과연 죽음은 나에게서 '또 다른 나'로 흐르는 과정이로군요.

 

그러고 보면 삶도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언덕에서 제자들에게 강조한 말씀도 이것이죠.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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