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가치를 재는 좋은 척도는 대체로 우리가 외로움을 어느 정도 견디고,
또는 좋아하는가의 능력에 달려 있다."
" 숭고함에 대한 우리의 설명은 윤리적인 것, 말하자면 숭고한 성격이라고 지칭되는
것에도 전용될 수 있다......이러한 성격의 사람은 사람들을, 그의 의지에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 관계들에 따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객관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예컨대, 그는 사람들의 잘못을, 심지어 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하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도, 그런 이유로 그 자신 쪽에서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사람들의 행복을 보면서도 시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들의
착한 특성을 인식하면서도, 그런 이유로 그들과 보다 가까운 관계를 맺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지각하면서도 그들을 탐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행복이나 불행은 그에게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그는
햄릿이 호레이쇼(Horatio)에 대해 묘사하는 것과 같은 심경을 가질 것이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아무것에게도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운명의 신이 고통을 주든 선물을 주든,
한결같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지, 자네는. '
성격이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행로나 그것에서 생기는 불행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인류 일반의 운명으로 바라봄으로써, 불행을 괴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식하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2부 39장, 345, 349쪽(홍성광역,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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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의 슬픔과 기쁨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던
호라티우스의 유명한 경구가 생각납니다.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쇼펜하우어에게서 배운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고통이나 불행을 객관적으로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그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심지어 행복까지도요.
늘 기쁘고 즐거운 순간만이 인생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2.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이 책을 발견했던 기쁨과 놀라움을 짐작합니다.
스승과 동지를 발견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삶에 숭고함이 깃들게 하는 방법이 비슷하지요.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도.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테니까"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