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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의 원제는 The Hours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다시 쓴'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이자, 영화 [디 아워스]의 원작이기도 하다.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 이건 대부분 잘해봐야 본전뽑기일 정도로 힘든 일이다. 영화 [디 아워스]의 경우도 이런 대부분의 경우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영화만 보았을 때는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었지만, 원작을 읽고 나니 감독의 능력에 대한 감탄이 줄어드는 걸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다.
일단 소설은, 영화처럼 과장되지 않다. 영화란 독자가 책장을 넘기며 생각할 시간을 조절하여 가질 수 있는 인쇄매체와는 달리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특히 상업영화는 더욱).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스티븐 달드리가 소설의 내용을 과장했던 것은. 하지만 바로 그 과장에서 나는 '해석'의 문제가 개입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로라 브라운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소설의 그녀는 그저 한번 자살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그것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음에 소름돋아할 뿐이다. 실제로 행동한다는 것과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바로 내가 영화를 그다지 좋게 바라보지 못하게 했던 이유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감히 스티븐 달드리의 소설 해석이 틀렸다라고 말하고 싶다(혹은 '달랐'던 것일지도).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바로 로라 브라운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줄리안 무어의 연기력에 기댄 바 크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함'에 대해 절망하고, 그래서 자살하거나 또는 가족을 떠나거나 라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소설 속의 로라 브라운은 보다 범상하다. 물론 소설 속의 로라 브라운도 어떤 비극성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약간의 희극성이 가미된 비극성으로, 영화의 인물보다 설득력이 있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것은 소설 속의 버지니아 울프가 창작해낸 인물 댈러웨이 부인과도 연결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처음에는 댈러웨이 부인을 자살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자살의 이유를 아주 사소한 것, 아무도 그 이유로 자살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하지만 일종의 비극성을 담고 있는 그런 이유로 촉발된 행동으로 만드려고 한다. 마치 로라 브라운의 케이크처럼.
소설이 재미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설의 구조에 있다. 소설 전체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의 스토리를 모사하고, 버지니아 울프를 포함한 소설 속의 각 인물들은 다시 댈러웨이 부인을 모사한다. 그리고 시대를 넘나들며 다층적으로 구성된 소설의 구조 속에서 세 인물들은 또 다시 서로를 모사한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매우 대중적이라는 데 있다. 소설을 읽는 재미가 아주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이 소설의 각 챕터는 또 아주 잘게 나뉘어져 있어서 페이지가 말 그대로 쓱쓱 넘어가버린다.
영화는 소설을 '잘' 옮긴 것 같다. 달리 말하면, 감독의 창의성이 모자란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사건의 순서까지 소설과 같은 순으로 진행되며, 러닝타임을 맞추어야 하는 상업영화의 한계 상, 소설의 몇몇 이야기는 잘라먹기도 했다(그리고 앞서 지적했듯 몇 사건은 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과장된 인물이 바로 로라 브라운의 예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맡겨진 행간의 이야기를 포함해, 훨씬 풍부하다. 영화에 감동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혹은 흥미를 지녔던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