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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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말 재밌네요.
일이 잘 안 풀려서, 잠깐 기분 전환이나 할까 하고 책장을 열었는데, 마지막 페이지가 끝날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우연히 이메일을 교환하게 되고, 거기서 사랑이 싹틉니다. 그리고 '서로 만나지 않음'이 이 관계의 전제가 되는 연애가 시작됩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히고, 재치 있는 표현들에 키득거리며 웃다가, 다음 순간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암튼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네요. 그야말로, 마음 속에 바람이 붑니다. 산들바람이기도 했다가, 뜨거운 훈풍이기도 했다가, 차가운 북풍이기도 했다가.
<비포어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나중에 어떻게 됐을까 엄청 궁금한 것처럼, 두 주인공의 나중이 궁금합니다. 물론... 책에서는 암울한 결말을 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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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자 아트 픽션 1
폴 왓킨스 지음, 권영주 옮김 / 아트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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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재능이 있지만, '무언가'가 되기엔 충분치 않은 재능을 지닌 사람. 이 책의 주인공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모차르트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살리에리처럼. 이런 사람들은 재능이 완전히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불행하다. 왜냐하면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갖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도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매우 진지하고, 매우 힘들게 노력한다, 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사실, 이 모티프는 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 '위조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그림을 위조하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주는 재미 중 상당 부분은 '위조의 기술'과 위조자의 심리에 있다. 대체 어떡하면 그림을 위조할 수 있을까,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소설의 몇몇 페이지에 등장하는 세세한 묘사 덕분에 약간의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얼마 전 위작으로 판명난 이중섭 작품의 위조자처럼 옛날 그림에 발명된 지 오래 되지도 않은 펄 물감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아무튼, 위대한 화가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예술의 도시 파리에 온 주인공 데이비드 핼리팩스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름처럼, 위대한 자들의 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어떤 '운명' 같은 힘에 떠밀려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무엇이 된다. 그것은 바로 '그림 위조자'. 더 재밌는 것은, 바로 거기에 그의 재능이 있었다는 것. 그가 위조해낸 위작들은 꽤나 훌륭해서, 상당한 감식안을 지닌 사람들의 눈조차도 속일 수 있는 정도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에게 그 아무리 대단한 기술을 지녔다고는 해도 자신의 재능이 고작 남의 것을 베끼는 데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결국 모사품은 원작보다 언제나 모자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 그림을 위조하는 여느 위조자들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림을 위조하면서 커다란 내적 갈등을 느낀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조하면서, 마치 거장의 머릿속, 알 수 없는 그림자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를 지치게 하는 것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끝내 잡히지 않는, 거장이 원작을 그렸을 때의 바로 그 느낌, 그것을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소설이지만 술술 잘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폴 왓킨스의 장기는 아무래도 세밀한 묘사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거리 풍경, 날씨, 도시의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2차 대전 중의 파리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려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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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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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것으로 세 권째이다. 처음 읽은 책은 [달의 궁전].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이걸 읽었을 때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한번 읽기에 나쁘지는 않은 소설이네' 정도로 생각하고 던져버렸고, 줄거리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로 본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내 취향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스터를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나 쓰는 그저 그런 작가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예전 직장 동료는 폴 오스터의 대단한 팬이었다. 그녀의 취향에 대해서는 믿는 바가 있었고, 내가 뭔가 폴 오스터에게서 놓치고 지나간 것이 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참 후에 집어든 책이 [뉴욕 삼부작]이었다. [뉴욕 삼부작]은 훌륭한 소설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리면서 읽은 소설이었고(그래서 아직 서평을 쓰지 못했다). 두 번째의 만남이 상당히 괜찮았기 때문에 신작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환상의 책]은 끔찍하게도 불행한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책의 화자 데이비드 짐머는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엄청난 돈을 얻게 되지만 가족들의 죽음과 함께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다. 실의와 술에 빠져 살던 어느날 한편의 무성영화를 보게 되고, 가족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웃게 된다. 이후 그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인 헥터 만의 영화를 연구하는 것으로 가까스로 살아가던 짐머는 연구서를 출간한지 오래지 않아 헥터 만이 살아 있다는 편지 한통을 받게 된다. 소설의 앞부분이 짐머가 헥터 만의 영화를 연구하면서 자신이 쓴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이라면, 뒷부분은 책이 발간되고 난 후 연달아 일어나는 사건들 및 그 사건의 중심인물이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짐머가 드디어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자 마자 폴 오스터는 뒤통수를 치고 만다. 사실 짐머의 행복이 예상되면서 소설에 감정을 이입한 여느 독자가 그러하듯이 같이 안심을 하고 있던 나는 정말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안돼!'하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솔직히 바로 직전까지는 감당하기 힘든 불행을 겪고 다시 행복해지는 주인공이라는 통속성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슬쩍 무시 비슷한 감정도 같이 느끼고 있던 터였다. 보기 좋게 반전의 상황을 맞은 덕분에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소설을 격한 감정 상태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면서).

책은 짐머가 추적한 헥터 만의 이야기, 짐머가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헥터 만의 이야기, 그리고 헥터 만이 찍은 영화를 이야기를 하는 데 많은 양을 할애한다. 그런데 헥터 만의 인생 이야기는 어찌 보면 짐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둘 다 인생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이 있다. 짐머가 번역하고 있는 책의 저자, 샤토브리앙. 샤토브리앙은 18세기 프랑스 귀족으로, [죽은 남자의 회상]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이 책은 그가 죽은 후에 출판되었는데, 죽기 전에 경제적인 궁핍을 면하기 위해 책에 대한 권리를 이미 여러 사람에게 판매한 상태였다고 한다. 샤토브리앙의 책은 헥터 만의 아무도 보지 못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현실세계와 소설세계의 묘한 선에 존재하는 바로 이 책 [환상의 책]이기도 하다. 또한, 여주인공 앨머가 쓴 책([환상의 책])이기도 하고 헥터 만의 영화 [마틴 프로스트]가 영화 속에서 쓴 소설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거나 무덤 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라는 부재와 결핍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작가들은 자신의 생산물과 동일하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의 생산물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책(영화)이 있으면 작가는 죽어야 하고, 작가가 살아 있다면 책(영화)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구성은 [뉴욕 삼부작]에서도 볼 수 있었다. [뉴욕 삼부작]은 탐정과 작가, 탐정의 관찰과 작가의 글쓰기가 묘하게 뒤섞이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성찰이 되어버리는 이야기였으니까(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폴 오스터는 드물게 통속성과 문학성을 조화시키고 있는 작가다 싶다. 그의 책은 우선 읽는 재미가 있지만 지적 놀음을 즐기기도 한다. 그의 책을 겨우 세 권 읽어보았을 뿐이지만(그리고 그 중 한권은 줄거리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지만) 오스터의 책은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즐거움과 머리아픔을 선사한다. 며칠간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오스터의 책을 옆에 쌓아두고 이제까지 읽은 오스터의 소설 세권을 읽은 다음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면 즐거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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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고양이 유키뽕 1
아즈마 카즈히로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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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늘어져서 자는 모습, 기분 좋아 뒹굴거리는 모습, 느긋하게 몸을 닦는 모습... 전형적인 고양이들의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아주 자주!) 고양이를 부러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쁜 월요일 아침, 헐레벌떡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따뜻한 곳에서 몸을 말고 자는 고양이, 느긋하게 기지개를 펴고 있는 고양이가 부러워보이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유키뽕은 평범한 이런 고양이와는 아주 다른 묘생을 살고 있다. 유키뽕의 주인 아케미는 대책 없는 프리타(freeters: free와 arbeiter를 합친 말로, 일본에서 고졸, 대졸자 중 학업이나 정규직 취업에는 관심 없이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부류를 일컫는 말, 이라고 한다)다. 언제나 남자친구가 바뀌고, 돈이 생기면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 써버린다. 그러니 집에서 기다리는 유키뽕을 돌봐줄 턱이 없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유키뽕에게 아케미는 말한다.

아케미 : 이봐, 유키뽕
유키뽕 : 네?
아케미 : 넌 왜 여기에 있지?
유키뽕 : 에? 왜라뇨?
            유키뽕은 이렇게 귀엽잖아요... 그러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마
            음이 편해진다고나 할까...♡
아케미 : 쓸모없는 놈!
유키뽕 : 예?
아케미 : 너한테 줄 밥은 없어! 내일부터는 스스로 벌어먹어!
유키뽕 : 히익~!!

그리하여, 불쌍한 유키뽕은 알바를 뛰기 시작한다. -_-a
이 교훈적인 만화를 우리 보리 꽈리에게 보여주며 귀감을 삼으라 말하였지만, 팔자좋은 우리집 뇬놈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_-a

대충 그린 그림 같지만 펜 선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취향 맞는 사람이라면 꽤 마음에 들 터이다.
만화도 그런대로 재미 있지만, 일본의 독자들이 써서 보낸 고양이를 주제로 한 '하이쿠'를 읽는 재미가 아주 그만이다. 읽으면서 만화보다는 이것 때문에 우하하하, 하고 웃는 일이 많았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풍선이 터지니 도망가는 저 고양이 (다카오카 류야/21세 대학생)

뱃살이 늘어지네 믿기지 않네 (사유리 엄마/31세 주부)

꼬리 자랑 고마해라 똥꼬 보일라 (코타로/38세 운전수)

부럽도다 거기까지 혀가 닿으니 (무명씨/39세 회사원)

고양이와 뺏고 뺏는 남편의 무릎 (뮤키치/28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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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3
제인 오스틴 지음, 이옥용 옮김 / 범우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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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소설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웬일인지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는 <오만과 편견> 밖에 없다. 물론 <엠마>와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스토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건 영화를 통해서였지 실제로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맨스필드 파크>도 마찬가지다. 케이블 티비에서 하는 걸, 무려 두번에 나누어서 본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범우사에서 <맨스필드 파크>를 번역해 냈다. 범우사... 좀 불안하지만 일단 사보기로 했다.

범우사에 대한 불안함은 역시 맞아 떨어진 듯. 번역이 아주 엉망이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뭔가, 소설을 읽는 맛이 떨어진다고 할까. 제인 오스틴 쯤 되는 작가가 이런 서투른 문체를 구사했을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 기본적이고도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가 있다. 소설의 처음 부분에서는 주인공 에드먼드가 네 남매 중 둘째로, 그러니까 마리아와 줄리아의 오빠로 소개되는데 소설을 읽다가 보면 어느새 동생으로 둔갑해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시 오빠로 돌아간다. 어떻게 이런 데서 실수를 할 수 있을까. 번역자가 혹시 여러 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교정작업도 여러 명이 했을 터이다. 한 사람이 꾸준히 봤다면 한번 쓱 읽어보기만 해도 잡아낼 수 있는 실수이니 말이다.

[맨스필드 파크] 역시 제인 오스틴의 전매특허, 결혼과 사랑, 그리고 계급에 관한 이야기다. 여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신사계급이지만 가난한 집의 장녀이다. 귀족과 결혼한 이모, 그리고 목사와 결혼한 이모를 두고 있는 패니는 10살이 되자 약간의 자선을 베푼 이모들 덕에 맨스필드 파크로 옮겨 자라게 된다. 귀족 집안에서 자라지만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버트램 가족과 같은 신분은 아니다. 패니는 끊임없이 한 계급 아래이며 자선 덕택에 살고 있다는 것을 주입받으며 자란다. 크고 차가운 저택에서 패니에게 친절한 것은 차남 에드먼드밖에 없다.
에드먼드는 차남이기 때문에 작위를 물려받을 수도 없고, 영지를 물려받을 수도 없다. 이런 제약이 그의 성격과 결합되어, 에드먼드는 장래 목사가 되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이 소설은 특히 영국 귀족사회에서 차남의 입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역시 이런 점은, 제인 오스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자라나면서 패니는 에드먼드를 사랑하게 되지만, 에드먼드는 부유하고 아름다우며 재기가 뛰어난 여성, 매리 크로포드를 사랑한다. 그러나 매리 크로포드는 당시 일반적인 여성이 최고로 치는 가치인 부를 숭상하는 여인이다. 그러니, 에드먼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목사가 되려는 그를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게다가 차남이기 때문에 돈도 별로 많지 않으니, 매리는 에드먼드에게 변호사가 되거나 군대에서 출세하기를 바란다.
한편 패니는 매리 크로포드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는 외모도 뛰어난 편이지만 활발한 성격에 다재다능하고, 무엇보다 돈이 아주 많아서 주위에서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패니는 그의 경박한 성격 -- 그는 약혼을 한 패니의 사촌언니와 장난으로 연애질을 한다 -- 때문에 그를 경멸하던 터라, 그의 구혼을 거절한다. 패니의 주위 사람들은 그가 구혼을 한 것도 '감지덕지'인데 패니가 그를 거절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등등의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짐작하겠지만 모든 일이 정리가 되고 패니와 에드먼드는 행복하게 결혼한다, 라는 결론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국내 출판사들이 왜 그다지도 [오만과 편견]만을 줄기차게 번역해 냈는지 약간은 이해가 된다. [맨스필드 파크]의 패니 프라이스는 [오만과 편견]의 리지만큼의 매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패니 프라이스는 그야말로 '조신하고 바람직한 여성'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루하다. 리지 같은 경우, 독립적이고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좀더 다이내믹한 캐릭터였지 않은가. 그래서인가보다. 영화 [맨스필드 파크]에서 패니 프라이스는 소설의 소심하고 연약한 성격을 벗어버렸다. 영화 속의 패니는 주관이 뚜렷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똑똑한 여성이다. 소설 속의 패니 역시 지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녀는 그것을 밖으로 전혀 표현하지 못하는 무척이나 소심한 여성이라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물론 '글 쓰는 걸 좋아한다'라는 설정도 없다. 영화의 감독은 당시의 사회상과 복식, 관습 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래서 여주인공에게 좀더 '성격'을 부여해서 활기차게 만들었다. 영화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소설 속의 패니 프라이스가 짜증나서 한 대 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물쭈물과 눈치보기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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