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3
제인 오스틴 지음, 이옥용 옮김 / 범우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인 오스틴 소설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웬일인지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는 <오만과 편견> 밖에 없다. 물론 <엠마>와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스토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건 영화를 통해서였지 실제로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맨스필드 파크>도 마찬가지다. 케이블 티비에서 하는 걸, 무려 두번에 나누어서 본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범우사에서 <맨스필드 파크>를 번역해 냈다. 범우사... 좀 불안하지만 일단 사보기로 했다.

범우사에 대한 불안함은 역시 맞아 떨어진 듯. 번역이 아주 엉망이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뭔가, 소설을 읽는 맛이 떨어진다고 할까. 제인 오스틴 쯤 되는 작가가 이런 서투른 문체를 구사했을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 기본적이고도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가 있다. 소설의 처음 부분에서는 주인공 에드먼드가 네 남매 중 둘째로, 그러니까 마리아와 줄리아의 오빠로 소개되는데 소설을 읽다가 보면 어느새 동생으로 둔갑해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시 오빠로 돌아간다. 어떻게 이런 데서 실수를 할 수 있을까. 번역자가 혹시 여러 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교정작업도 여러 명이 했을 터이다. 한 사람이 꾸준히 봤다면 한번 쓱 읽어보기만 해도 잡아낼 수 있는 실수이니 말이다.

[맨스필드 파크] 역시 제인 오스틴의 전매특허, 결혼과 사랑, 그리고 계급에 관한 이야기다. 여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신사계급이지만 가난한 집의 장녀이다. 귀족과 결혼한 이모, 그리고 목사와 결혼한 이모를 두고 있는 패니는 10살이 되자 약간의 자선을 베푼 이모들 덕에 맨스필드 파크로 옮겨 자라게 된다. 귀족 집안에서 자라지만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버트램 가족과 같은 신분은 아니다. 패니는 끊임없이 한 계급 아래이며 자선 덕택에 살고 있다는 것을 주입받으며 자란다. 크고 차가운 저택에서 패니에게 친절한 것은 차남 에드먼드밖에 없다.
에드먼드는 차남이기 때문에 작위를 물려받을 수도 없고, 영지를 물려받을 수도 없다. 이런 제약이 그의 성격과 결합되어, 에드먼드는 장래 목사가 되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이 소설은 특히 영국 귀족사회에서 차남의 입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역시 이런 점은, 제인 오스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자라나면서 패니는 에드먼드를 사랑하게 되지만, 에드먼드는 부유하고 아름다우며 재기가 뛰어난 여성, 매리 크로포드를 사랑한다. 그러나 매리 크로포드는 당시 일반적인 여성이 최고로 치는 가치인 부를 숭상하는 여인이다. 그러니, 에드먼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목사가 되려는 그를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게다가 차남이기 때문에 돈도 별로 많지 않으니, 매리는 에드먼드에게 변호사가 되거나 군대에서 출세하기를 바란다.
한편 패니는 매리 크로포드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는 외모도 뛰어난 편이지만 활발한 성격에 다재다능하고, 무엇보다 돈이 아주 많아서 주위에서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패니는 그의 경박한 성격 -- 그는 약혼을 한 패니의 사촌언니와 장난으로 연애질을 한다 -- 때문에 그를 경멸하던 터라, 그의 구혼을 거절한다. 패니의 주위 사람들은 그가 구혼을 한 것도 '감지덕지'인데 패니가 그를 거절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등등의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짐작하겠지만 모든 일이 정리가 되고 패니와 에드먼드는 행복하게 결혼한다, 라는 결론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국내 출판사들이 왜 그다지도 [오만과 편견]만을 줄기차게 번역해 냈는지 약간은 이해가 된다. [맨스필드 파크]의 패니 프라이스는 [오만과 편견]의 리지만큼의 매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패니 프라이스는 그야말로 '조신하고 바람직한 여성'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루하다. 리지 같은 경우, 독립적이고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좀더 다이내믹한 캐릭터였지 않은가. 그래서인가보다. 영화 [맨스필드 파크]에서 패니 프라이스는 소설의 소심하고 연약한 성격을 벗어버렸다. 영화 속의 패니는 주관이 뚜렷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똑똑한 여성이다. 소설 속의 패니 역시 지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녀는 그것을 밖으로 전혀 표현하지 못하는 무척이나 소심한 여성이라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물론 '글 쓰는 걸 좋아한다'라는 설정도 없다. 영화의 감독은 당시의 사회상과 복식, 관습 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래서 여주인공에게 좀더 '성격'을 부여해서 활기차게 만들었다. 영화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소설 속의 패니 프라이스가 짜증나서 한 대 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물쭈물과 눈치보기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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