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자 아트 픽션 1
폴 왓킨스 지음, 권영주 옮김 / 아트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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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재능이 있지만, '무언가'가 되기엔 충분치 않은 재능을 지닌 사람. 이 책의 주인공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모차르트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살리에리처럼. 이런 사람들은 재능이 완전히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불행하다. 왜냐하면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갖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도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매우 진지하고, 매우 힘들게 노력한다, 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사실, 이 모티프는 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 '위조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그림을 위조하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주는 재미 중 상당 부분은 '위조의 기술'과 위조자의 심리에 있다. 대체 어떡하면 그림을 위조할 수 있을까,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소설의 몇몇 페이지에 등장하는 세세한 묘사 덕분에 약간의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얼마 전 위작으로 판명난 이중섭 작품의 위조자처럼 옛날 그림에 발명된 지 오래 되지도 않은 펄 물감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아무튼, 위대한 화가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예술의 도시 파리에 온 주인공 데이비드 핼리팩스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름처럼, 위대한 자들의 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어떤 '운명' 같은 힘에 떠밀려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무엇이 된다. 그것은 바로 '그림 위조자'. 더 재밌는 것은, 바로 거기에 그의 재능이 있었다는 것. 그가 위조해낸 위작들은 꽤나 훌륭해서, 상당한 감식안을 지닌 사람들의 눈조차도 속일 수 있는 정도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에게 그 아무리 대단한 기술을 지녔다고는 해도 자신의 재능이 고작 남의 것을 베끼는 데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결국 모사품은 원작보다 언제나 모자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 그림을 위조하는 여느 위조자들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림을 위조하면서 커다란 내적 갈등을 느낀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조하면서, 마치 거장의 머릿속, 알 수 없는 그림자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를 지치게 하는 것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끝내 잡히지 않는, 거장이 원작을 그렸을 때의 바로 그 느낌, 그것을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소설이지만 술술 잘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폴 왓킨스의 장기는 아무래도 세밀한 묘사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거리 풍경, 날씨, 도시의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2차 대전 중의 파리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려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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