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다 - 나를 서재 밖으로 꺼내주시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진원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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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행담은 어쩌면 가장 은밀한 수다일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맛 보고한 것들을 그대로 옮겨 적을 때 그 사람의 생각과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니까. 같은 절벽을 보더라도 ‘이곳에서 사람들이 참 많이 자살했겠네’ 하는 사람과 ‘이 절벽에서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겠지’ 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그 절벽이 가팔라서가 아니다. 순전히 그 절벽에 서 있는 사람의 의식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상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천천히 그 사람 자체를 건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책 『오! 수다』는 저자인 오쿠다 히데오 개인을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두른 여행이든 오랫동안 준비했던 여행이든 여행지에서 누리는 기쁨은 꼭 같다. 새로운 것들과 기대가 뒤섞여 평소의 모습은 잊고 갑판에서 춤을 추는 그런 여행이 주는 자유. 그걸 누리기 위해서 오늘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 작가는 시종일관 우리에게 수다를 떤다. 이 수다스러운 사람이 작가가 된 것은 필연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이 되었을까. 나는 상상할 수도 없다. 여행지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일단 먹고 남들처럼 활기차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느슨해진 상태로, 작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건 위에서 말했듯 순전히 개인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감상이 거의 들어있지 않다. 그 여행지에 가서 느낀 점과 있었던 일을 제멋대로 풀어놓은 이야기다. 두서도 없고 주제도 없고 감동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의 끝이 없는 수다를 읽어가다 보면 “아! 이 사람,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어떨 때는 자신의 소설 『공중그네』에서 나왔던 이라부 같은 모습으로 말을 늘어놓고 어쩔 줄 몰라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분명히 개인의 모습에서 그런 재미있는 캐릭터가 나왔구나 싶다. 겁도 많고 엄살도 많고 엉뚱한 순간에 몽상을 하는가 하면 질투도 하고 진심으로 감동 받기도 잘 하는. 이 감정이 변화무쌍한 사람이 바로 오쿠다 히데오.


   어쩌면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저 한 사람이 늘어놓는 공감대를 얻기는 템포가 너무 빠른 이 수다가 단순한 수다로 여겨지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 개인의 팬이라면, 중년 남성의 허물을 벗는 모습들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다. 흥미 있는 점이라면 토박이 일본인이 느끼는 우리나라 부산의 감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 이제 휴가철이고 한 번 밖으로는 나가야 싶겠다 싶은 분들은 이 책 읽어보시고 여행에서 망가지는 방법도 습득하시길. 일본의 식문화도 한몫하고 있으니 미각을 일깨우는 것도 한몫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은 순전히 직역이었는데 거슬리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약간의 의역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음식 이름은 모두 고유명사 표시한 것은 좋았지만 지나친 역주도 약간 거슬린다. 자세한 정보를 습득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환영했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적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다면, 오쿠다 히데오가 말했던 영화나 노래의 제목은 모두 원제가 붙었는데 그 중에 하나인 <바다 위의 피아니스트>라고 말했던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고 원제는 <The Legend Of 19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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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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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소설이 가지고 있는 최대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폐부를 찌르는 것에 있다. 암묵적으로 우리가 가진 은폐된 것들을 철저하게 까발리는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극도로 표출되는 사건과 선택의 갈림길 혹은 선택의 무의미들. 저변에 깔린 금기시하는 것들과 떠올리기 싫어하는 것들이 내 앞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나는 처음 이 소설이 장편 소설인줄 알았다. 원래 일본소설은 많이 읽지 않는 편이라 그저 천재작가라는 타이틀에 못 이겨 고른 것이다. 하지만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 동안에 내가 느낀 일본의 감수성이란 약간은 극성스럽고 너무 붕 뜬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이 소설 읽고 조금 생각을 바꿨다. 만만치 않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면서 한밤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도 보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딘가에 갇히거나 좇기고 있다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실체화 되었다거나 이러저러한 방법의 공포의 기술은 많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가진 코드를 집어내자면 그것은 그 모두가 우리가 무서워하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굳이 프로이트까지 들먹이면서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금기시된 인간이 가진 욕망과 그 끝이 언제고 공포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오래된 터부로써 만지기만 해도 옮을 것 같은 질병과도 같은 공포이다. 그리고 이 소설 안에서 그것들은 은밀하고 때로는 대담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알 수 없는 곳으로의 유배, 실체화된 어둠, 불가피한 선택.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좁게는 항상 겪는 선택과 따돌림과 은폐와 불안 등을 극대화한 것과 같다. 그러니 감정이입을 하고 주인공의 선택과 상황을 따라가 보자.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다. 여름철에 목에 달라붙는 머리카락과도 같이 떼어내 버리고 싶지만 정작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멀스멀거리는 기분 나쁜 느낌. 바로 그것이다. 설혹 그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서든 떼어냈다 하더라도 붙어있었을 때의 느낌은 고스란히 남아서 몸서리치게 만드는 그 무엇. 우리가 감추고 들추기 싫어하는 어떤 것들. 대면하기 두려워하는 진실들. 공포는 바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한밤이든 한낮이든 부담 없이 책장을 펼칠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보건 간에 그것은 주인공 혼자만이 가진 공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그건 인간이 가진 모습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도 당장 겪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포장된 길을 걸으면서 이세상이 과연 진짜일까? 하는 작은 의문만으로도 전복될 수 있는 것이 당신의 세계라면, 이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아무리 온힘을 다해서 거짓이라고 부정해도 눈앞에 다가온 세계다. 그러니까, 환상과도 같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있을 법한 일들이기에 더더욱 공포는 공포로 다가온다.

   잠시 현실을 잊거나, 잠시 현실을 깨우치고 싶은 사람은 공포를 보라. 그 안에서 불가해한 욕망과 허상을 경험할수록 지금 당신이 누워있는 침대가 불편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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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하워드 진.에드워드 W. 사이드 외 17인 지음, 강주헌 옮김, 데이빗 버사미 / 시대의창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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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독서의 즐거움을 떠나서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슬픈 진실인지도, 아직 세상의 건너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바꾸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도 서평을 쓰고자 한다. 스무 명이 전해주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라.

   먼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세계 유수의 명사들이 벌이는 아름다운 문장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고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먼저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더럽고 무섭고 불쾌한, 심지어 욕지기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치장할 수 없고 치장해서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다. 진실은 언제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잔인하고 개중에 어떤 것들은 진실이 아닌 것 같은 일도 있는 법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진실들은 꼭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진실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바꾸고 싶어 한다면 이 책은 아주 고마운 책이다.

   처음에 말을 했듯 나는 이 책에서 여타 책들에서 얻을 수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이 책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 이유는 이 책에서는 확실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개연성이 충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누구도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 지내야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들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책속의 이야기라고 여기고 즐기기엔 너무나도 슬프고 슬픈 이야기들. 하지만 그 안에는 힘이 담겨있다. 단지 재미있게 읽었다고 책장을 덮는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당장에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어떤 종류의 신념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러면 대체 어떤 일들이 담겨있을까. 나는 잠시 짧은 사담을 하려고 한다. 아는 분께서 통곡의 벽을 간 일이 있다고 했다. 통곡의 벽은 세월과 눈물과 고통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하지만 통곡의 벽에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은 총탄이 지나간 상흔이다. 자신도 통곡의 벽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군인들이 지나갔다. 자신의 옆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던 한 노인은 갑자기 쓰러졌다. 순간 놀라서 엎드리고 자신의 옆에 쓰러져 있던 노인에게로 엉금엉금 지나갈 때 그는 군인들이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동전을 받는 소리. 챙그랑거리는 동전들이 부딪치는 청음 속에서 군인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한 발의 총알로 노인을 죽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내기를 했던 것이 틀림없다.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군인들 뒤에서 그는 노인에게로 기어서 갔다. 이미 노인은 죽은 상태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있어야하는 것일까.

   알약 하나가 없어서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살기 위해서 헬리콥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제 나라에서 제 나라 말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 아직도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무수한 나라들. 어떤 이의 말 한 마디에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아직도 세상에는 홀로코스트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단순히 빅브라더에 대해서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도저히 진실들에 대해서 다 여기서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으니까. 내가 가진 불평등이 사실은 어떤 평등보다도 위대할 수도 있으며, 어떤 불평등보다도 평등할 수도 있으니까.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째서 당신이 느끼는 불평등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어쩌면 우리는 불평등조차도 느끼지 않고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진실은 알고자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리고 진실의 대가는 커서 그것을 알고 나면 그 진실의 무게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또는 그 진실을 바꾸기 위해서 몸부림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대가이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죽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나는 간절하게 이 무거운 진실에 대해서 누구 알고자 하는 이 없는가 묻는다.

   시대의 양심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진솔하다. 그들은 애써 감추지도 애써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그저 있었던 일들이며 있는 일들이며 있을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단지 이 책을 읽고 안 읽고는 당신의 몫이지만, 진실은 여전하다. 나는 세상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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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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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재를 지배하는 법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다. 근대를 지배하는 법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를 지배했던 것은 종교였다.―물론 이것은 서양 사관에서―교회가 나라를 만들었고 나라를 다스렸다. 중세를 흔히 암흑기라고 하는 것은 르네상스 이후 시대의 찬란함에 비해서 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문명은 꽃 피고 있었다. 물론 그 문명이라는 것은 오로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기는 했다. 그러한 시대에서 사람들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신의 뜻,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가 내세우는 것이 곧 가치관이었을 것이다. 고등 종교가 가지고 있는 윤리와 가치의 기준 말이다.

   이러한 시대에서 과학적인 수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여자다. 그 시대의 여자란 집에 귀속된 노예와도 같은 신분이었다. 이른바 지참금에 팔려가는, 거래되는 물건. 신의 뜻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시대의 노예에 불과했을 여자 검시관이 어떻게 소설의 전면에 떠오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시도였을 것이다. 금기시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중세에서 가장 자극적인 주제인 과학과 여성. 이 중 한 가지만 차용을 했더라도 분명 이 소설을 쓰는데 버거웠을 것이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 끝까지 상상력을 펼치기로 했나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새삼스럽게 현재 여성의 인권은 어떻고 하는 사회적인 시선을 끌어오지 않겠다. 또 거기에서 나오는 카테터가 지금의 카테터의 어원이니 어쩌니 하니 과학적 이야기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금지된 사회에서 금지된 것을 오히려 부추기는데서 오는 희열. 나는 바로 그 희열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째서 작가는 도리어 위험한 시도를 했던 것일까. 물론 나는 제일 먼저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을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여성 작가가 여성에 대해서 쓴다는 어설픈 자기함정은 파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나 소설에서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룰 수 없는 갈망을 채움’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소설에서 끊임없이 모델을 찾고 그들이 부추기는 현실의 벽을 통감한다. 거기에서 그들이 부딪치는 벽이 하나씩 허물어질 때마다 어찌나 통쾌한지! 분명 여기에서도 주인공이 활약을 하거나 도리어 상대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거기에서 이기는 힘, 바로 이 두 가지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가장 큰 흐름은 답답한 사회와 거기에서 벌어지는 정말, 암흑기와 어울리는 음습한 사건들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하나씩 풀어짐에 따라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냐하면, 위에서 말했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인 교회와 과학 사회와 여성이라는 그럴싸한 모티프를 두 개나 차용하다 보니 도리어 큰 흐름을 방해하는 느낌을 받더라는 것이다. 중세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지만 그 맛은 오히려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고, 과학적인 지식과 면밀한 진행은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교회의 무지와 횡포를 더더욱 부각 시키는 조형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각기 하나씩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큰 것을 취하면 작은 것은 버려야 하는 법. 작가는 너무나 큰 토끼를 두 마리나 들고 있어서 뛰지는 못하고 허둥지둥 달리는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극히 개인적이지만 작가의 매력 없는 문체와 고루한 묘사는 읽는 맛을 좀 더 떨어뜨리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재미있기는 하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주고 또 덤으로 중세 지식까지 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주인공은 명민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아쉬운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 빠진 점만이 보여서가 아니라 빠진 점을 보완하면 더더욱 멋진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여름 밤에 읽기에는 재미있으나 어딘가 한 부분을 확실하게 채워주지 못하는 점이 있어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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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설렘
서바이벌 핸드북 Outdoor Books 3
후지와라 히사오.하네다 오사무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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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곧 휴가철이 다가온다. 여름휴가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던 아련한 추억에서부터 연인과의 달콤한 여행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여행지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게 하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모처럼 쉬는 동안에 산이나 들이나 바다로 여행을 가는데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남의 좋은 휴가에 대한 망상에 찬물을 확 끼얹는 발언인지도 모르겠으나, 정말 그렇다. 가족과 함께 간 계곡에서 불의의 사고로 누군가가 다치게 된다면 휴가를 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더한 상처로 오래도록 남을 수도 있다. 이건 내가 겁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계절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등산을 가곤 하는데, 한 번은 내가 굴러 자빠지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었다. 물론 경미한 타박상에 그쳐서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달콤하고 따뜻한 추억을 만들고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미스러운 사고를 좀 더 줄일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일어난 사고라도 더 커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방법은 단 하나, ‘준비의 힘’일 것이다.

   앞서 찬물 끼얹듯 말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하상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라는 것도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평소에 하는 것에서 조금의 지식을 보태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물론 알면 간단한 것이지만, 모를 때에는 상황에 닥치면 혼란한 마음에 더욱 사고를 크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산이나 바다로 여행을 갈 때 간단한 응급처치 기술과 지식 그리고 도구만 가지고 간다면 큰 사고는 막을 수 있다. 물론 사건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는 말처럼 미리 알고 가면 훨씬 쉽다. 이 책은 그러한 상황에서의 대처법과 어재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크게 전문가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응급처치 요령을 담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서 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응급처치의 요령까지 담고 있다.

   가령 생활에서 금방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화상에 대한 것을 알아보자면, 1도의 화상이라도 10여 분간 흐르는 물에 환부를 대고 있어야 한단 사실 등을 말이다. (흔히 바르는 바셀린은 오히려 열이 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때문에 화상을 악화 시킨다) 또 상처 부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대는 과산화수소수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것을 약품처럼 사용하긴 하지만 실제로 그건 경미한 환부 소독에만 필요한 것으로, 살짝 뿌려주는 것이 좋은 사용법이다.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환부의 봉합을 막고 상처 부분의 세포를 죽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수영 잘하는 사람들은 입지도 않는 구명조끼는 어째서 모두 꼭 착용해야 하는 가에 대한 면밀한 설명과 구급조끼라도 모두 착용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친절한 조언은 어떠한가. 우리가 생활이나 혹은 야외에서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그에 대한 이해가 쉬운 설명으로 어째서 내가 이 책을 읽어야만 했는지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꼭 산이나 바다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뿐만이 아닌 지킬 사람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게다가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교통사고에 의해 쓰러져 있다면,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 119가 올 때까지 10여 분 동안 사람이 의식불명이라면? 텔레비전에서 자주 본 인공호흡도 알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어렵지 않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만 믿지 말고, 사람은 사람이 살린다는 말도 명심하면서, 이 책 한 번쯤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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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격정 2007-07-0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한권쯤 둘 만한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