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국 - 개정판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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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이제 없다. 영원한 제국을 꿈꾸면서 수 없는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서 있을 뿐이고 우리는 종종 책에서나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과거 우리 선조의 나라는 이제 조용히 책 속에서 우리는 응시하고 있을 뿐이지만 현재는 과거를 기반으로 아니, 과거들이 모여서 되는 것이기에 우리의 응시는 단순한 관조가 아닌 배우고 또한 그를 밝고 서려는 치열함이 담긴 응시이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고 그 안의 파란만장함을 볼 때면 내 안에는 치밀어 오르는 것이 항상 있었다.

 그 치밀어 오르는 것은 암투에 대한 미혹도 있겠지만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의 험난한 질곡에 대한 감상이라도 할 수 있겠다. 아, 이런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정조는 성군이었다. 타고난 제왕이었다. 그는 이상이 있었고 그 이상을 실천하는 추진력도 가지고 있었다. 단호하게 침묵했으며 무섭게 치밀했다. 이상, 영원한 제국을 세우기 위한 그의 꿈은 차근차근 그 수순을 밟고 있었다. 허나 그런 그가 비극적인 생애를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 상 지금 국회의 고위 관료가 하는 것과 같은 붕당정치 때문이었다.

 정당이란 모름지기 정권을 잡는데 그 목표가 있다. 보수니 개혁이니 자신들의 정치 이념에 맞추어서 나라를 다스리기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권을 잡는 것이 최선의 길인 것이다. 분당이나 정당이나 이런 면에 있어서는 같다. 지금이야 대선에서 패했다고 해도 목숨이 달아나지는 않지만 조선시대의 정권 변화는 피바람의 시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론 벽파의 처절한 이면 아래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애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애달음은 결국 금등지사를 놓고 벌이는 온갖 권모술수로 변화했다. 권력의 암투 이면에는 대립과 갈등 그리고 인간 본연의 소유욕과 생존 또한 미래를 보는 서로 다른 시각들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이인몽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한없이 휩쓸려만 가는 약한 사람이었다. 물론 기개와 우국지정은 있었으나 그는 허약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고 곧 그는 풍전등화와도 같은 정조를 바라보는 민초와도 같은 시각을 가진 사내였다.

 그의 시각으로 그려진 조선은 붕당정치는 이미 민초를 위한 정치가 아닌 정치를 위한 정치로 변질되었고, 오로지 철벽과도 같은 정조만이 그 안에서 분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민초의 시각을 가진 이인몽이 어찌 정조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는 붕당정치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태생이나 과거를 보아서도 비주류의 사람이었으며 방관자적인 입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축이 누구를 비난하지도 추켜세우지도 않는 중립자적인 입장에서 쓰여지고 있다.

 물론 3인칭 전지자적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기에 소설 안의 작가는 아무 때나 들어와서 이야기의 후일까지 조근조근 이야기 해주지만 그것은 긴 시각으로 보았을 때의 역사적인 위치를 알려주는 구실일 뿐이다. 그래서 남인이 좋았다, 노론이 좋았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고스란히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장치는 아주 좋았다.

 금등지사라는 초유의 비밀을 둘러싼 그들의 암투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준다. 예기했듯 붕당정치와 지금의 정치가 같다면 그들의 벌이는 싸움 역시 같다라는 것은 당연한 추측이다. 허나 정조라는 성군은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 물론 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해서 그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그처럼 올바르고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진 이가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같은 정치와 같은 민초가 있되 그 앞을 밝혀줄 사람이 없다는 것. 이는 지금 우리의 삶은 한층 더 힘들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주 슬프지는 않다. 한편으로 이인몽이 '예, 예.' 하고 외치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떠올렸던 바로 그 정조가 딱 한사람의 선지자라고 볼 수만은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태생의 귀천이 없듯이 우리 또한 정조와 같은 단 하나의 인물을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나아가 내 자신이 그 등불이 되고 또한 앞을 헤쳐나갈 수도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라고 우리는 배우고 익히며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살찌우게 하고 이인몽이 빠져들었던 것처럼 책 속에 있지 않을까.

 입을 떼면서 들먹였던 우리의 응시는 미래의 정조가 되기 위한 자신의 시경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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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a 2008-03-0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한 제국은 '인간의 길'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흔히 이 소설을 읽으며 영조, 정조의 세계에서 끝난다면 우리의 지식은 한심할 뿐이죠. 님의 이 소설을 읽으며 했던 통찰이 그래서 멋있게 느껴지네요. '정조와 같은 단 하나의 인물을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이 말만큼 중요한 말도 없을 거 같아요. 좋은 서평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 내면까지도 꿰뚫을 수 있는 서평들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