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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호로바쿠이(horror vacui)라는 단어가 있다. 직역을 하자면 빈 공간에 대한 무서움 정도가 되겠다. 글을 막 쓰기 전에 백지를 보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등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공포가 잘 표현된 단어다. 하얀 백지를 주고 그 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했을 때, 단시간에 막힘없이 써내려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냥 글도 아니고 소설을 쓰라고 하면 어떨까?
인터넷의 보급과 발달로 1인 미디어 시대가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글을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더더욱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이 책은 어쩌면 시기적절하다고 해야 하겠다. 단지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은데, 소설은 좀 비약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단언하건대 소설이야 말로 글쓰기 중에서 가장 고급 단계라고 말하겠다. 실제로 책에서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 쓰기를 시작하고 책과 함께 조금씩 쓰다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술술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책과 함께 소설을 쓰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소설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간편하게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보자. 소설을 쓰려면, 소설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호로바쿠이처럼, 빈 공간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소설이 너무나 어려운 것, 내가 하기엔 모자란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쓰려고 하는 어떤 글도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음을 알고, 편하게 써내려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소설 혹은 백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다.
마음가짐을 편하게 하고 글을 써보자. 인물이니 설정이니 세계관이니 하는 복잡한 것들을 잠시 미뤄두고, 먼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를 생각해야 한다. 멋진 것, 그럴싸한 것,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것. 쓰고 싶은 것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먼저 골라야 할 것은 자신이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동경하기 때문에 아름답기 때문에 등의 이유보다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그런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남도 잘 알리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그래야만 작위적이지 않은, 자신의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이다. 책에서는 바보가 되어야만 한다고 우긴다. 확신하지 말고 꾸미지 말고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색다른 시각, 그럴싸한 느낌 등 우리가 흔히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버리고 쓰기 시작할 때 글은 나오는 것이다. 첫걸음은 어렵지만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저자는 또 우긴다.
글을 조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고 또 자신의 습관이나 자세를 교정하거나 되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며, 글을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웃으면서 따라갈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소설이 어려운 것이 아닌 것처럼 글을 쓰는 방법 또한 어렵지 않게 쓰여 있다. 나는 전자에 속했는데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소설관과 맞아 떨어진 것도 있었고, 다른 시각인 것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다음에는 좀 더 편안하게 글을 써야하지 하는 마음이 생겼다. 글을 쓰면서 내가 너무 잡생각이 많지는 않았나, 알고 있는 것들을 내세워 좁은 방에 갇혀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얗고 넓은 빈 공간에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선뜻 점 하나를 찍어 넣기에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편안하게 어느 부분에는 이런 이야기를 넣고 반대쪽에는 다른 생각도 집어넣고. 나중에 뺐다가 집어넣었다가 할 수 있는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왜냐하면, 빈 공간은 아니 빈 종이는 단 한 장이 아니라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써야할, 쓸 수 있는 글들은 소설들은 무궁무진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