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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하워드 진.에드워드 W. 사이드 외 17인 지음, 강주헌 옮김, 데이빗 버사미 / 시대의창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독서의 즐거움을 떠나서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슬픈 진실인지도, 아직 세상의 건너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바꾸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도 서평을 쓰고자 한다. 스무 명이 전해주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라.
먼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세계 유수의 명사들이 벌이는 아름다운 문장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고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먼저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더럽고 무섭고 불쾌한, 심지어 욕지기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치장할 수 없고 치장해서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다. 진실은 언제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잔인하고 개중에 어떤 것들은 진실이 아닌 것 같은 일도 있는 법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진실들은 꼭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진실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바꾸고 싶어 한다면 이 책은 아주 고마운 책이다.
처음에 말을 했듯 나는 이 책에서 여타 책들에서 얻을 수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이 책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 이유는 이 책에서는 확실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개연성이 충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누구도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 지내야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들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책속의 이야기라고 여기고 즐기기엔 너무나도 슬프고 슬픈 이야기들. 하지만 그 안에는 힘이 담겨있다. 단지 재미있게 읽었다고 책장을 덮는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당장에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어떤 종류의 신념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러면 대체 어떤 일들이 담겨있을까. 나는 잠시 짧은 사담을 하려고 한다. 아는 분께서 통곡의 벽을 간 일이 있다고 했다. 통곡의 벽은 세월과 눈물과 고통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하지만 통곡의 벽에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은 총탄이 지나간 상흔이다. 자신도 통곡의 벽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군인들이 지나갔다. 자신의 옆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던 한 노인은 갑자기 쓰러졌다. 순간 놀라서 엎드리고 자신의 옆에 쓰러져 있던 노인에게로 엉금엉금 지나갈 때 그는 군인들이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동전을 받는 소리. 챙그랑거리는 동전들이 부딪치는 청음 속에서 군인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한 발의 총알로 노인을 죽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내기를 했던 것이 틀림없다.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군인들 뒤에서 그는 노인에게로 기어서 갔다. 이미 노인은 죽은 상태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있어야하는 것일까.
알약 하나가 없어서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살기 위해서 헬리콥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제 나라에서 제 나라 말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 아직도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무수한 나라들. 어떤 이의 말 한 마디에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아직도 세상에는 홀로코스트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단순히 빅브라더에 대해서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도저히 진실들에 대해서 다 여기서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으니까. 내가 가진 불평등이 사실은 어떤 평등보다도 위대할 수도 있으며, 어떤 불평등보다도 평등할 수도 있으니까.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째서 당신이 느끼는 불평등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어쩌면 우리는 불평등조차도 느끼지 않고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진실은 알고자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리고 진실의 대가는 커서 그것을 알고 나면 그 진실의 무게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또는 그 진실을 바꾸기 위해서 몸부림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대가이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죽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나는 간절하게 이 무거운 진실에 대해서 누구 알고자 하는 이 없는가 묻는다.
시대의 양심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진솔하다. 그들은 애써 감추지도 애써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그저 있었던 일들이며 있는 일들이며 있을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단지 이 책을 읽고 안 읽고는 당신의 몫이지만, 진실은 여전하다. 나는 세상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