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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현재를 지배하는 법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다. 근대를 지배하는 법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를 지배했던 것은 종교였다.―물론 이것은 서양 사관에서―교회가 나라를 만들었고 나라를 다스렸다. 중세를 흔히 암흑기라고 하는 것은 르네상스 이후 시대의 찬란함에 비해서 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문명은 꽃 피고 있었다. 물론 그 문명이라는 것은 오로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기는 했다. 그러한 시대에서 사람들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신의 뜻,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가 내세우는 것이 곧 가치관이었을 것이다. 고등 종교가 가지고 있는 윤리와 가치의 기준 말이다.
이러한 시대에서 과학적인 수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여자다. 그 시대의 여자란 집에 귀속된 노예와도 같은 신분이었다. 이른바 지참금에 팔려가는, 거래되는 물건. 신의 뜻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시대의 노예에 불과했을 여자 검시관이 어떻게 소설의 전면에 떠오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시도였을 것이다. 금기시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중세에서 가장 자극적인 주제인 과학과 여성. 이 중 한 가지만 차용을 했더라도 분명 이 소설을 쓰는데 버거웠을 것이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 끝까지 상상력을 펼치기로 했나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새삼스럽게 현재 여성의 인권은 어떻고 하는 사회적인 시선을 끌어오지 않겠다. 또 거기에서 나오는 카테터가 지금의 카테터의 어원이니 어쩌니 하니 과학적 이야기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금지된 사회에서 금지된 것을 오히려 부추기는데서 오는 희열. 나는 바로 그 희열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째서 작가는 도리어 위험한 시도를 했던 것일까. 물론 나는 제일 먼저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을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여성 작가가 여성에 대해서 쓴다는 어설픈 자기함정은 파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나 소설에서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룰 수 없는 갈망을 채움’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소설에서 끊임없이 모델을 찾고 그들이 부추기는 현실의 벽을 통감한다. 거기에서 그들이 부딪치는 벽이 하나씩 허물어질 때마다 어찌나 통쾌한지! 분명 여기에서도 주인공이 활약을 하거나 도리어 상대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거기에서 이기는 힘, 바로 이 두 가지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가장 큰 흐름은 답답한 사회와 거기에서 벌어지는 정말, 암흑기와 어울리는 음습한 사건들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하나씩 풀어짐에 따라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냐하면, 위에서 말했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인 교회와 과학 사회와 여성이라는 그럴싸한 모티프를 두 개나 차용하다 보니 도리어 큰 흐름을 방해하는 느낌을 받더라는 것이다. 중세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지만 그 맛은 오히려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고, 과학적인 지식과 면밀한 진행은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교회의 무지와 횡포를 더더욱 부각 시키는 조형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각기 하나씩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큰 것을 취하면 작은 것은 버려야 하는 법. 작가는 너무나 큰 토끼를 두 마리나 들고 있어서 뛰지는 못하고 허둥지둥 달리는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극히 개인적이지만 작가의 매력 없는 문체와 고루한 묘사는 읽는 맛을 좀 더 떨어뜨리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재미있기는 하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주고 또 덤으로 중세 지식까지 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주인공은 명민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아쉬운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 빠진 점만이 보여서가 아니라 빠진 점을 보완하면 더더욱 멋진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여름 밤에 읽기에는 재미있으나 어딘가 한 부분을 확실하게 채워주지 못하는 점이 있어 약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