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희곡선집 1 - 서푼짜리 오페라 브레히트 희곡선집 1
임한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동의자와 거부자>만을 읽음. 

사실 이 짧은 희곡에서 브레히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처음에 합창단이 하는 말에 압축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동의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동의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곧 비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왜? 동의의 대상인 사안을 합리적 이성에 의해 검토한 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그 사안에 동의할 것인지 아닐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사람들이 후세인에게 99%의 동의를 보낼 때,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에게 99%의 지지를 보낼 때, 한국 사람들이 유신헌법에 지지를 보낼 때 이러한 동의를 진정한 동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 비판적 사유 없는 동의는 진정한 동의가 아니다. 그러기에 이 희곡에서 골짜기에 던져지는 것에 동의하는 소년은 '동의'한 것이 아니며, 관습을 거부한 소년이야말로 진정 '동의'한 것이다. 

   다만 의문스러운 점. 이 짧은 희곡은 같으면서도 약간 다른 두 번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읽으면서 처음에는 브레히트가 이 두 변주를 대조함으로써 후자의 거부가 타당함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약간의 의문을 가진다. 두 번째, 소년이 거부할 때에 선생과 대학생들은 그렇게 급하지는 않은 학문을 배우러 가는 중이었다. 그러기에 소년을 버리고 가기보다는 병에 걸린 소년을 마을로 데려다주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며, 병에 걸린 자를 골짜기에 던지는 관습에 저항한 소년의 선택은 그의 말대로 합리적인 것이었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쳣 번째의 상황. 소년은 결국 자신을 골짜기에 던지는 데에 동의하고 그는 죽는다. 그런데 첫 번째의 경우에 대학생들과 선생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의 치료원인과 처방을 구하기 위해 도시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는 지체할 수 없는 사유이며 소년을 마을에 데려다 줄 여유는 대학생들과 선생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처방을 구하기 위해 소년의 생명을 버리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공익과 사익의 고전적인 대립구도. 브레히트가 진정 의문을 던지는 지점은 여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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