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로버트 달 / 동명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몇 년 전에 학교에서 누가 봐도 뻔히 정치꾼인 사람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사람만 모아놓은 서울대에서(나는 경제학부에 재학중이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도 정치 모리배에 지나지 않는 사람을 총학생회장으로, 그것도 대다수의 선거소에서 압도적인 1위로 당선시키다니. 한국에서 제일 똑똑한 놈들만 모아놓은 곳에서도 중우정이 발생하는데, 평균적인 시민이 공공선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의혹과 회의는 사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테네의 민주정체가 내렸던, 민주정체의 역사상 가장 최악의 결정 중 하나. 아테네의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사실 내가 투표하고 관찰하였던 총학생회 선거는 아테네 중우정의 반복에 불과하다. 사실 아테네의 민주정은 참여할 수 있었던 시민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으로부터 상당 부분 해방되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웅변과 수사, 논리학 등을 시민의 교양으로써 일정 수준 이상 체화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정 연령 이상의 일반 시민들에게 차등 없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현재의 민주주의체제보다 훨씬 더 엘리트주의적, 제한적인 정체에 가깝다. 다시 한번. 그렇게 잘 교육받았던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강요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들의 집단인 서울대학생들은 정치 모리배를 총학생회장으로 선출하는데, 지적 수준에 관계 없이 공동체의 성원 모두에게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는 민주주의는 더욱 더 중우정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민주주의는 과연 지지할 만한 정치체제란 말인가?
 
   로버트 달은 나의 이러한 의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지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달은 민주주의를 모든 성원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한(politically equal) 존재로 간주되는 정체로 정의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것은 모든 성원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함을 의미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지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현실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말은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니까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왜 좋은 제도인지를 논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주장은, 거칠게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다른 대안들보다는 그나마 더 낫다는 것이다. 즉 다른 대안적인 제도들은 민주주의만큼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하여 주지 못하며, 민주적 정부 하에서 개인은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인 평등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실증적 증거들은 민주적 정부를 가진 국가들은 상호간 전쟁을 하지 않는 데다가 비민주적 정부를 가진 국가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번영하는 경향이 있다.(pp.87-88)

   민주주의 대신에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독재와 군주정을 논외로 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제시되었던 대안은 수호자주의이다. 플라톤이 아테네의 민주정체가 중우정으로 타락하고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파산하는 것을 목도한 후 이른바 철인(哲人)정치를 그 대안으로 주장한 이래, 수호자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인식되어 왔다. 달의 정리에 의하면 수호자주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일상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통치할 충분한 능력이 없다. 2)수호자들(Guardians)의 이익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월한 것은 아니나, 수호자들이 일반선(the general good)과 이 일반선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에 관한 지식에 있어서 우월하다. 3)따라서 공공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호자들에게 통치를 맡겨야 한다.

   달은 이러한 수호자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수호자주의자들의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다음의 두 주장이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1)일반인들보다 공공선과 그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에 관한 우월한 지식을 가진 통치 엘리트들이 창출될 수 있다. 2)통치 엘리트들은 공공선의 추구에 헌신적이므로 시민은 안심하고 그들에게 통치권력을 맡길 수 있다. 달은 이 두 주장 모두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우선 “국가를 잘 통치하는 것은 엄격한 과학적 지식 그 이상을 요구한다.”(p.102) 가장 항해기술이 뛰어난 선장이 배를 가장 잘 모는 것 또는 가장 의술이 뛰어난 의사가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과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통치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추구할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훌륭한 목표들은 종종 상호간 갈등적이다. 예컨대 자유와 평등의 대립. “다른 목표의 일정 정도를 얻기 위해 하나의 목표, 가치, 목적을 얼마만큼 희생해야만 하는가를 결정함에 있어, 우리는 필연적으로 엄격한 과학적 지식이 제공할 수 있는 이상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p.103) 게다가 목표의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수단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 채택한 방법이 야기할 부작용의 불확실성.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과학적’ 또는 ‘전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거나, 아니면 그러한 집단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p.104) 게다가 지식을 가진 통치엘리트들이 창출될 수 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지식(knowledge)과 권력(power)은 별개의 문제이다.”(p.104) 즉 지식을 가진 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곧바로 그들이 공공선에 충실할 것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언제나 남용의 위험을 가지며, 액턴 경의 말대로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호자주의를 취하여 그들에게 모든 통치권력을 부여하는 것보다는 단지 그들의 조력을 받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이득이다.

   이러한 달의 반론은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 결과 “국가의 통치에 대한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권위를 담당해야만 할 정도로 통치에 대한 자격이 단정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면, 그렇다면 법을 준수해야 하는 모든 성인들보다 더 참여자격이 뛰어난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 모든 성인들은 국가통치의 민주적 과정에 참여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pp.108-109) 나는 달의 이러한 결론을 잠정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처칠의 말처럼 민주주의가 최악 중의 차악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했던 가장 유력한 대안이었던 수호자주의의 설득력 있는 주장을 읽을 때까지는 통치 엘리트들에게 견제되지 않는 권력을 주는 것보다는 견제 받는 권력을 위임하는 편이 나 자신과 공동체 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는 낫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중우정의 문제는? 그것은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모든 정치체제는 타락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독재나 폭군의 지배보다는 중우정이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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