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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기 전에는 천재작가, 달변가, 명랑코믹 만화의 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상상했다. 즐겨듣는 노래, 감동 받은 소설,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 무형의 아름다움에 치우치는 나는 그것들의 창조자에게는 그다지 많은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저 내 멋대로 상상할 뿐. 그래서 카페의 창문으로 레슬러 마스크를 쓴 한 남자의 실루엣을 보았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불경스럽게도 이것은 무슨 쇼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 시간 가까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대단한 변장가라는 생각이 들었고(날 이렇게 감쪽같이 속였으니), 더욱 천재적이라 생각할 수밖에!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비극의 희화화와 난데없는 플롯과 결말은 휠체어에 앉아서 글을 쓰며, 여행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이런 작가는 처음 본다) 그래서 현장 검증이나 답사 없는 직관과 상상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하는 말에 또 놀랄 수밖에.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이야!)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서부터 웃다가 먹먹해지는 대목을 만나면 박민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긴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기분으로 살아갈 생각'이라고 말하는 그의 근사한 초라함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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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와 아날로그

어렸을 때 명절이 되면 텔레비전에서는 늘 화려한 마술쇼를 보여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찾았던 놀이공원에서도, 어린이 뮤지컬에서도 마법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였다. 그런 마법, 매직은 마치 신데렐라의 동화 속에서 12시를 넘긴 호박마차처럼 21세기에는 그 효력을 상실한 듯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마술쇼를 관람하러 가지도, 마술사 앞에서 환호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10년 전 나의 여고시절을 풍미했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다시 보러 가면서도 너무 시시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해리포터는 아날로그적 동화의 요소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었다. 마법의 주문, 순간 이동, 지팡이의 사용 등 너무나 뻔하고 유치한 장치들이지만 오랜만에 긴장을 놓고 편히 관람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초등학교 입학하고 처음으로 신밧드의 모험을 탈 때처럼 여린 긴장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뻔한 장면에서 놀라고 탄성이 나오는 것은 인위적이지 않은 천진함 같은 것이랄까. 덕분에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는 회전목마와 바이킹 사이에서 적당한 유희를 즐기고 나온 어린애의 마음을 잠시 가질 수 있었다.

마법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들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 마법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워도 그 과정을 직접 하려고 한다. 검을 구하려는 해리가 그랬고, 요정을 묻어주려는 해리가 그랬다. 행운을 바랄 수도, 기적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결국에 그 마법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개인의 노력임을, 이런 착한 교훈을 주는 동화 같은 영화로 올 한해를 마무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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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어느 날 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브로콜리너마저가 출연했다. 

 '공인중개사'다운 덕원님의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전파를 타고 차가운 겨울 공기에 실려 나가던 그 날 밤 라디오를 듣는 각자들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브너를 대중들에게 최초로 각인시켰던 '앵콜요청금지'가 이제는 쇼케이스에서도 콘서트에서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진짜 앵콜요청금지 곡이 되어버린 지금, 그래서 더욱 불후의 곡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다.   

 올 겨울 최고의 한파가 들이친다는 내일 나는 철새처럼 조금은 따뜻한 남쪽을 향해 떠난다. 그리고 오늘 트위터에서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만났다. "그나마 삶이 맘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김연수-청춘의 문장들 중> "  

 불후의 노래와 글은 항상 외로운 영혼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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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1주

겨울이 오고 또 한 편의 미국 가족 드라마가 또 우리를 찾아왔다.   
골드 미스에서 정자 기증을 받고 싱글맘으로 거듭나는 미스(미세스?) 뉴요커를 그린 영화인데 전형적인 미국식 훈훈한 가족 드라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고, 용기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 보다는 귀찮은 것이 더 두려운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는 기증 받은 정자가 뒤바뀌면서 자신의 아들과 함께 돌아온 옛 친구이자 엑스 걸 프렌드와의 우정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뭐 어쨌든 해피엔드니까 잘 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국 이렇게 될 거면 왜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어야 됐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한 남자 때문에 한 여자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에! 조금 부아도 치밀었다. 좀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 등의 다른 버전의 결말을 기대해 보았어도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연말을 앞 둔 가족 영화라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 같다.  

각설하고 과거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져 버릴 줄 알았던 한 순간의 실수가 어엿한 인간의 실체를 하고 (그것도 자신과 닮은!) 자신의 인생에 끼여든 영화를 우리는 이미 몇 편 알고 있다. 최근작으로 뽑아보면 이나영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와 차태현의 '과속스캔들'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오히려 이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다시 사랑하게 되고, 다시 만나게 된다는 안일한 설정에서 벗어나 있어서 스위치 보다는 도전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드라마 보다 좋은 이유는 감춰둔 2세의 진실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한결같은 불륜 때문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2세의 등장으로 재산 다툼이 일어나거나, 같은 핏줄의 남매가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손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드라마 보다 한 편 한 편의 영화가 나에겐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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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2주

 

 

 

 

 

 

 




'처음'이라는 단어는 어떤 말과 결합할지라도 신선하고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첫 직장, 첫 월급 등의 단어가 안겨주는 시작이라는 설레임도 과히 나쁘지 않다. 첫사랑은 어떤가. 첫사랑을 돌이켜보면 문득 수줍어지기도, 어색해지기도, 그리고 지금의 내가 초라해지기도 한다. 첫사랑과 함께 가졌던 꿈과 희망의 부피는 첫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차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제 크기를 찾아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난 지금도 첫사랑을 주제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면 박완서 씨의 '그 남자네 집' 소설 속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박완서씨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인데, 잦은 세탁으로 옷 색깔이 바래질 정도로 그녀의 문학에서 자주 등장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야기 속 첫사랑이 아주 멋있지도, 그들의 사랑이 아주 로맨틱한 것도 아니었는데, 무지하고 바보 같고 아무 맛도 없을 것 같은 것이 또 오히려 첫사랑을 지극히 잘 표현한 것 같아서이다. 무채색 같은 사랑도 첫사랑이라 명명되는 순간 도리어 총천연색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은 아닌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에게나 소설 같은 첫사랑의 순간들이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요즘 내 또래의 세대는 첫사랑 찾는 것이 너무나 쉽고 우스워서 오히려 감추고 싶고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욕망을 지키기 어려운 때이다. 게다가 메일 계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십년 전 쯤의 아이러브스쿨이나 다모임 등의 인터넷사이트를 통해서 동창 찾기 등의 서비스를 통해 첫사랑과 이미 연락해 봤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 세대에게 '맘마미아'나 '레터스 투 줄리엣'과 같은 영화의 감동이 예전만큼 크지 못한 것 같다. 첫사랑을 찾는데 드는 노력이나 감동이 현실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김종욱 찾기'는 조금 특별하다. 첫사랑 찾기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앞서 소개한 두 영화와 달리 첫사랑과 다시 해피엔딩이 아닌 첫사랑과의 완전한 매듭을,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한 여자와 그녀에게 '끝장'을 보게 하는 용기를 주는 남자와의 이야기인데, 인도라는 배경과 공유, 임수정 두 배우가 썩 잘 어울린다.



우리는 종종 '과거' 혹은 '추억'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특히 그 사람이 이전 사랑의 그늘에 얽매인 내 연인이라면 부아가 치밀어 올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약점이라 여기고 화내기보다는 그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당당히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 두 사람이 가는 길은 영원히 현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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