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기 전에는 천재작가, 달변가, 명랑코믹 만화의 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상상했다. 즐겨듣는 노래, 감동 받은 소설,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 무형의 아름다움에 치우치는 나는 그것들의 창조자에게는 그다지 많은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저 내 멋대로 상상할 뿐. 그래서 카페의 창문으로 레슬러 마스크를 쓴 한 남자의 실루엣을 보았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불경스럽게도 이것은 무슨 쇼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 시간 가까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대단한 변장가라는 생각이 들었고(날 이렇게 감쪽같이 속였으니), 더욱 천재적이라 생각할 수밖에!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비극의 희화화와 난데없는 플롯과 결말은 휠체어에 앉아서 글을 쓰며, 여행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이런 작가는 처음 본다) 그래서 현장 검증이나 답사 없는 직관과 상상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하는 말에 또 놀랄 수밖에.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이야!)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서부터 웃다가 먹먹해지는 대목을 만나면 박민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긴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기분으로 살아갈 생각'이라고 말하는 그의 근사한 초라함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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