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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야전과 영원이다. 말 그대로 이것은 "야전과 영원"을 혹은 "영원한 야전"을 논한 책이다. 미셸 푸코, 자크 라캉, 피에르, 로장드르 이 세 사람의 텍스트를 나름대로 철저하게 읽고 정성스레 재단해 세로실 가로실을 풀어 묵묵히 다시짜는 작업을 꾸준히 한 결과, 지금의 필자로서는 야전과 영원‘이라고밖에 명명할수 없는 시공이 출현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현현이었다.
야전과 영원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책의 이로는 통일된 시점" "필연성" "전체성"을 보장하는 "끝(종언)"을 무슨 일이 있어도 부정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밤"의 "투쟁"에 바치는 책이므로, 여기에 끝은 없다. 시계는 어둡고 도통 믿음직스럽지 않다. 그것의 승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쓰는 일의 우연성이야말로,
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도박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야전과 영원』이라는 이름으로불리는 이 책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다. "영원한 야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통 일된 시점 따위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영원한 야전이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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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성 - 현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 21인
매켄지 와크 지음, 한정훈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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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 우리 앞에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놓여 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지식의 상품화 외의 길을 통해 다른 부분의 신진대사에 관한 다른 종류의 지식이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과제 말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모든 종류의 신진대사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추론함으로써 더 나은 것, 즉 생존 가능한 신진대사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철학에 의해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과제로, 불을 다루는 방법도 모르면서 불을 훔치려는 프로메테우스와도 같다. 옛 텍스트에 대한 신앙과 같은 숭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마르크스의 텍스트를숭배하는 것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마르크스 역시 당대의 산물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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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테리 이글턴 지음, 김창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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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도 아마 대개는 다음과 같은 막연한 생각을지니고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사회의 질서와 안정에 가치를 둔다. 그리고 현대 문학 이론가들이 ‘텍스트의 생산성‘으로 간주할 만한 유별난 수사법의작품들이다. 문제는 이런 셰익스피어의 두 가지 특성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안정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신념을 안정의 구성 요소인 바로 그 언어가 위태롭게 한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글쓰기 행위는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일치하지 않는 인식론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셰익스피어를 대단히난처하게 만드는 딜레마이다. 셰익스피어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세우는 데 작품의 많은 부분을 바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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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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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압축한 책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지하실에 스스로를 감금한 한 남자의 끝없는 노동과 고뇌
‘절망적이고도 시끄러운 세계의 고독 속에서 1실존적 해방을 꿈꾼 어느 늙은 몽상가의 불꽃같은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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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대학의 조센징 -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정종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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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식민지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도부 행정사법 및 식산은행과 관립학교 등 식민지 국가 기구의각 영역에서 그들은 제국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유용한 부품으로작동했다.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적 요소 때문에 제국대학이라는 지식 제도와 관련된 근대 한국의 경험을 도덕적인 이분법으로 모두 ‘악‘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적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한국 근현대의 지식과 문화, 제도는 솜씨 좋은 외과의사가 좋은 세포만을 남겨두고 암 덩어리를 도려내듯, ‘일본적인 것‘ 혹은 ‘미국적인 것을 발라내면 ‘민족적인 것‘만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러한 본질주의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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