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회사상속을 거부한 배스킨라빈스’ 외아들 존라빈스

우리 나라에서는 왜 이런 정신을 가진 유산자 계급을 보기 힘든걸까요?

************************************************************

‘배스킨라빈스’ 외아들 존라빈스-식탁위의 혁명가

부잣집 아들의 편안한 삶은 부끄러워"牛 매출 12억달러 회사 상속 거부
자신의 직접 직은 태양열 통나무집서 생활



 

 

 

 

 

 

 



세밀하기로 이름난 미국 지도에도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길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미항(美港) 몬터레이(Monterrey) 방향으로 2시간을 달린 뒤였다. 소쿠웰(Soquel) 드라이브 표지판을 따라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에는 그가 직접 이메일로 보내온 길안내를 따라야 했다.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좁다란 전나무 숲길과 고갯마루, 그리고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나무 표지판을 몇 차례 따라가다 보니 자그마한 2층 통나무집이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냈다.

유제품과 육식의 문제점을 고발하며 채식만을 고집하는 환경운동가 존 라빈스(John Robbins·56)의 집이다. 세계최대의 아이스크림 회사로 매출액만 12억2000만달러(2001년)에 달하는 ‘배스킨 라빈스 31’ 창업자의 외아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소박하다.

“나는 아이스크림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내 아버지와 삼촌은 전세계에 매장을 수천 곳이나 둔 아이스크림 제국을 건설했죠. 아버지는 당연히 내가 그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했죠. 하지만 나는 그 엄청난 부를 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서른 평이나 될까. 그가 직접 디자인해 만들었다는 이 통나무집은 지붕에 태양열 집전판이 붙어있다. 화석연료에 의한 지구 오염을 막기 위한 작은 실천이다.

또 이 자그마한 공간은 그와 그의 아들 오션(Ocean)이 주도하고 있는 환경운동단체 ‘어스세이브’(Earthsave·www.earthsave.org)와 ‘YES’(Youth for Environmental Sanity·www. yesworld.org)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89년 창립 이래 미국에 40여곳에 지부를 가진 이 비영리단체는 “많은 사람들이 식물 위주의 식단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구 위 모든 생물에 동정심을 가지도록 서로 돕고 살아보자”는 취지로 교육과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그를 만나러 온 동양의 기자에게 그는 자신의 청년시절을 담담히 떠올린다.

“금전적으로 큰 부자가 되겠다는 ‘아메리칸 드림’대신 내게는 더 소중한 꿈이 있었어요. 한 줄로 요약한다면 생명의 존엄에 기초하여 모든 생물이 공존을 이루려는 꿈이죠. ”

그가 이 결심을 하게 된 데는 두 가지의 개인적인 계기가 있다. 아이스크림을 달고 살았던 아버지와 삼촌은 젊은 시절부터 비만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고, 삼촌은 50대 초반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스크림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며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두 번째 계기로 말을 옮긴다. 대학생 때 함께 일했던 삶의 스승,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의 면전에서 암살당했던 68년의 악몽이다.

찻잔을 잡은 그의 손가락이 잠깐 멈칫했다. “부잣집 외아들로 편한 삶을 산다는 게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스크림의 서른두 번째 맛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게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

"부잣집 아들의 편안한 삶은 부끄러워"
牛 매출 12억달러 회사 상속 거부
자신의 직접 직은 태양열 통나무집서 생활


하버드, 예일 등 장학생제의 사양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의 장학생 제의를 거부하고, “인종, 계급, 신앙이 다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주립대학인 U.C. 버클리에 들어갔던 청년 존 로빈스는 그 이후 본격적인 ‘채식운동’ ‘환경운동’에 뛰어든다.

69년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떠나 갓 결혼한 아내 디오와 함께 브리티시 컬럼비아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으로 이주했고, “한 칸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10년 동안 채소를 스스로 길러 먹으며 살았다”고 했다.

“그 동안 모두 합쳐 채 1000달러가 못 되는 돈을 사용할 만큼 가난했지만, 사랑만큼은 충만했다”고 얘기할 때 존의 눈은 투명했다.

지금까지 그는 두 권의 책을 썼다. 섬 생활을 하면서 펴낸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Diet for a new America·아름드리 미디어)와 그 이후 10여년의 경험과 지식을 다시 녹여낸 ‘음식혁명’(The Food revolution·시공사)이다.



 

 

 

 

베이지 색 소파에 묻혀 있던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에서 사진 몇 장을 들고 돌아온다.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공간에 갇혀 있는 송아지가 겁에 질린 눈망울로 쳐다보고 있다. 레스토랑의 송아지고기 메뉴를 위해 사육되는 슬픈 짐승의 현실이다.

그는 “한 발짝도 뗄 수가 없고 누울 수도 없는 공간에서 목에는 굴레를 쓴 채 도살당할 때까지 4개월간 갇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 장을 펼치니 수만 마리는 될 것 같은 닭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존이 숫자를 들이댄다. “미국의 양계업계는 18인치×20인치(45.72cm×50.8cm)크기의 닭장 하나에 7~8마리씩 집어넣는 것을 당연시한다”고 했다. 이렇게 비좁은 공간에 붙어 있으니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부리로 상대방을 쪼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제품, 육식문제 고발
“그래서 양계업자들이 어떤 방법을 생각해냈느냐”고 물었다. 존의 목울대가 부풀었다. “살아있는 닭의 부리를 3분의 1 가량 잘라 버려요. 발톱과 갈고리도 잘라냅니다. ” 욕구불만과 스트레스로 가득찬 것도 모자라 부리까지 잘린 닭을 우리는 먹고 있는 것이다. 비록 모든 가축이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존은 철저한 채식주의자다. 그는 자신을 비건(Vegan)이라고 표현했다. 보통 채식주의자 (Vegetarian)들은 치즈나 우유 등 유제품과 달걀은 먹지만, 비건은 그나마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

존은 창 바깥을 손으로 가리켰다. 변덕스런 캘리포니아의 하늘이 빗방울을 뿌려댔지만, 집 밖은 온통 초록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가 먹을 채소 농사를 직접 지어요.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재배합니다. 물론 모든 걸 다 기를 수는 없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장터를 열죠. 우리는 그걸 ‘농부의 시장(farmer’s market)’이라 부릅니다. ” 존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라며 뜸을 들이더니 “정말 맛이 기가 막히다”고 자랑했다.



아이스크림도 안먹어
“지금 미국 수퍼마켓에 가면 3분의 2가 유전자 조작된 식품입니다. 딱지가 붙어있지 않으니 사람들은 알지도 못한 채 그걸 사 먹게 되죠. 몸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 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 그는 “정부가 패스트푸드 회사나, 유가공 식품회사 등에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 유기농법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를 만나고 나오는 길 근처 한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웨이터는 캘리포니아 최고의 맛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며 송아지 고기(veal)를 추천했다. 존의 얼굴이 ‘50cm 감옥’ 안에서 사육당하는 송아지의 슬픈 눈망울과 겹쳐 떠올랐다. 기다리는 웨이터에게 고개를 들었다. “호밀빵과 아보카도 샐러드, 그리고 오렌지 주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