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의 둘째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전날 산 사발면으로 배를 채웠다. 첫번째 목적지는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제주민속촌박물관이었다. 이 곳에서 '대장금' 촬영을 했다고 한다. 옛날 제주도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산굼부리 분화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성읍민속마을을 거쳐 갔는데 그 곳의 사람들은 민속촌에서 보았던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일년에 삼십만원의 지원금 받는다고 한다. 물론 안은 현대식으로 많이 개조해서 살고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신기했고 옛 것을 지키고 있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도착한 곳, 산굼부리는 백록담, 성산일출봉과 함께 손꼽히는 제주도 분화구 중 하나로, 깊이가 1백여 미터가 넘고 지름이 600~650미터, 면적이 9만7천평으로 한라산 백록담보다 조금 더 크고 깊다고 한다. 산굼부리란 산에 생긴 구멍(굼)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 사투리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폭력공기생화산으로 봉우리가 거의 발달되지 않은 화산이기도 하다 한다. 폭력공기생화산은 밑에서 폭발하여 폭발물이 쌓이지 않고 몽땅 분출되어버려 구멍만 뻥 뚫린 분화구라 한다. 솔직히 깊은 구멍빼고는 별로 볼 것은 없었다. 단지 좀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향한 곳은 비자림으로 샬리가 추천해 준 곳이다. 산림욕과 산책하기엔 그만이었다. 옛날엔 관리를 두어 그 곳을 관리를 하였다고 하는데 각 나무에다 모두 번호를 매겨서 지금도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옛관리가 사용했던 우물은 지금은 쉴 수 있는 정각을 만들어 놓았다. 다음의 목적진 만장굴이었다. 우선 점심으로 산채 비빔밥을 먹었다.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방문했을 적에도 만장굴은 왔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굴이였을지도 모르지만... 평일이라서 그런지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고 해서 난 개인적으로 왕복 2킬로미터의 긴 만장굴이 너무도 무섭게 느껴졌다. 눈이 나쁜데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바닥은 마치 뱀들이 한번 흞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간신히 2킬로미터를 다녀왔다. 다음은 성산일출봉이 관광장소였다. 이 곳 역시 수학여행때 왔던 기억이 난다. 그땐 정상까진 올라가지 않았지만 요번엔 올라갔다.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였지만 날씨가 무지 더운 관계로 힘이 들었다. 엄마께서도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그래도 정상까지 우리는 다녀왔다. 정상에서의 아래쪽 광경은 정말 너무도 아름다웠다. 날씨가 좋아서 더더욱 그랬다. 다음은 섭지코지였다. 기사 아저씨께서는 별로 볼 것이 없을 것이라고 도착 전부터 실망을 주셨지만 도착한 섭지코지는 생각 외로 길도 잘 만들어 놓았고 유채꽃은 만발했으며 바다의 바위또한 장관이었다. 엄마 말씀대로 안 왔으면 서운했을 것 같았다. 이 곳 역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올인', '태양의 남쪽'이 촬영되었던 장소라고 한다. 섭지코지를 마지막 코스로 둘째날 관광은 마무리가 되었다. 참,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감귤농장에 잠시 들러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잠시 그 곳에 들르는데도 인당 천오백원의 방문비를 내야 했다. 마음이 좀 씁쓸했다. 하지만 주인 아저씨께서 감귤을 몇개 봉지에 넣어 주셨다. 그걸로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런데 철이 아니라 그런지 맛이 영 형편없었다. 일찍 숙소에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엄마와 난 회를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이미 들어오기 전에 봐 두었기 때문에 그리 횟집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집을 들어가느냐가 문제였다. 멀리 '전주횟집'이라고 보였다. 음식은 전라도라고 하지 않은가. 우리 그 곳으로 정하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맛이 없는 집은 아닌 듯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듬 회를 시켜서 배 터지게 먹었다. 스끼다시도 잘 나오고 맛도 좋았다. 갈치회도 태어나 처음 먹었다.
이렇게 오늘도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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