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중섭 평전
고은 지음 / 향연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제주도에 가면 이중섭 미술관이 있다.
실제로 이중섭의 원작은 거의 없고 대부분 복사본이지만
2층에 따로 전시되어 있는 이중섭 친구들의 그림이 꽤나 볼만하고
무엇보다 미술관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제주바다와 좌우를 나란히 하고 있는 두개의 섬.
이중섭이 보고 느끼고 숨쉰 가장 행복한 시절의 제주 바다가 그대로 보인다.
다행이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리움에서 열린 '이중섭 드로잉전'을 먼저 봤다.
그림을 먼저 보고 도슨트 프로그램에서 설명을 들었으며,
제주도 이중섭 미술관에서 미술관 지기의 설명과 편지글을 먼저보고.
그리고 나서 고은의 이중섭 평전을 읽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책으로만 만나서 고은의 생각대로 이중섭을 그리기 전에,
내 눈과 마음에 이중섭의 그림을 먼저 담아둘 수 있었고,
각자가 다르게 말하는 이중섭을 보았다.
그리고나서야 내 안에서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을 솎아 낼 수 있었다.
고은의 이중섭 평전은 그런 이중섭의 발자취를 쫓은 되밟기 소설이다.
그런데 시인이라서인지 문장이 시적이다. 시적이라는 것은 소설체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문장에 익숙해지려면 시를 읽듯이 다시 곱씹어보고 의미를 되새겨야 겨우 들어온다.
그래도 재미있다. 고은이 발견한 이중섭.
그리고 다시 든 생각은 다른 책을 더 읽어보아야겠다는 거다.
이중섭이 쓴 글들. 그리고 그의 그림들을 더 보고.
각각의 그림들을 다시 조각조각 맞춰보고 싶다.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나오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가다보면 인간 이중섭의 진실에 어느 정도는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의 소는 소가 아니라 소의 종교였다. 많은 화가들이 그의 아류로 소를 그렸으나 그것은 소와 소의 진정한 작가 사이를 헤매는 모방자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섭이 곧 소였기 때문이다. "(32p)
강임룡은 말하고 있었다. " 그분은 자세히 바라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술을 마시고 내가 폭언을 했어요. 이 피난민 새끼!라고. 그러나 그는 투명한 소주가 반쯤 남아 있는 술잔을 아주 따뜻하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한참 뒤에 그분은 조용하게 웃었습니다. 나는 그뒤로 그분이 두려워졌습니다. 내가 입은 옷이 너무 비싼 옷이어서 그분의 남루한 옷을 생각하고 갈기갈기 찢어버렸스니다.
1주기의 1956년 9월에, 그를 따라서 죽기 전의 젊은 조각가 차근호가
고인의 가족화를 새긴 1급의 묘비가 오석으로 만들어졌다.
비석에는 '화백 이중섭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중섭은 죽었다.
그리고 중섭의 그림은 세상에 남아서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