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e de Beauvoir : La Femme Rompre
불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원제는 <위기의 여자>가 아니라 <좌절한 여자> 또는 <지처버린 여자>라고 한다.
위기의 여자라고 하면 정말 위기에 처한 상황이 느껴지면서 과연 이 주인공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처나갈지가 궁금해진다. 의지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처버린 여자 또는 좌절한 여자의 경우는 여인의 의지보다는 절망이, 결과가, 상심이 느껴질 뿐이다. 따라서 이 제목은 <위기의 여자>가 되면서 원제가 가지고 있었던 좌절과 상실의 분위기를 많이 앗아간거 같기도 하다.
행복하게 두 딸을 키워서 시집까지 보내고 행복하게 살던 모니크는 남편 모리스의 외도를 눈치채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남편은 뉘우치기는 커녕 노엘리와의 바람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두 여인을 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온 세상의 행복이 다 자기것인 줄로만 알았던 모니크는 혼란스러워하고, 남편이 다시 돌아오겠거니 생각하지만, 남편은 점점 더 다른 여인 노엘리에게 빠져간다. 그녀에가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솔직히 이 책은 왠지 제목만 봐도 내용이 퍽이나 짐작이 가는 책이다. 그리고 내용도 역시나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척이나 지겨웠다. 다만 이 책이 발표되었을 1967년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책이 어떤 파장을 가지고 왔는지도
"내가 저지른 가장 중대한 잘못은 시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나는 이상적인 남편의 이상적인 아내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인형의 집의 노라 생각이 나면서 이 여인은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 싶기도 하고. 자기 탓만하는 모니크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니크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관계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절대로. 시간과 생명을 정지시킨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움직이라라는 것을. 그러면 문은 천천히 열릴 것이며, 나는 그 문 뒤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미래이다. 미래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다. 서서히, 가차없이 . 나는 지금 문지방에 서 있다. 내 앞ㅇ는 이 문과 그 뒤에서 엿보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두렵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구원을 청할 수는 없다. 나는 두렵다. "
모니크는 두려워 하지만 결국 마지막 장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직시하려고 결심한다. 노라가 집을 나갔듯이 모니크는 자신의 갖혀 있던 행복과 사랑이라는 허울을 벗고 현실을 마주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모니크는 <좌절한 여자>에서 <위기의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한글 번안이 참 적절하다고 느껴졌다. 좌절해서 절망하고 죽어버리는 여자가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의지를 발견하는 여자. 위기를 깨닫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여자. 시몬느 보부아르는 여성성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