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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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 여행길에는 일본에 흠뻑빠지기로 마음먹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일본음악을 듣고, 여행 길동무로 가지고 간 것도 하루키 단편집<빵가게 재습격>이었다.

 도쿄의 까페에서, 찬기운이 스쳐가는 호텔방에서, 공항 리무진을 기다리면서,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면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틈틈히 읽은 단편들은 평범해보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일본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만같은 느낌이었다.

 어느날 코끼리가 사라진다거나. 너무 배가고파 빵가게를 습격하는 부부, 잡지에서 발견한 어느날 와서 어느날 사라졌던 나와 함께 살았던 쌍둥이 자매. 등등. 다소 의외의 설정 속에서도 내가 발견한 것은. 나도 언젠가 한 번 이상 느껴본 적이 있는, 그리고 누구나 문득 삶의 한 가운데에 마주치곤 하는 사람들의 상실감, 외로움, 허전함, 쓸쓸함. 그리고 사랑받고 싶음.이었다.

 그건.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어쩌면 미국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일 거다. 그런 감정의 알맹이를 감감적이고 참신한 하루키문법으로 잘 코팅해서 어디서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작가는..

 "그러나 어쩌면 나는 이 새로운 세계에도 조금씩 익숙해져 갈 것이다. 시간은 걸릴 지 모르겠지만, 차츰 뼈와 살을 이 무겁고 습한 우주의 단층 속에 파고들게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스스로를 동화시켜 간다. 아무리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떠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머리맡의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침대위에서 천천히 몸을 폈다. 꿈이 없는 잠 속으로 의식이 침몰해 갔다. 비가 창을 두드리고, 어두운 해류가 잊혀진 산맥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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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4
아기 타다시 지음, 오키모토 슈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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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이 뭘까? 일단 이 이야기는 저명한 와인 평론가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인 와인을 알아내는자만이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유언으로 시작된다. 평론가이면서도 자신에게는 와인에 대해서 전혀 알려주지 않았던 아버지. 경쟁자는 젊은나이임에도 정확한 미각과 평론으로 주목받고 있는 와인 평론가.

우연한 기회에 맥주회사의 와인사업부로 발령이 나면서 주인공은 주위의 도움으로 와인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간다. 그리고 직접 와인을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서 기본기를 닦는 연습을 시켰다는 것도 알게된다. 매번 대결을 풀어가는 상황설정과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와인애호가들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둘 다 만족시키는 책이다. 소개되는 와인도 정말 흥미진진하다....

마침 지난 주에 일본에 갈 기회가 있어서 퀸의 노래가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샤토 몽페라를 사려고 돌아다녀봤는데. 일본에서 신의 물방울이 나오고나서 품절됐다는 소문만 들릴 뿐이었다. 유명 백화점의 지하1층 와인샵에서 전부 품절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예전에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을 보면 스시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말하면서 아무도 없는 설산에서 처음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것같다고 했었는데, 와인을 마시면 눈앞에 꽃밭이 펼쳐지고, 아름다운 여인이 고개를 살포시 돌리고 있는 모습이 영감처럼 떠올린다는 모습. 만화다운 과장이 있지만...정말 어떤 맛일까?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과 상상을 연결시키는 끈. 그게 만화아닐까 싶다.

와인과 만화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장해도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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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보물
가토 히로미 지음,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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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왠지 뻔한 이야기 같아서 싫었다.

그렇게 두고두고 있다가 오늘 책을 읽고 나서는 엉엉 울고 말았다.

이 책은 다운증후군의 합병증인 심장의 이상으로 1년밖에 못 살거란 선고를 받고 태어난 아키유키가 너무도 씩씩하고 밝게 6년을 살다간 삶의 기록이다. 글도 진솔하지만 무어보다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키유키의 사진들이 너무 아름답다.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진이면서도 이렇게 보석같은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네가 가진 능력만큼만 살면돼."라고 말하면서 마음을다독이고 6년 동안 아낌없는 사랑을 준 엄마 아빠. 그리고 병원에 가서도 밝게 웃고, 누굽다도 더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아키유키의 모습이 진정으로 아름다웠다.

"어느사이 아키유키는 부모 외에도 누군가에게 힘을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아키유키의 맑은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유독 나에게만 고난이 오는 것 같은 분들. 삶이 지겹다고 느껴지는 분들께 꼭 권하고 싶다. 짧은 기간이지만 당신보다 강한 의지로 세상을아름답게 만들고 열심히 살아갔던 한 아이의 삶을 느껴보시라고 나누고 싶다. "사람의 행복은 생명의 길이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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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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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정사의 끝>

책 읽는 취미가 같다.

마흔 살 시후미와 스무 살 토오루는 취미가 같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시후미와의 거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클래식 음악과 빌리 조엘도, 토오루는 시후미의 영향을 받아 듣기 시작했다. 네 권의 사진집도.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내세울 만큼 행복하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 행복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조세프 케세르 <라이온>

 

"베갯머리에는 죠세프 케세르의 <라이온>이 읽다만 그대로 놓여있다. <라이온>도 시후미가 좋다고 한 책이다. 토오루에게 있어서 세계는 온통 시후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독해 보이고 싶은 십대랑은 다르니까, 난 이제 혼자이고 싶지는 않아."

 

엔도 슈샤쿠 <침묵><백인><사무라이>

 

"엔도 슈샤쿠 작품 읽었어요."

토오루는 <침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백인>에 대해. 시후미는 약간 고개를 갸웃하고, 식사하는 손은 쉼없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무척 재밌었어요. 문체가 투철한 작가던데요. 지금은 <사무라이>를 읽고 있어요."

 

"버리는 거은 이쪽이다, 라고 정해 놓았다. 그러나, 버리는 거은 언제나 아픔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코우지는 자기 방바닥에 드러누워, 열린 창문으로 스며 들어오느 주택가 특유의 점심 냄새를 성가시게 느꼈다."

 

로렌스 G 더렐 <주스틴><클레아>(아마 저스틴과 클레어 겠지?)

 "토오루는 자기 방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로렌스 G 더렐의 작품을 읽고 있다<쥬스틴>으로 시작되어 <클레아>에 이르는 알렉산드리아 4중주는, 시후미가 예전에 애독한 것이라고 했다. 시후미가 읽은 책은 모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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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루와 코우지는 친구.

둘 다 연상의 여인과 불륜관계.

토오루는 사후미를 사랑하고,

코우지는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연상의 여인들을 감정 없이 만난다.

 

책을 읽으면서 불륜이 연상되기 보다는

왠지 허무하고 마음 둘 데 없이 헤메는

도쿄에 사는 스무살 아이들의 삶이 정말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내가 유일하게 공유하는 게 책 읽는 거라면,

그녀가 미친듯이 보고 싶은 만큼 미친듯이 그녀가 읽었던 책들

좋아한 책들을 탐독하고 싶은 마음일꺼다.

 

그리고 그때같으면 정말

또 지금이라면

책 읽는 취미가 같다는 것만이 유일하다는 것만으로도

바로 사랑에 빠져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하여튼, 이 책을 읽고 나면 왜 주인공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지 알게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과 문체에 흠뻑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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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1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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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홍석중의 황진이를 읽으면서는 우리 말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할아버지 벽초의 피를 타고난 이 답게 숨도쉬지 못할만큼 짜임새 있게 전개되는 황진이에 폭 빠져 지냈는데, 처음 전경린의 황진이를 읽었을 때는 그만큼의 강렬함이나 신선함이 없었다.

 

같은 소재로 썼지만 호홉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싶었다.

1권을 다 읽고 2권을 시작했을때도 나는 홍석중의 황진이를 더 높게 치고 있었다.

 

그런데 2권을 다 읽을 무렵 전경린의 황진이가 가진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섣부르게 누가 더 잘썼고 못썼다는 잣대를 내린 내가 참 부끄러웠다.

 

 

두 소설은 주인공을 작가의 상상력대로 자유롭게 그렸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화담선생이나, 지족선사 등 등장 인물도 비슷하지만,

그들과 황진이와의 관계. 또 황진이라는 인물은 두 작가의 개성이 담뿍 묻어날 정도로 다르다.

 

전경린의 황진이는 여성으로서 살아 움직이는 강인하지만 여린 영혼이다.

홍석중의 황진이가 강인하고 올 곧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여인었다면,

전경린의 황진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더 고뇌하고 자아를 찾아 헤메었던

인간으로서의 황진이의 면모가 강하다.

 

전경린의 황진이가 더 자유롭고 노골적이고 야하다.

그런데 그 야함이 외설적이거나 속되 보이지가 않고

한 여인이 자아를 찾아가는 혹은 자아를 넘어서 무아로 가는 구도의 길처럼 보이니,

나는 아마도 진정 이 책을 읽고 인간 황진이를 만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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