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 전10권 세트 - 반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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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20년에 걸쳐 쓰고나서 글 감옥 탈출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20년의 노고를 2달만에 리뷰까지 완료했다. 좋은 음식을 조금씩 아껴 먹듯이 의미를 되새기며 읽었으나 했는데 너무 성급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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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0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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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공들이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생산계장하고 작업반장이 여공을 강간하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현실은 아니다. 생산계장이나 작업반장이 그렇게 높은 직급을 가진 것도 아니고 똑 같은 근로자인데 짐승 같은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묵인과 비호 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고 글로벌 100대기업인 00전자는 노동조합이 없다. 얼마 전에 만들어 기긴 했어도 가입 율이 손에 꼽을 정도의 인원이라고 한다. 00전자에서 노조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직원들은 100% 만족을 하고 있던지 아니면 00전자에서 조직적으로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자라면 근로자로써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후자라면 근로자로서 슬픈 일이다.

 

임채옥의 남편이 간암으로 사망하고 백일탈상이 끝나자 유일민은 임채옥에게 청혼을 하자, 제주도에 가서 과거는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하기로 약속하고 임채옥의 아이들과 함께 유일민의 품으로 들어온다. 결혼하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동생네 부부에게 넘겨주고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때 수사기관에서 노조설립 주동자로 유일표를 수배하자 비구니로 있는 여동생 선희에게 위탁했다가 발각될 염려가 있어 운영스님과 동행하며 이목을 피해 다니다가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 10.26이 일어 나자 집으로 복귀하여 친구들과 함께 딸의 돌 잔치를 한다.

박영자는 아버지 회사의 사우디 현장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남편에게 셋째 오빠인 박준서와 동행을 요구하였다. 이에 원병균은 거부하다가 결국 설득 당해 사우디로 향하는데 도착해서 폭동의 원인을 살펴보니 단순하게 관리직과 현장직과의 임금 차별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관리직하고 현장직 식당과 숙소를 분리해서 음식과 숙박시설을 차별을 하였고, 관리직원들이 현장직원들을 너무 심하게 대하는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회사 측에서는 중정요원까지 파견하여 탄압하고 처벌하였다. 물론 학벌과 정규직, 비 정규직 간의 임금 차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식사와 잠자리까지 차별한다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 00중공업이라는 돈 잘 버는 대기업이 있는데 여기도 정규직과 비 정규직 식당이 다르고, 출입문도 다르고, 편의시설도 다르다고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규직 직원들은 생활이 안정되다 보니 집에 따뜻한 샤워시설도 있고 식사도 비 정규직 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이런 차별을 한다는 것은 귀족 노조의 힘이 아닌가 싶다.

나복남은 자신의 손가락 값으로 받은 돈으로 식품점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나윤자는 애를 낳다가 죽고, 배상집은 신문사의 청탁으로 독일 사회복지제도를 그대로 썼다가 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학교의 학생조직과 동태를 주시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풀려나고 김선오는 중정의 검사로 들어 가려고 했으나 출신지역이 전라도 인 바람에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고위직 공무원이나 군 장성 중 전라도 출신은 거의 전무하다. 사상이 불순해서 그런지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순전히 지역감정 때문인지 인사조치한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한인곤은 친일문학론을 쓴 작가 임종국을 만나 이광수나 최남선이 친일을 했으며 유진오와 박순천도 친일 경력을 가졌고 대학 총장이나 설립자인 연대 백낙준, 이대 김활란, 고대 유진오, 중앙대 임영신, 서울여대 고황경, 상명여대 배상명, 성신여대 이숙종등 태반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에 임종국은 한인곤에게 광복군 출신으로 친일파 세력들에게 평생 어떻게 당해 왔는지 책을 써보라는 권유에 이상재와 원병균의 신진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로 했는데 계엄군의 검열에 걸려 결국 책을 낼 수가 없었다.  

노동자는 기업의 착취대상이 아닌 협력 대상이다. 기업의 오너들이 대부분 자본을 기업에 투입한다. 대신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한다. 여기서 생긴 이윤은 공평하게 분배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9:1 내지는 8:2 정도로 압도적으로 자본 쪽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노동과 자본은 기차의 레일이라고 보면 된다. 기업이라는 기차가 달리는데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기업은 결국 엎어지는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균형이 이루어 지지 않는 자본주의는 천민 자본주의이며 대안은 노동자들의 힘을 모아 노조를 결성하여 자본의 힘과 대등한 힘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며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되어 진압에 나선다. 1979 10.26 박정희가 암살된 후 전두환이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대통령 시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하면서 군부의 권력을 장악하고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독재를 시작하려 하자 1980 5.18 전남, 광주에서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여 민주화 운동을 벌이자 계엄군은 모든 시외 통신을 끊어 광주를 고립시킨 후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시민에게 발포를 하고 진압하였다. 하지만 1988 6공화국 출범 직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하고 1995 5.18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59년 이승만 정권의 제 1공화국에서부터 1987년 전두환 정권까지이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가 배경이고 우리나라 치욕 기라고 보면 될 것 같고 태백산맥은 한국전쟁이 배경이고 동족간의 이념 갈등 기라고 보면 되고 한강은 1959년부터 1987년까지로 우리나라 경제 과도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단순하게 흐름만 아는 것도 중요하고 정독하며 하나하나의 사건을 공부해 가는 것도 근대사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 때 흐름만 알아가는 독서를 했다면 리뷰를 꼼꼼하게 쓰면서 보완하면 되고 정독하였다면 리뷰를 가볍게 써 시간을 헤지하면 될 것 같다. 지은이가 글 감옥 탈출이란 표현을 했는데 마지막 리뷰까지 쓰는데 꼬박 2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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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9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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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외채상환 능력과 원유를 사들일 외화가 부족하여 박정희는 외화를 조달할 목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건설 공사 여부를 조사시킨다. 이에 조사단은 이슬람국가로 매춘사업과 술이 없고, 건설 시 필요한 물이 부족하고 사방이 모래뿐이어서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보고 하였다. 이 보고로 박정희는 사우디 공사를 포기하려 하였는데 옆에 있던 정주영이 술과 여자가 없으면 노동자들이 번 돈을 탕진하지 않고 모두 국내로 송금하니 근로자와 국가 모두 부자가 되고, 모래는 건설자재가 되니 자재 수급이 용이하고, 물 부족은 바닷물을 끌어다 담수를 만들면 된다고 보고하여 사우디아라비아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문태복은 월남에 갔다 왔지만 노름 때문에 돈을 탕진하고 택시 운전을 하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신혼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노동자로 가게 된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며 엄청난 건설 붐과 시멘트 시대가 열렸다. 이 당시 새마을 노래가 생각난다. ‘새벽종이 울렸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합시다

 

강기수가 아들에게 사업하면서 공무원 대하는 TIP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하여 발췌하였다. 관공서 사람들에게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라. 특히 실무자들에게 건수 마다 돈을 주는 것이 좋고, 돈을 줄 때 아무도 모르게 주고, 그 비밀을 꼭 지켜라. 그리고 그들과 술을 마시지 말고, 값비싼 술은 절대 삼가 하라. 이유는 술을 마시면 실수하기 쉽고 아무리 호화판으로 술을 사줘도 현찰에 비해 고마워하지도 않고 효과도 별로 없다. 돈은 한꺼번에 많이 주는 것 보다 자주 주는 것이 좋다. 사실 과거에 이랬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이랬지만 현재도 별만 다르지 않다. 사업을 하다 보면 반드시 공무원과 관계를 갖게 되고 공무원들은 박봉이다 보니 대부분 여기에 걸려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도 더러 있지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이 상호성을 갖는 것이다.

 

원병균과 이상재는 신문사에서 언론자유를 부르짖다 신문사에서 쫓겨 났기에 신원조회를 통과할 수가 없어 허진의 동생 허미경의 이름으로 출판사을 등록하고 외서를 번역하여 책을 만들었으나 해적 출판사가 나타나는 바람에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온 신원조회는 한정치산자나 금치산자, 파산선고 등 법원의 선고사실과 수형사실을 대조하여 것으로 공무원의 임용이나 공익법인 등의 임직원 취임 시 법령에서 규정한 일정한 자격요건에 결격사유가 없는지 조회하는 제도로 현재는 공무원에 한정하여 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국가가 분단된 상황에서 그 당시에는 신원조회가 훨씬 심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이규백은 동생의 데모 때문에 강원도로 인사 발령이 나자 사직을 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다. 지금까지는 처가에서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 했지만 이제부터 자신을 삶을 살게 됨을 축하해 주고 싶다.

 

사회정의와 명분이 중요한 것인지 가족의 안위가 중요한 것인지 이분법으로 나눠 결정하라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혁명을 꿈꾸는 자는 가족이 있어서는 안되나 보다. 나의 안위를 염려하여 불의와 협력하는 것은 배신이지만 가족의 안위를 위해 정의와 협력하지 않는 것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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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8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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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은 장발풍조가 만연해 지자 민족의 주체의식과 국민기강이 문란해지고 있다면서 전국 경찰에 장발 일제 추방령을 내려 적발하였다. 이 당시에도 공무원들이 실적위주였는지 1973년 한 해에만 만 이천 건의 실적이 올라왔고, 경찰들은 바리캉과 가위를 들고 젊은이들의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는 것이 일이었다고 한다. 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범죄부터 없애는 방법은 잘 알고 있는데 머리와 복장까지 단속하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소극적인 반항으로 송상균같이 고속도로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70년초부터 80년까지 일본인들의 섹스관광이 한국의 밤 문화를 주름 잡았다. 열악한 경제 사정 때문에 일본 막 노동자들의 수입으로도 한국에 오면 기분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 관리의 한 달치 월급이면 북한의 여성 서넛을 거느릴 수 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이 현재 북한의 현실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72년에 일본교통공사가 발행한 관광안내서에는 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나라라는 문구를 만들어 배포하였고 관광회사들은 하루에 30달러만 있으면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관광을 부추였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일본 관광객 중 80%가 중년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일부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여자들의 정조를 일본인들에게 바칠 수 없으니 기생관광을 중단하라는 시위도 했으나 외화가 더 중요 했던 정부는 수수방관하였다. 자신의 아내 자신의 딸이 그 길을 나섰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렸겠지만 가난한 민초들의 자식들 이다 보니 방관하였던 것이다. 박보금과 이양자의 싸움을 보면 먹고 살기 급급하여 일본인 현지처라도 하려고 윤락 여성들 간에 경쟁이 심했던 모양이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서혜경은 유일표를 찾아와 몸을 위탁하자 유일표는 자신의 집에 은둔 생활을 시키며 두 사람의 사랑을 키워 나간다. 여기서 민청학련 사건의 전말은 1973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이 언론에 노출되자 반유신체제운동이 일어나 대학생들과 일부 야당인사, 지식인, 종교인들이 시위에 동참하며 민주헌정 회복과 공화당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면 개헌서명운동을 벌렸다. 이에 박정희는 긴급조치 12호를 공포하고 개헌논의 일체와 집단행동을 금지시켰으나 12월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민중봉기를 획책하는 과정에서 인민혁명당계의 지하공산세력, 재일 조총련 계열, 불순학생운동으로 처벌받은 용공세력, 반정부 인사들이 공산정권을 수립 기도하였다는 혐의를 씌워 주모자는 무기징역을 나머지는 최고 20년의 징역을 선고했으나 2005년 재조사가 이루어 지면서 민청학련 사건은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탄압사건이라고 발표하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현령비현령 자신의 사상과 대치되는 자는 모두 사상범으로 몰아 처단하는 독재자의 전모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작한지 아직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딸의 고집 또한 대단해 보인다.

천두만은 가발공장의 시들해 지고 사채가 동결되고 딸이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다시 극빈층으로 전락하여 연탄을 찍으러 다니는 날일을 하던 중 우연히 서동철을 만나 그의 동생 서수철의 쌀가게에서 이 만원의 월급을 받고 배달 일을 하게 되었는데 서동철이 쌀 판매할 때 말 속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쌀 가게에서 조금씩 쌀을 퍼내 집에 가져와 연일 쌀밥만 먹게 되었는데 꼬리가 길면 밝히듯이 서수철에게 쌀 도둑질이 발각되어 쫓겨난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들이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 보인다.

주선녀는 독일에서 힘들게 간호원 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까지 한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가족들에게 보내 성장시켰건만 가족들은 자신이 빈털터리로 돌아오자 짐이라고 생각하고 꺼려하자 다시 독일로 떠난다. 아마도 주선녀는 독일에 가서 한 푼도 가족에게 보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쓸 것이다. 물론 가족들도 어려워서 그랬겠지만 가족으로 도리도 아닌 것 같다. 원병균과 이상재는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려다 신문사에서 쫓겨나 출판사 차릴 준비를 하고 있고 이규백의 막냇동생 이규동은 긴급조치 상황에서 데모를 하다 걸려 서약서를 거부한다. 이 거부가 이규백에게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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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7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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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5.16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부는 농어촌을 안정화 시키고자 농어촌고리채정리령을 공표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인구 다수가 농어민이고 임시방편으로 빚을 내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농어민의 빚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①1961 5 25일 이전의 채무 중에서 연리 20% 이상을 고리채로 간주하고, ②원금이 세대 당 15,000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리()·동()의 정리위원회에 신고하고, ③고리채로 판정된 채무에 대해서는 채권자에게 농협중앙회가 발행하는 농업금융채권을 교부한다. ④농업금융채권은 연리 20%, 그 중 8%는 국가 부담이고, 나머지 12%는 채무자가 정부에서 융자를 받아 부담한다였다. 개인적으로 국민 대다수가 1차 산업 종사자이다 보니 꽤 좋은 정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경제재건을 위해 공업부분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바람에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해 실패했다고 한다. 선법, 악법을 떠나 새로운 규칙이 생기면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 추수가 되기 전에 법이 시행되다 보니 자금 주들은 사채를 빌려주려고 하지 않아 돈 가뭄이 들어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수도 있다.

 

또 다시 10년 뒤 1972 8.3 사채동결긴급조치를 선포한다. 긴급조치의 골자는 기업과 사채권자의 모든 채권채무관계는 무효화되고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되는데 채무자는 신고한 사채를 3년거쳐 5년 분할상환조건으로 하고 이자율은 1.35%로 하고 사채권자가 원하면 출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당시 신고된 사채금액이 당시 통화량의 80% 3,456억 원 이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환산하면 1,464,224 십억 원 이다. 이 조치로 수출이 증가하는 등 한국경제의 회복을 가져왔고 기업의 체질 개선을 가져왔다. 결국 투자자들을 희생시켜 대기업을 도와주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이 공부했던 철학이나 기하학 등이 지금까지 건재한 걸 보면 과거의 정책이라 하여 무조건 나쁘고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은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에 적절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호, 불호가 나눠지는 것 같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국민에게 걷어들인 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위기를 덮으려 하는 걸 보면 과거의 정책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안경자의 남편 신지훈은 미국 유학을 갔으나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돌아오지 않았고 강숙자는 자신의 친동생 강미현을 유일표에게 소개시켜줬으나 유일표 사정을 알게 된 동생은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임상천과 황집사는 자신이 가진 전 재산과 정동진 출장 중에 동업자를 보증인으로 하여 어음을 발행하고 할인하여 미국으로 도주하였다. 황진사는 임채옥을 데러 가려 했으나 임채옥이 거절하는 바람에 편하게 살수 있을 만큼의 돈만 건네 주었다. 허진은 사장의 신임을 받고 회사의 헤드쿼터인 기획실 중역이 되었으나 과거자신의 신분을 잊은 체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금지 하며 현재는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성정의 시기라고 하며 유일표와 대립 한다.

정동진은 임상천이 발행한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내고 도망 다니다 한인곤과 임채옥의 도움으로 재기에 꿈꾸고 김선태는 고등고시에 계속 낙방되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어머니 월하댁을 뵙고 나서 한강에 투신자살을 한다.

이상재는 허미경을 잊지 못해 양장점으로 찾아가 속내를 보였으나 허미경은 혼자가 되었지만 본인은 메인 몸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 한다. 한편 배상집은 광부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변하였지만 광부들의 우상이 되어 광부들이나 간호원 심지어는 독일 회사에서까지 인정을 받는다.

 

이상재는 포항제철의 신화 박태준을 취재하는데 박태준에 대한 인물을 발췌하였다.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만성적자였던 대한중석을 1년만에 흑자로 전환하여 박정박정부터 제철소 건설 소임을 부여 받는다. 이에 박태준은 미국을 방문하여 KISA 대표와 담판을 했으나 협력 불가하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제철소 자금으로 전용하자는 생각을 박정희에게 보고하고 재가를 받아 일본에 가서 정재계 인사들을 설득하여 대일청구권자금 7 370만달러와 일본 차관 5천만 달러를 들여와 포항제철소 건설을 시작하여 1970년 조강연산 130만톤 규모의 1기 설비를 착공하고 1973년 에는 비로소 용광로에서 처음으로 쉿물을 받아냈고 1992년에는 광양제철소까지 완공되어 2 10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5위의 철 생산국이 되었다. 제철산업이 단순하게 철을 생산하는 것에게 끝나지 않고, 자동차, 조선, 가전 등 관련산업의 성장과 경쟁력 때문에 국민경제적 기여도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제품과 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부분에 관심을 갖고 투자가 이루어 져 지속 가능한 혁신철강기술을 확보하여 고부가가치를 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중국 등소평이 신일본 제철에 가서 포항제철과 같은 것을 중국에도 만들어 달라고 하자 당신에 나라에는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지 않소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박태준은 신화와도 같은 존재구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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