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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8 - 제3부 불신시대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유신정권은 장발풍조가 만연해 지자 민족의 주체의식과 국민기강이 문란해지고 있다면서 전국 경찰에 장발 일제 추방령을 내려 적발하였다. 이 당시에도 공무원들이 실적위주였는지 1973년 한 해에만 만 이천 건의 실적이 올라왔고, 경찰들은 바리캉과 가위를 들고 젊은이들의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는 것이 일이었다고 한다. 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범죄부터 없애는 방법은 잘 알고 있는데 머리와 복장까지 단속하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소극적인 반항으로 송상균같이 고속도로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70년초부터 80년까지 일본인들의 섹스관광이 한국의 밤 문화를 주름 잡았다. 열악한 경제 사정 때문에 일본 막 노동자들의 수입으로도 한국에 오면 기분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 관리의 한 달치 월급이면 북한의 여성 서넛을 거느릴 수 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이 현재 북한의 현실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72년에 일본교통공사가 발행한 관광안내서에는 ‘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나라’라는 문구를 만들어 배포하였고 관광회사들은 ‘하루에 30달러만 있으면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관광을 부추였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일본 관광객 중 80%가 중년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일부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여자들의 정조를 일본인들에게 바칠 수 없으니 기생관광을 중단하라는 시위도 했으나 외화가 더 중요 했던 정부는 수수방관하였다. 자신의 아내 자신의 딸이 그 길을 나섰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렸겠지만 가난한 민초들의 자식들 이다 보니 방관하였던 것이다. 박보금과 이양자의 싸움을 보면 먹고 살기 급급하여 일본인 현지처라도 하려고 윤락 여성들 간에 경쟁이 심했던 모양이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서혜경은 유일표를 찾아와 몸을 위탁하자 유일표는 자신의 집에 은둔 생활을 시키며 두 사람의 사랑을 키워 나간다. 여기서 민청학련 사건의 전말은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이 언론에 노출되자 반유신체제운동이 일어나 대학생들과 일부 야당인사, 지식인, 종교인들이 시위에 동참하며 민주헌정 회복과 공화당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면 개헌서명운동을 벌렸다. 이에 박정희는 긴급조치 12호를 공포하고 개헌논의 일체와 집단행동을 금지시켰으나 12월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민중봉기를 획책하는 과정에서 인민혁명당계의 지하공산세력, 재일 조총련 계열, 불순학생운동으로 처벌받은 용공세력, 반정부 인사들이 공산정권을 수립 기도하였다는 혐의를 씌워 주모자는 무기징역을 나머지는 최고 20년의 징역을 선고했으나 2005년 재조사가 이루어 지면서 민청학련 사건은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탄압사건이라고 발표하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현령비현령 자신의 사상과 대치되는 자는 모두 사상범으로 몰아 처단하는 독재자의 전모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작한지 아직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딸의 고집 또한 대단해 보인다.
천두만은 가발공장의 시들해 지고 사채가 동결되고 딸이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다시 극빈층으로 전락하여 연탄을 찍으러 다니는 날일을 하던 중 우연히 서동철을 만나 그의 동생 서수철의 쌀가게에서 이 만원의 월급을 받고 배달 일을 하게 되었는데 서동철이 쌀 판매할 때 말 속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쌀 가게에서 조금씩 쌀을 퍼내 집에 가져와 연일 쌀밥만 먹게 되었는데 꼬리가 길면 밝히듯이 서수철에게 쌀 도둑질이 발각되어 쫓겨난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들이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 보인다.
주선녀는 독일에서 힘들게 간호원 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까지 한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가족들에게 보내 성장시켰건만 가족들은 자신이 빈털터리로 돌아오자 짐이라고 생각하고 꺼려하자 다시 독일로 떠난다. 아마도 주선녀는 독일에 가서 한 푼도 가족에게 보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쓸 것이다. 물론 가족들도 어려워서 그랬겠지만 가족으로 도리도 아닌 것 같다. 원병균과 이상재는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려다 신문사에서 쫓겨나 출판사 차릴 준비를 하고 있고 이규백의 막냇동생 이규동은 긴급조치 상황에서 데모를 하다 걸려 서약서를 거부한다. 이 거부가 이규백에게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