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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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명희, 숙자, 숙희, 명환, 동수, 동준……이 이름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을 꼽으라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은 뒤에는 자신있게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책에 나오는 이름이고,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며, 괭이부리말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괭이부리말이라는 곳이 실제로 있었고 지금도 있는 곳인지는 인천에 가 본 일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전혀 모른다. 작가는 괭이부리말이 일제 시대, 6.25 전란, 경제 개발 5개년 정책이라는 세 가지 시대 상황 때문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고 빗발치듯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고자 괭이부리말로 몰려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흔히 '달동네'라고 하는 가난한 마을을 이루었고, 일자리를 찾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벌어먹고 살기에 바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 본성을 설명하는데는 자기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성악설이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특히 동화로서 매우 쉽게 다가와 내 감성을 자극한 이 책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동화이기에 그런 장점을 더욱 뚜렷하게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세상일수록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모님이 없지만 본드에 찌들고 가난한 아이들을 거둬들여 아버지처럼 보살피는 영호, 그토록 괭이부리말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그 꿈을 이루지만 학창 시절 동창이었던 영호를 만나면서 괭이부리말에 대한 편견을 깨고 따뜻한 가슴을 지니기 시작하는 명희, 사고로 아버지를 잃어버리지만 어머니를 도우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숙자……이들 말고도 앞에서 말한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인연을 맺으면서 마침내 봄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신없이 빠져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만에 다 읽어버린 뒤 곰곰이 내용을 되씹다가 내가 특히 주목했던 인물은 명희였다. 어릴 때부터 괭이부리말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린 명희네 가족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 끝에 괭이부리말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명희는 괭이부리말에 있는 학교에 발령받아 다시 괭이부리말에 발을 딛게 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명희에게 말썽꾸러기 아이들은 그저 귀찮고 짜증나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곳에 다시 온 그녀에게 아이들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연히 영호를 만난 명희는 영호가 동준이와 상담을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동준이와 상담을 하다가 동준이가 사는 환경을 보고 직접 부대끼면서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말도 잘 안 듣고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이들이 그저 명희를 화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명희가 감싸주고 다독거려줘야 할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교단에 서 있기만 해서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정말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위대한 학자이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 나에게 명희는 분명히 큰 교훈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간접으로나마 만나게 해 줬고 군대에서 시달리느라 차갑게 얼어붙고 지친 내 가슴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 준 이 책이 나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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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 (보급판 문고본) -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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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각 소대 들어. 제 1 신병교육대 1015기. 총기상 15분 전."
 

"각 소대 들어. 제 1 신병교육대 1015기. 총기상 5분 전."

 
"각 소대 들어. 제 1 신병교육대 1015기. 총기상 총 침구걷어."

 

 

해병대교육훈련단에 들어간 뒤 나는 좋든 싫든 저 구령에 따라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에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실무 부대에 배치된 뒤에도 '각 소대 들어'라는 구령이 사라지고 '제 1 신병교육대 1015기'가 '본부중대'로 바뀌었을 뿐 일어나는 시간은 항상 똑같았다. 피곤하든지 잠을 설쳤든지 그런 개인 사정은 오로지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조직인 군대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고된 훈련과 작업을 견뎌내면서 예전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분명히 들었다. 일어나서 이미 활짝 떠오른 해를 바라보면서 받는 씁쓸한 기분 대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군대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 느낌이 왜 생기는지 '아침형 인간'이라는 꽤 흥미로운 제목을 지닌 이 책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대뇌생리학이 내놓은 잠에 관한 여러 가지 연구 결과를 포함한 온갖 자료를 토대로, 저자는 인류가 수백 만 년 동안 지켜온 아침에 일어나 밤이면 잠드는 삶을 저버리고 밤에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수백 만 년 동안 지켜온 방식을 깨면 그동안 거기에 완벽하게 적응한 생체 시계가 교란되어 몸에 분명히 이상을 가져오며, 그에 따라 만성 피로가 이어져 삶을 송두리째 엉망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 책에 따르면 단 한 가지뿐이다. 자연과 일치하는 아침형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저녁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하게 힘 없고 효율이 낮은 삶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여러 가지 사례도 제시하고, 아침형 인간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체계를 갖춘 방법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저자가 지적한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매일 새벽 2~3시까지 깨어있다가 간신히 침대에 쓰려져 잠든 뒤, 날이 화창하게 밝은 뒤에도 일어나지 못해서 이불 속에서 낑낑댔다. 시간 통계를 내 보면 자는 시간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8시간보다 많을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러면서도 하루종일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매우 젊었기에 그런 상태 속에서도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덕분에 내가 해낸 수많은 일에서 얻은 성과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특히 하루종일 정신이 멀쩡한 때가 별로 많지 않다는 현실이 너무 싫었던 나는 뭔가 색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생각해 본 끝에 그 당시에 유명하던 이 책을 읽어보려고 했고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둘 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나는 그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완고한 고집과 일찍 잠들지 못하면서도 무리하게 일찍 일어나려고 한 무모함이 겹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지금 내가 주목하고 싶은 한 가지는 군대에 가면서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다. 물론 군대에서 잃어버리는 것도 분명히 있다. 얻을 수 있는 것도 잃어버리는 것만큼이나 많이 있다는 생각이 차츰 뚜렷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일 것이다. 군대에 적응하는데는 적어도 석 달이 걸리지만 사회에 적응하는데는 3초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단단히 마음먹으면 군대에서 그 좋은 습관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길러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이 책에 열광했는지도 군대에 와서야 알았으니, 군대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 또 한 가지 늘었다. 나도 언젠가 전역하면 다시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당연한 반응과 또 싸워야 할 테니 항상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되새기면서, 군대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완전히 들여야겠다. 지금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몸에 힘이 없어서 허덕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자신있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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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랑의 아리아 -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내조하고 두 자녀를 영재로 키운 성악가 전춘희 이야기
전춘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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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왕성한 의욕 때문에 피가 끓어오르는 젊은 시절에는 그 기운을 어떻게 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18년 동안 끓지 않았던 피는 그 안에서 고여 썩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흐르기 시작하면서 나를 완전히 태워버릴 듯이 뜨거워졌다. 도시 아래에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용암이 잠잠히 흐르고 있다가, 한순간에 폭발해 도시를 녹여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 뜨거운 기운을 나는 제대로 발산하는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해서, 지금까지 대단히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괴로울 때마다 나는 가난하지만 풍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거나, 나보다 못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곧 스스로 만족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도 정신병 가운데 한 가지로 치는 '의욕 과다'에 걸려 있는 듯한 나한테 그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행복한 사랑의 아리아'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가 온 세상에서 유명한 성악가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 성악가가 강당 마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대단히 오랫동안 강조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뭔가 있기는 있는 듯 했다. 게다가 요즘 들어 나와 말다툼이 부쩍 잦아진 어머니께서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자꾸만 말씀하셨다. 부모님이 그토록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기에, 외양간에서 여물 기다리는 황소처럼 눈만 끔뻑거리다가 결국 이 책을 펼쳤다.

 

1시간 40분만에 읽어치운 뒤에 나는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역시 책을 처음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감동을 빼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그 감동이 차곡차곡 쌓여서 삶에서 보물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되도록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할 까닭은 전혀 없으며, 그 말이 언젠가는 사실로 나타날 지도 모르니 일단 잠자코 지내봐야겠다.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데에 몰두했는데, 이는 다른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나타나는 버릇이니 특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따로 있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간 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예전보다는 매우 많이 성장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내가 세상에 있는 어두운 면만 바라본다면서 나를 책망하셨다. 그러면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밝게 세상을 긍정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냐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물론 자식 걱정하는 부모님 마음을 아무리 핏줄인 자식이라도 어떻게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혀 바꾸고 싶지 않다. 탈무드에 나오는 것처럼 어차피 사람은 검은 눈동자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달콤한 지배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버린다고 생각한다. 달콤한 지배보다는 쓰라린 자주를 원한다. 그런 의지를 확고하게 다졌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매우 많은 것을 얻어낸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매튜나 제임스와 같은 영재는 전혀 아니며, 그들처럼 많은 것을 알고 할 줄 아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들처럼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고 싶어하는 욕망은 누구보다도 크다. 단지 그 욕망이 행동으로 잘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괴로워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 이 책은 칭찬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눈초리가 갈수록 날카롭고 매서워지는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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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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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겨울방학에 기숙사에 들어온 성훈이 방에 놀러가서 45분만에 읽어치운 만화책이다. 요즘 굉장히 욕을 많이 먹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펴낸 만화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다양한 만화가들이 각자 고유한 그림 실력으로 나타냈다. 남녀 차별, 동성애, 인종주의 따위 온갖 인권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거기에 나오는 내용에 관하여 지금 일일이 내 견해를 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제목에 관한 이야기만 조금만 하고 넘어가야겠다.

 

'십시일반(十施一飯)'은 열 사람이 밥 한 숟가락씩 모으면 한 사람이 먹을 밥 한 그릇이 된다는 뜻이다. 나누고 사는 인간미 넘치는 세상을 강조하는 말인 듯 하다. 그런데 책 제목을 보면 '밥 반 자(飯)'가 '되돌릴 반(反)'자로 나와 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글자는 무슨 한자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작가들이 무슨 의도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추측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십시일반(十視一反)'

 

곧 열 사람이 한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반(反)'이라는 한자는 반역, 반란 따위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사람들이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하는 한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인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정착하는데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다. 여전히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 가운데 나도 끼어있을 확률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몇 번이고 강조하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을 구분하여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무슨 관용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 답답한 현실이 이 만화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문제이다. 그렇게 부족하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하면서 편견을 깨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 책에서 나오는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동성애를 인정하자는 주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양쪽을 살펴본 결과 동성애를 인정하자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동성애를 싫어하는 데는 논리가 필요없었다. 거의 본능이라고 볼 수 있는 거부감만 나타날 뿐이었다.

 

사실 인권 문제에는 논리보다는 이런 감정이 앞서는 일이 많기에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다. 아무리 논리가 더 맞다 하더라도 싫으면 그만이다. 그런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도 설득할 수 없을 확률이 1에 가깝다. 그렇기에 쉬운 책을 읽으면서도 머리가 아팠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논리를 들이대면서 편견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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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그
스티브 앨튼 지음, 신현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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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어디에서 읽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학급문고에서 이 책을 꺼내 읽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때 나는 이미 사람이 거의 감당할 수 없는 강하고 흉폭한 괴물이 나오는 영화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한참 뒤에 이 책을 기억해낸 뒤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이 책에 관하여 알아봤더니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되었다는 김을 새게 하는 정보만 건졌다.

 

표지에 쓰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바다 괴물이다. 그 괴물은 쥬라기 시대에 바다를 지배했던 상어의 조상인 메갈로돈이다. 제목인 메그(MEG)도 메갈로돈(Megalodon)에서 앞에 있는 세 글자만 따 온 것이다. 

 

육지에서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티라노사우루스도 재수없게 바닷가에서 얼쩡거리다가 메갈로돈한테 잘못 물려 바다로 끌려 들어가면, 아무 저항도 못하고 푸짐한 한 끼 밥이 되어야 했다. 사자하고 악어가 싸우면 육지에서는 사자가 이길 확률이 높지만, 사자가 물 안에 끌려들어가면 이길 확률이 0에 가까운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도대체 어떻게 아직도 살아남아 있었는가?

 

여러 해양과학자들이 사람이 아직 탐사하지 못한 바닷속을 탐사하고자 제작한 특별한 잠수정을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들은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바다 안으로 계속 내려가고, 마침내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는 열수탕이 있는 깊고도 따뜻한 바다에 도착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중생대 생물인 메갈로돈이 살아 있었다. 메갈로돈은 잠수정을 타고 탐사를 벌이던 대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대원들이 어떻게든지 살아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희생자가 생기고 만다. 혼비백산한 대원들은 열수탕이 끓는 바다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메갈로돈이 따뜻한 물에서 살아남았으니 열수탕이 없는 지역에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임신한 메갈로돈 암컷이 대원들이 공격해 입힌 상처에서 흘린 피냄새를 맡고 메갈로돈 수컷에게 달려든다. 수컷은 깜짝 놀라서 위로 올라가는 잠수정을 뒤쫓으면서 도망가려고 하지만, 암컷은 수컷을 꼬리에서부터 파먹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암컷은 자기도 모르게 열수탕 지역을 벗어나 버린다. 대원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수컷을 파먹으면서 따뜻한 피를 뒤집어쓴 암컷은 서서히 온도가 변하자 차가운 물에 적응해 버린다.

 

바다로 자기들보다 먼저 올라가버린 메갈로돈을 보고 경악한 대원들은 재빨리 국제해양연구소에 이 사실을 알린다. 국제해양연구소 직원들은 중생대 생물인 메갈로돈이 바다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크게 놀란다. 메갈로돈이 임신했을 수도 있다는 보고를 듣고 더욱 놀란 국제해양연구소 직원들은 곧바로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한다. 해양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걱정한 대로 메갈로돈은 드넓은 바다에 널린 엄청나게 풍부한 먹이를 마구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올라오자마자 사람고기를 맛본 뒤에는 물고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람을 노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메갈로돈을 처리하려는 사람들과 메갈로돈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나름대로 기억을 짜내봐도 결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바다를 휘젓고 다니던 메갈로돈을 어떻게 처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포해서 그 깊은 바다로 돌려보냈을 확률은 희박하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살려주자는 의견을 내세웠겠지만, 백상아리보다도 훨씬 크고 강한 메갈로돈을 사람이 생포하기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이 모든 사건과 이야기 흐름에 상당한 해양 지식이 반영되어 있다. 메갈로돈이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 따위를 잘 읽어보면 생체해부학 지식 없이는 절대 쓸 수 없는 표현도 자주 나온다. '지성인을 위한 해양 과학 소설'이라는 칭찬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가끔씩 뇌세포가 단순한 생각밖에 못 하게 될 때, 사람들이 하는 일이 우습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구를 완전히 활용하는 날도 까마득해 보이는데, 왜 하필이면 우주에서 사람이 살 만한 행성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드레이크 방정식이네 SETI 계획이네 하면서 외계 문명을 찾아보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외계 문명은 여전히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존재로 남아 있다.

 

바다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곳이다. 끝이 없어 보이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을 품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푸른빛은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을 한꺼번에 선사한다. 그 바다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바다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숨어있다면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항해술이 발달해도 미신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닻을 올리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르네상스 덕분에 더욱 발달한 문명이 꽃을 피우면서 사람들은 미신을 버리고 과감하게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은 보자드로 곶을 넘었고, 희망봉을 발견했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해 떼돈을 벌었다.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단순히 바다를 항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바다 안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바다를 탐사하러 갔다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물을 만났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일이 없다. 그러나 아직 바다에 관하여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사람들은 무언가 알고 싶어하는 본능에 따라 모르는 것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뒷받침할 온갖 논리를 고안한다.

 

그러나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로빈 쿡이 쓴 '납치(Abduction)'에서처럼 낙원 같지 않은 낙원이 있을지, 영화 '어비스(Abyss)'에서처럼 외계인이 있을지, 이 소설에서처럼 고대 생물이 살아 날뛰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이 살아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 쓴 이 소설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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