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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랑의 아리아 -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내조하고 두 자녀를 영재로 키운 성악가 전춘희 이야기
전춘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왕성한 의욕 때문에 피가 끓어오르는 젊은 시절에는 그 기운을 어떻게 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18년 동안 끓지 않았던 피는 그 안에서 고여 썩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흐르기 시작하면서 나를 완전히 태워버릴 듯이 뜨거워졌다. 도시 아래에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용암이 잠잠히 흐르고 있다가, 한순간에 폭발해 도시를 녹여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 뜨거운 기운을 나는 제대로 발산하는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해서, 지금까지 대단히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괴로울 때마다 나는 가난하지만 풍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거나, 나보다 못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곧 스스로 만족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도 정신병 가운데 한 가지로 치는 '의욕 과다'에 걸려 있는 듯한 나한테 그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행복한 사랑의 아리아'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가 온 세상에서 유명한 성악가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 성악가가 강당 마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대단히 오랫동안 강조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뭔가 있기는 있는 듯 했다. 게다가 요즘 들어 나와 말다툼이 부쩍 잦아진 어머니께서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자꾸만 말씀하셨다. 부모님이 그토록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기에, 외양간에서 여물 기다리는 황소처럼 눈만 끔뻑거리다가 결국 이 책을 펼쳤다.
1시간 40분만에 읽어치운 뒤에 나는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역시 책을 처음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감동을 빼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그 감동이 차곡차곡 쌓여서 삶에서 보물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되도록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할 까닭은 전혀 없으며, 그 말이 언젠가는 사실로 나타날 지도 모르니 일단 잠자코 지내봐야겠다.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데에 몰두했는데, 이는 다른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나타나는 버릇이니 특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따로 있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간 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예전보다는 매우 많이 성장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내가 세상에 있는 어두운 면만 바라본다면서 나를 책망하셨다. 그러면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밝게 세상을 긍정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냐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물론 자식 걱정하는 부모님 마음을 아무리 핏줄인 자식이라도 어떻게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혀 바꾸고 싶지 않다. 탈무드에 나오는 것처럼 어차피 사람은 검은 눈동자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달콤한 지배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버린다고 생각한다. 달콤한 지배보다는 쓰라린 자주를 원한다. 그런 의지를 확고하게 다졌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매우 많은 것을 얻어낸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매튜나 제임스와 같은 영재는 전혀 아니며, 그들처럼 많은 것을 알고 할 줄 아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들처럼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고 싶어하는 욕망은 누구보다도 크다. 단지 그 욕망이 행동으로 잘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괴로워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 이 책은 칭찬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눈초리가 갈수록 날카롭고 매서워지는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