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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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명희, 숙자, 숙희, 명환, 동수, 동준……이 이름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을 꼽으라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은 뒤에는 자신있게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책에 나오는 이름이고,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며, 괭이부리말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괭이부리말이라는 곳이 실제로 있었고 지금도 있는 곳인지는 인천에 가 본 일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전혀 모른다. 작가는 괭이부리말이 일제 시대, 6.25 전란, 경제 개발 5개년 정책이라는 세 가지 시대 상황 때문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고 빗발치듯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고자 괭이부리말로 몰려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흔히 '달동네'라고 하는 가난한 마을을 이루었고, 일자리를 찾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벌어먹고 살기에 바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 본성을 설명하는데는 자기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성악설이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특히 동화로서 매우 쉽게 다가와 내 감성을 자극한 이 책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동화이기에 그런 장점을 더욱 뚜렷하게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세상일수록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모님이 없지만 본드에 찌들고 가난한 아이들을 거둬들여 아버지처럼 보살피는 영호, 그토록 괭이부리말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그 꿈을 이루지만 학창 시절 동창이었던 영호를 만나면서 괭이부리말에 대한 편견을 깨고 따뜻한 가슴을 지니기 시작하는 명희, 사고로 아버지를 잃어버리지만 어머니를 도우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숙자……이들 말고도 앞에서 말한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인연을 맺으면서 마침내 봄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신없이 빠져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만에 다 읽어버린 뒤 곰곰이 내용을 되씹다가 내가 특히 주목했던 인물은 명희였다. 어릴 때부터 괭이부리말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린 명희네 가족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 끝에 괭이부리말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명희는 괭이부리말에 있는 학교에 발령받아 다시 괭이부리말에 발을 딛게 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명희에게 말썽꾸러기 아이들은 그저 귀찮고 짜증나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곳에 다시 온 그녀에게 아이들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연히 영호를 만난 명희는 영호가 동준이와 상담을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동준이와 상담을 하다가 동준이가 사는 환경을 보고 직접 부대끼면서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말도 잘 안 듣고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이들이 그저 명희를 화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명희가 감싸주고 다독거려줘야 할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교단에 서 있기만 해서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정말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위대한 학자이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 나에게 명희는 분명히 큰 교훈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간접으로나마 만나게 해 줬고 군대에서 시달리느라 차갑게 얼어붙고 지친 내 가슴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 준 이 책이 나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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