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 못다 핀 천재 물리학자 청소년인물박물관 3
이용포 지음 / 작은씨앗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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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세상에 내놓으며 과학 혁명을 일으킨 뒤, 과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이 제시한 운동 법칙으로 예전에 설명하지 못했던 수많은 운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존재를 이루는 근원을 밝혀내기만 한다면 그 근원에 그동안 밝혀낸 운동 법칙을 적용해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예상했던 것이다.  
 

그 예상을 현실로 옮기고자 근대 화학자들이 나섰다. 데모크리토스가 제시한 원자설이 근대 과학자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로 인정을 받은 뒤, 그들은 물질이 띠는 성질과 그 사이에 성립하는 법칙을 하나 둘 발견하면서 꾸준히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로 나아갔다. 

 

그러나 마리 퀴리가 원자핵 변환을 연구하면서 라듐과 폴로늄 따위 여러 가지 입자와 핵반응을 발견하면서, 그 기대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역시 입자물리학 분야에 수 천 년 동안 인류가 매달렸지만 수많은 가설만 쏟아져 나왔을 뿐, 뚜렷하고 믿을 만한 연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만큼, 그들이 기대한 대로 주사위가 굴러가지 않았다. 기본 입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고,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고정 관념과 다르게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변하고 반응을 일으켰다. 게다가 뉴턴 물리학이 발견한 운동 법칙도 입자물리학 연구가 진전되면서, 소립자 운동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혀졌다.

 

그에 따라 현대 입자물리학과 고에너지 물리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충격에 빠진 뒤 거기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은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치열한 연구 현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끊임없이 발표했다. 그 현장에 6.25 전쟁 때문에 지구에서 가장 참혹하게 파괴된 나라 가운데 한 곳으로 변해버린 한국에서 온 천재 이휘소(미국 이름은 벤자민 리)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교수들이 하는 강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영어도 잘 하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는 교수들이나 학생들이나 그를 마땅찮게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이휘소가 보여주는 천재성에 놀란다. 자기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자기가 지닌 지식과 주장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깨지기 십상인 그 무시무시한 학계에서 그는 천재로 인정받고 살아남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곳에서 그는 현대 물리학, 특히 소립자물리학과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에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업적을 쌓으며 최신 물리학계를 이끌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빛냈다.

 

그토록 눈부신 업적을 쌓고 찬사를 받았는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에 관하여 정확하게 모르고 심지어 그 이름 석 자를 아는 이도 흔하지 않다. 물론 그건 세상에서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뒤에야 그 일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휘소라는 천재를 알게 된 계기도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사실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도 그 비극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실 류비셰프를 만나기 전에 내가 가장 존경했던 과학자가 바로 이휘소였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읽은 때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친 뒤였는데, 이 인물을 처음으로 안 것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으니, 무려 2년이나 빨랐던 셈이다. 그 2년 동안 나는 마음 속에 이휘소라는 인물을 두고, 아무 정확한 자료도 없이 어떤 인물인지 그저 멋대로 마음 속에 그려내고 있었다.

 

그 때 이휘소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상상하는데 바탕이 된 소설은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다. 그랬으니 올바른 판단이 나왔을 리가 절대 없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김진명은 이휘소라는 이론물리학자를 뜨거운 애국심으로 무장하여 미국이 제시한 셀 수 없는 혜택을 뿌리치고 고국에 핵무기 보유국으로 거듭나는데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인물로 그렸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건 김진명이 자기 의도에 따라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열심히 읽은 뒤, 이용후가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소설을 그대로 믿고 있다.

 

아무리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힘있는 문체와, 애국심을 끓어오르게 하고 한국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울분을 통쾌하게 날려버릴 내용과 결말으로, 흔히 문학에서 말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김진명이 군사 독재 정권과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하지 않았던 이론물리학자 이휘소를, 박정희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핵무기 개발을 꿈꾸는 핵물리학자 이용후로 둔갑시켰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특히 이 책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이휘소가 보여준 그 점을 확실하게 드러내야 하는데, 작가는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지켰다. 글씨도 큼직했고 내용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확실히 읽기는 편했다. 이휘소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 100여 편을 토대로, 어린 시절부터 그가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죽을 때까지 그가 남긴 발자취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읽기 쉽게 풀어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내 머릿속에서 그리기만 했지 실체가 없던 이휘소라는 인물을 더욱 정확하게 그려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휘소가 이루어낸 업적에 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하긴 그 설명을 제대로 하려고 하다가는 청소년은커녕 웬만큼 교양이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휘소에게서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받으면서 인연을 맺은 강주상 교수가 이 책과는 별개로 평전을 냈는데, 거기에서는 나름대로 쉽고 자세하게 소립자물리학에 관하여 이휘소가 주장한 이론을 설명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밝히는데 분명히 중요한 자료를 여기에서는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작가가 의도한 것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업적뿐만 아니라 이휘소가 학계에서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과 벗들 사이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제대로 밝히지 못한 듯해서 아쉽다. 내가 정작 이 책에서 원했던 것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도 쉬지 않고 연구에 정진하면서 밝히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과 그가 따뜻한 가슴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느꼈던 모든 것을 실감나게 표현했다면 정말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정말 알고 싶었다. 류비셰프와 마찬가지로 그도 일에 매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해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류비셰프에 관한 자료는 사실 내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너무 적었다. 그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매우 지치고 피곤했다고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서 밝히고 있다. 류비셰프만 좇고 있는 나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고, 이 책을 샀던 날에 만났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웃던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 생각은 접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가 밝힌 대로 그는 '우담바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3천 년마다 한 번씩 피어난다는 불교 전설으로만 알려진 꽃.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이해하고 있는 이도 없다. 하지만 그 가치는 어느 누구도 감히 함부로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도 우리나라에 분명히 그런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를 너무 아깝게 잃었다. 언제 그런 인물이 다시 나올 것인가? 자라나는 새싹들 가운데 이 책을 읽고 이휘소와 같은 과학자가 되겠다고 오로지 한 우물을 파기 시작하는 이들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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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 Korea, 우리문화 영어로 표현하기
김경훈.류미정 지음, 이미림 영역 / 윈타임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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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영어를 공부하면서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한다는 뚜렷한 원칙을 정해놓지 않았다. 일단 닥치는 대로 듣고 읽고 쓰고 말하면서 기본부터 제대로 다져놓자는 심산으로, 내키는 대로 공부했다. 하지만 내키는 대로 하는 공부는 체계를 갖춰서 차근차근 하는 공부와 견주었을 때, 시간이 흐를수록 본질에서부터 차이가 심하게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기만 좋아하지 일을 끝내는 데는 소홀히 하는 경향까지 있다. 이 때문에 한 달이나 한 해 단위로 해 놓은 일을 결산해 보면, 요란하기만 짝이 없지 어떤 특정한 주제나 분야에 관한 뚜렷한 실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영어 실력도 완전 초보는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많이 부족하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어교육과 학생 맞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형편없는 기초를 드러냈으니, 다른 사람들도 나에 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버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항상 먼저 주목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나는 영어 실력이 여전히 형편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군대에 오면서 마음먹은 대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일병 진급 위로 휴가 때 한 선임이 부탁한 대로 좋은 기초 영어 교재를 고르러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 'PR Korea 우리 문화 영어로 표현하기'를 봤다. 제목을 보고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느낌을 받았고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샀다. 부대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강한 느낌이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말고도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돌이켜 본 끝에 내린 결론은 책을 읽으면서 내린 것과 같았다. 영어 공부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뭔가 원칙이 없다는 찜찜함이 오랫동안 묵은 터라 머리가 괴로워하던 차에,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뇌가 스스로 찜찜함을 없앨 방법을 찾다가, 이 책을 보고 그 방법을 찾았다는 직감에 따라 내 몸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매우 웃기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이기는 하지만, 나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종합해 생각해 보면 무작정 말도 안 된다고 단정 지어 버릴 수는 없다. 지금까지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룬 영문을 읽었지만, 그 가운데 한국에 관한 영문은 1푼도 안 된다. 그 정도로 나는 한국 사람으로서 영어를 공부할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소홀했던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외국어를 배우더라도 자기 나라 한국에 관하여 외국 사람들이 물었을 때 그 외국어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어떤 분야에서는 반드시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고 어떤 분야에는 특히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그런 공부 전략은 없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럴 만한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 조기 교육은 그토록 강조하면서 한국사를 선택 과목으로 지정하는 한심한 교육 철학 속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그토록 반공 교육과 한국사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세대와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배운 세대에서도,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알려서 민간 외교관으로서 한몫을 담당하겠다고 의식하는 이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막강한 국력을 기반으로 한 동북공정 따위 역사 왜곡 공정이, 우리 문화와 역사를 깎아내리고 좀먹고 심지어 자기들 것으로 만들고자 전 세계에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우리 문화 개념을 자기들이 세상에 전파하는 따위로 발악하고 있고, 그 정도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 사실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어가면서까지 화를 내고 길길이 뛰지만, 그것만으로 끝이다. 그런 현실을 바꾸려는 어떤 행동이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 문화와 역사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도 심각하다. 우리는 민간 외교관으로서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거나 외국인들과 논쟁을 벌이며, 중국과 일본이 저지른 역사 왜곡 공정이 낳은 참담한 결과를 바르게 바꿔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국제 사회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공용어가 되어버린 영어 실력이 필수 조건이다. 특히 온 세상을 연결하는 인터넷 공용어가 영어인 데다가, 요즘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으로 돌아다니는 만큼, 영어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영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시키고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인 자랑스러운 IT 강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영어 실력과 인터넷 접속 환경이 좋다고 해서 일이 거저 풀리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우리 문화와 역사를 영어로 표현해서 전달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설사 안다 해도 행동할 의지나 실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책은 그런 실태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문장들 거의 대부분이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이라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모두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이 얼마나 깔밋하게 잘 편집되어 있고 내용이 알찬지는 '일러두기'에서 지은이들이 잘 설명해 놓았다.

 

 

"이 책은 우리 문화와 역사를 외국인에게 제대로 소개하는 길잡이로 계획되었다. 방대한 우리 문화와 역사 가운데 가장 자랑하고 싶은, 또는 외국인이 가장 궁금해 할 것 같은 항목 39가지를 (다양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골라 소개하였다. 내용 개요에 이어 관련 대화까지 곁들임으로써 외국인과의 실제 대화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Notes'와 '표현연구'를 두어, 독자 스스로 우리 문화 영어표현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표현연구'에는 본문 내용에 나오는 주요 구문 해설뿐 아니라 관련 문법까지도 정리해두어영작 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Note에는 각 Unit의 설명문과 Dialogue에 나오는 어휘를 세세한 부분까지 정리해 두었으므로,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우리 문화와 역사를 표현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표현연구'에서 다룬 문장은 본문에서 별색으로 표시하여 찾기 쉽도록 했다.

 

-> 우리말 고유 명칭(고유명사)은 이탤릭으로 표시하여 쉽게 구분되도록 했다.

 

이 책이 우리 문화를 영어로 표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기를 바란다."

 

 

부록으로 '외국인을 당황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우리말'도 실어놓았는데, 본문과 마찬가지로 매우 재미있다.

 

나는 영어를 전공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지은이들이 강조하는 그런 실력을 갖추지 못해 부끄럽기 그지없다. 지금가지 비틀어진 자의식에서 샘솟는 온갖 괴상한 관념들을 풀어내는 데만 힘썼고, 영어 작문도 거기에 맞춰서 연습했다. 한국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다른 데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대개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풀어내고 정리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내용만큼은 반드시 다 외우고, 지은이들이 원하는 바를 적극으로 실천하겠다. 그리고 나중에 선생님이 되어 영어를 가르칠 때도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을 반드시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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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종합 가이드 북
월간조선 편집부 엮음 / 월간조선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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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예비역들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술자리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군대에서 겪은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자기가 남들보다 군대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인정받으려고 대단한 공을 쏟았다. 군대가 무엇이기에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도 어느새 군인이 되어서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들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같은 기억을 지니게 되었고, 그들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예비역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군대 이야기부터 튀어나왔고, 군대에서 편하게 있는다는 소리 들을까봐 나름대로 말하는데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본받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것들마저 어느새 내 안에 스며들어 내 일부를 이루고 있어서, 소스라쳤던 기억도 어느덧 옛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평소에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도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지 말이다.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부조리를 지켜보면서 바라보는 분노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 속에서 남자들은 정말 지독한 상처를 입고 만다. 아무리 국방일보에서 병역 의무가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강조하더라도, 애당초 국방이 신성하다는 논리를 거부하는 나에게는 그런 말은 씨도 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군대 정신 교육 교재에서는 지금 사회에서 질서와 예절이 사라져 극도로 혼란스럽다면서, 사회가 질서가 잡힌 엄격한 군대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그런 논리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대한민국을 병영 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박정희 정권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나라에 과연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 정부나마 설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군대에서 온갖 일제 잔재가 살아 남아있다가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선 뒤 온갖 부조리가 사회로 스며들어, 지금도 그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봐도 좋지 않은가?

 

친일 잔재를 물려받아 일제 시대 때부터 누렸던 기득권을 지킨 뒤 군사 독재 정권을 지지하며 민주주의와 사회 개혁을 가로막은 수구 언론 가운데 가장 대표급인 조선일보라서 그런지, 군대를 찬양하는 책은 어디보다도 열심히 지원하고 찍어낸다. 한미 동맹을 비판하고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을 매국노 또는 빨갱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행태를 보면 이 책을 읽기도 싫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무조건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 책에 자기가 경험한 소중한 기억을 아낌없이 원고에 담아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례를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 안에 있는 내용은 실제로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국방일보에서도 군대에서 수많은 것을 얻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사례를 계속 알리고 있다.

 

그런 여러 가지 사례를 볼 때 이 책은 분명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군대를 가기 전에 예비 현역들이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이 책이 그토록 좋아하는 군대 또한 국방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는 조직인만큼, 국민들은 군인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국방이라는 임무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나도 지금 충분히 느끼고 있으며, 그토록 힘든 일을 담당하는 자랑스러운 이들이 바로 군인이다.

 

그러나 내가 그 자랑스러운 군대에 계속 남아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몇 억 원씩 준다고 해도 군대에는 남아 있기 싫다는 말을 어느새 나도 하고 있었다. 나 같이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자유분방한 사람은, 지금 병영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독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오로지 전역만이 살 길이니 내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운다는 말은 나에게는 그저 뜻이 거의 없는 말이다. 게다가 애당초 조선일보에서 펴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의도부터 의심하고 있었으니, 내가 군대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도 개똥도 쓸 곳이 있다고 좋으나 싫으나 내가 군대 안에서 얻어낸 것도 꽤 많은 편이니,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이 지니는 가치를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이 책을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들에게 추천하기는 하지만, 일단 조선일보가 군사 문화를 찬양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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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들은 해병대로 간다
이경수 지음 / 월간조선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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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은 육군, 해군, 공군으로 구성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대한민국 국군에서 해병대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사회에는 해병대에 관한 온갖 소문이 나돌고 해병대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그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고 지키고자 힘썼다. 나도 그런 무수한 소문과 이미지를 사회에서 접한 뒤 해병대가 지니고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해병대에 들어갔다. 물론 가장 큰 목적을 밝힌다면 다른 해병들에게 욕을 꽤 먹겠지만, 여러 가지 목적 가운데 한 가지를 밝힌 것이니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으므로 나름대로 떳떳하게 이런 글을 쓴다.

 

육군 예비역인 작가가 해병대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한 모험이다. 해병들은 해병대를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해병대를 함부로 평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군대 출신들이 내놓은 평에는 놀라울 정도로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이미 나왔는데 해병들이 무슨 수를 쓰기에는 좀 늦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제 3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객관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기에, 그 정도만 해도 꽤 큰 가치가 있다. 

 

일단 해병대 특유의 부풀리기가 전혀 없다. '~라고 한다'라는 표현으로 문장을 맺어 정보 수집에 힘썼다는 인상을 준다. 체험기, 면담 내용 따위도 풍성하게 곁들여서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해병대에 대한 이미지에 객관성을 불어넣는데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 이 책이 보여주는 매우 뚜렷한 특징이다. 해병대교육훈련단에서 받는 훈련이 흔히 해병들이 이야기하는 만큼 도저히 사람이 못 견딜 정도는 아니며, 해병대를 나왔다고 해서 꼭 IBS를 들고 모래 위를 달리고 헬리콥터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고 밝힌다. 특히 '해병대는 마크사에서 만들어진다'와 같은 이야기는,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는 해병대에 관한 고정 관념을 깨부수기에 충분하다.

 

그런 이야기 말고도 해병대 부사관과 장교가 되는 길,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해병대 전우회, 신병교육대와 수색교육대 이야기 등 매우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책에서 백미라고 볼 수 있는 곳을 신병교육대와 수색교육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곳을 읽으면 해병들은 자기도 모르게 훈련병 시절을 생각하면서 추억 속에 잠길 것이고, 사람들은 역시 해병대라고 생각하든지 자기 나름대로 해병대에 관한 이미지를 새롭게 떠올리거나 바꾸고 굳힐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읽는 이들이 해병대를 객관으로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매우 세심한 부분까지 작가가 신경을 썼다는 점만으로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지은이는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것이 해병대라고 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분명히 해병대에 관하여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책만으로 해병대에 관하여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심한 착각이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무수한 것이 해병대 안에 숨어 있다. 그것을 직접 느껴보고 싶은 젊은이는 해병대로 가도 좋다. 물론 그 안에서 처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는 자기 선택에 달려 있고, 그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판단은 자기가 굉장히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나도 아직도 해병대에 관하여 많은 것을 모르고, 안다고 해도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충분히 글로 나타낼 수 있는데도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것도 얼마든지 있다.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해야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존재인 해병대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해병대를 알아가고 있지, 알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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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병 정기 휴가 때 서울에 올라가서 미영이 누나를 만났다. 무려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얼핏 보기에는 둘 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누나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나는 군대라는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뿐이었다. 둘 다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정말 다행이었다.
 

서로 해야 할 말이 매우 많을 듯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하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가는 분위기만 다 망칠 듯 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말로만 시간을 채웠다. 그러면서 종로 아웃백에서 파스타와 쇠고기 갈비 요리를 먹고, 서울극장에서 '아연'을 보고, 나는 모르지만 누나는 알고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지극히 짧은 몇 시간이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몇 년만에 만났지만 헤어짐도 매우 덤덤했다. 나는 서울역으로 가서 부산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탔고, 누나는 종각역으로 가서 의정부로 가는 덜컹거리는 전동차를 탔다.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면서 도심 속 야경을 바라보고, 부산에서 집으로 가는 무궁화호 안에서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문득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속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항상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때만큼 그런 느낌이 심한 적도 드물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보면 벌써부터 애늙은이 같은 어이없는 소리 한다고 핀잔을 줬겠지만, 그저 내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할 뿐이니 특별히 무슨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득 벌써 청춘이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무엇이라도 더 많이 해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이것저것 건드리고 일하기는 했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별로 한 게 없어서 항상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간 뒤에는 그런 느낌이 너무 심해져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간 근무를 설 때마다 정신 없이 졸고 있는 당직분대장을 눈 앞에 두고, 정신이 나름대로 멀쩡할 때는 항상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은 마치 의무 같아서 한 번 사로잡히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겨우 22세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10대가 그리워지고 심할 때는 20~21세 시절이 그리워져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바라보고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내가 쓴 글이었다. 그 글 안에는 무엇을 쓰는지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손가락을 놀렸던 흔적에서부터 회고록까지 온갖 다양한 것들이 남아 있었다. 몸짓을 하면서 흘렸던 땀이 묻어 있었고, 사랑을 하면서 흘렸던 눈물도 배여 있었고, 좋아하는 이들과 마시다가 흘렸던 맥주도 고여 있었다. 그런 것들은 흐르는 시간이 있었기에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었고, 시간은 즐거움을 주는 척 하면서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만들어 나를 고독하게 했다. 그러면서 청춘도 빼앗아서 절대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 버렸다.

 

요즘이야 의학이 발달해서 평균 수명을 80세 넘게까지 늘리네 어쩌네 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지만, 일단 기본으로 70세까지 잡아도 이 책을 쓴 작가 김연수는 어느덧 딱 절반을 넘어섰다. 긴 운동장을 이제 반 정도 돌았는데, 지나온 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에 20대라는 정말 소중한 청춘이 있었고, 그 안에 작가를 사로잡은 문장이 있었다. 머리 끙끙 앓아가며 공부할 필요가 없는 쉬운 문장으로 자기가 겪었던 청춘을 풀어냈다. 읽는이가 글쓴이를 동경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한시와 하이쿠를 즐겨 인용하면서, 청춘을 아쉽게 흘려보낸 작가로서 그 기억을 한사코 놓지 않으려고 한다.

 

작가가 말한 대로 사실 삶을 설명하는데는 한 문장이면 충분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몇 천 만 마디를 해도 내 인생을 완전히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쓴 김연수라는 작가가 부럽다. 나도 청춘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나서고 싶다. 구구절절 내가 살았던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결국 그런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는 그런 문장을 찾아서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지요. 이런 편안한 책을 선물해 주신 미영이 누나. 고맙습니다. 언제나 한없이 고맙기만 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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