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 못다 핀 천재 물리학자 청소년인물박물관 3
이용포 지음 / 작은씨앗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세상에 내놓으며 과학 혁명을 일으킨 뒤, 과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이 제시한 운동 법칙으로 예전에 설명하지 못했던 수많은 운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존재를 이루는 근원을 밝혀내기만 한다면 그 근원에 그동안 밝혀낸 운동 법칙을 적용해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예상했던 것이다.  
 

그 예상을 현실로 옮기고자 근대 화학자들이 나섰다. 데모크리토스가 제시한 원자설이 근대 과학자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로 인정을 받은 뒤, 그들은 물질이 띠는 성질과 그 사이에 성립하는 법칙을 하나 둘 발견하면서 꾸준히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로 나아갔다. 

 

그러나 마리 퀴리가 원자핵 변환을 연구하면서 라듐과 폴로늄 따위 여러 가지 입자와 핵반응을 발견하면서, 그 기대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역시 입자물리학 분야에 수 천 년 동안 인류가 매달렸지만 수많은 가설만 쏟아져 나왔을 뿐, 뚜렷하고 믿을 만한 연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만큼, 그들이 기대한 대로 주사위가 굴러가지 않았다. 기본 입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고,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고정 관념과 다르게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변하고 반응을 일으켰다. 게다가 뉴턴 물리학이 발견한 운동 법칙도 입자물리학 연구가 진전되면서, 소립자 운동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혀졌다.

 

그에 따라 현대 입자물리학과 고에너지 물리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충격에 빠진 뒤 거기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은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치열한 연구 현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끊임없이 발표했다. 그 현장에 6.25 전쟁 때문에 지구에서 가장 참혹하게 파괴된 나라 가운데 한 곳으로 변해버린 한국에서 온 천재 이휘소(미국 이름은 벤자민 리)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교수들이 하는 강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영어도 잘 하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는 교수들이나 학생들이나 그를 마땅찮게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이휘소가 보여주는 천재성에 놀란다. 자기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자기가 지닌 지식과 주장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깨지기 십상인 그 무시무시한 학계에서 그는 천재로 인정받고 살아남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곳에서 그는 현대 물리학, 특히 소립자물리학과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에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업적을 쌓으며 최신 물리학계를 이끌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빛냈다.

 

그토록 눈부신 업적을 쌓고 찬사를 받았는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에 관하여 정확하게 모르고 심지어 그 이름 석 자를 아는 이도 흔하지 않다. 물론 그건 세상에서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뒤에야 그 일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휘소라는 천재를 알게 된 계기도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사실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도 그 비극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실 류비셰프를 만나기 전에 내가 가장 존경했던 과학자가 바로 이휘소였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읽은 때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친 뒤였는데, 이 인물을 처음으로 안 것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으니, 무려 2년이나 빨랐던 셈이다. 그 2년 동안 나는 마음 속에 이휘소라는 인물을 두고, 아무 정확한 자료도 없이 어떤 인물인지 그저 멋대로 마음 속에 그려내고 있었다.

 

그 때 이휘소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상상하는데 바탕이 된 소설은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다. 그랬으니 올바른 판단이 나왔을 리가 절대 없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김진명은 이휘소라는 이론물리학자를 뜨거운 애국심으로 무장하여 미국이 제시한 셀 수 없는 혜택을 뿌리치고 고국에 핵무기 보유국으로 거듭나는데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인물로 그렸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건 김진명이 자기 의도에 따라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열심히 읽은 뒤, 이용후가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소설을 그대로 믿고 있다.

 

아무리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힘있는 문체와, 애국심을 끓어오르게 하고 한국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울분을 통쾌하게 날려버릴 내용과 결말으로, 흔히 문학에서 말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김진명이 군사 독재 정권과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하지 않았던 이론물리학자 이휘소를, 박정희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핵무기 개발을 꿈꾸는 핵물리학자 이용후로 둔갑시켰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특히 이 책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이휘소가 보여준 그 점을 확실하게 드러내야 하는데, 작가는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지켰다. 글씨도 큼직했고 내용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확실히 읽기는 편했다. 이휘소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 100여 편을 토대로, 어린 시절부터 그가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죽을 때까지 그가 남긴 발자취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읽기 쉽게 풀어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내 머릿속에서 그리기만 했지 실체가 없던 이휘소라는 인물을 더욱 정확하게 그려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휘소가 이루어낸 업적에 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하긴 그 설명을 제대로 하려고 하다가는 청소년은커녕 웬만큼 교양이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휘소에게서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받으면서 인연을 맺은 강주상 교수가 이 책과는 별개로 평전을 냈는데, 거기에서는 나름대로 쉽고 자세하게 소립자물리학에 관하여 이휘소가 주장한 이론을 설명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밝히는데 분명히 중요한 자료를 여기에서는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작가가 의도한 것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업적뿐만 아니라 이휘소가 학계에서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과 벗들 사이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제대로 밝히지 못한 듯해서 아쉽다. 내가 정작 이 책에서 원했던 것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도 쉬지 않고 연구에 정진하면서 밝히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과 그가 따뜻한 가슴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느꼈던 모든 것을 실감나게 표현했다면 정말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정말 알고 싶었다. 류비셰프와 마찬가지로 그도 일에 매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해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류비셰프에 관한 자료는 사실 내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너무 적었다. 그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매우 지치고 피곤했다고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서 밝히고 있다. 류비셰프만 좇고 있는 나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고, 이 책을 샀던 날에 만났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웃던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 생각은 접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가 밝힌 대로 그는 '우담바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3천 년마다 한 번씩 피어난다는 불교 전설으로만 알려진 꽃.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이해하고 있는 이도 없다. 하지만 그 가치는 어느 누구도 감히 함부로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도 우리나라에 분명히 그런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를 너무 아깝게 잃었다. 언제 그런 인물이 다시 나올 것인가? 자라나는 새싹들 가운데 이 책을 읽고 이휘소와 같은 과학자가 되겠다고 오로지 한 우물을 파기 시작하는 이들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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