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종합 가이드 북
월간조선 편집부 엮음 / 월간조선사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예비역들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술자리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군대에서 겪은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자기가 남들보다 군대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인정받으려고 대단한 공을 쏟았다. 군대가 무엇이기에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도 어느새 군인이 되어서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들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같은 기억을 지니게 되었고, 그들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예비역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군대 이야기부터 튀어나왔고, 군대에서 편하게 있는다는 소리 들을까봐 나름대로 말하는데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본받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것들마저 어느새 내 안에 스며들어 내 일부를 이루고 있어서, 소스라쳤던 기억도 어느덧 옛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평소에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도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지 말이다.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부조리를 지켜보면서 바라보는 분노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 속에서 남자들은 정말 지독한 상처를 입고 만다. 아무리 국방일보에서 병역 의무가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강조하더라도, 애당초 국방이 신성하다는 논리를 거부하는 나에게는 그런 말은 씨도 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군대 정신 교육 교재에서는 지금 사회에서 질서와 예절이 사라져 극도로 혼란스럽다면서, 사회가 질서가 잡힌 엄격한 군대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그런 논리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대한민국을 병영 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박정희 정권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나라에 과연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 정부나마 설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군대에서 온갖 일제 잔재가 살아 남아있다가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선 뒤 온갖 부조리가 사회로 스며들어, 지금도 그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봐도 좋지 않은가?

 

친일 잔재를 물려받아 일제 시대 때부터 누렸던 기득권을 지킨 뒤 군사 독재 정권을 지지하며 민주주의와 사회 개혁을 가로막은 수구 언론 가운데 가장 대표급인 조선일보라서 그런지, 군대를 찬양하는 책은 어디보다도 열심히 지원하고 찍어낸다. 한미 동맹을 비판하고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을 매국노 또는 빨갱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행태를 보면 이 책을 읽기도 싫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무조건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 책에 자기가 경험한 소중한 기억을 아낌없이 원고에 담아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례를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 안에 있는 내용은 실제로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국방일보에서도 군대에서 수많은 것을 얻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사례를 계속 알리고 있다.

 

그런 여러 가지 사례를 볼 때 이 책은 분명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군대를 가기 전에 예비 현역들이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이 책이 그토록 좋아하는 군대 또한 국방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는 조직인만큼, 국민들은 군인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국방이라는 임무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나도 지금 충분히 느끼고 있으며, 그토록 힘든 일을 담당하는 자랑스러운 이들이 바로 군인이다.

 

그러나 내가 그 자랑스러운 군대에 계속 남아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몇 억 원씩 준다고 해도 군대에는 남아 있기 싫다는 말을 어느새 나도 하고 있었다. 나 같이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자유분방한 사람은, 지금 병영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독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오로지 전역만이 살 길이니 내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운다는 말은 나에게는 그저 뜻이 거의 없는 말이다. 게다가 애당초 조선일보에서 펴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의도부터 의심하고 있었으니, 내가 군대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도 개똥도 쓸 곳이 있다고 좋으나 싫으나 내가 군대 안에서 얻어낸 것도 꽤 많은 편이니,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이 지니는 가치를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이 책을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들에게 추천하기는 하지만, 일단 조선일보가 군사 문화를 찬양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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